[팥빙수 01] 개인적인 백남준 재조명
어릴 적 동네에 백남준 아트센터가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꼭 체험학습으로 한 번은 방문하곤 했었다. 사실 백남준 = 국위선양, 세계에서 인정받은 우리나라 예술가! 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지직 거리는 그의 작품은 텔레비전은 전혀 새롭지도 , 아름답지도, 내가 생각한 예술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이번 달까지도 지속되었다. <I never read Wittgenstein>을 보기 전까지.
백남준은 첫 아트 페어에서부터 서구사회에 도전장을 내미는 작품을 제출했다. 대학원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한 그는 피가 흐르는 소의 머리를 잘라서 전시회장 입구부터 걸어놓았고 피아노를 부서뜨렸다. 서양음악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피아노를 정복하고 서구 사회에 도전장을 내미는 대담한 작품이었다. (물론 동물의 사체를 예술 작품으로 이용했다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
백남준의 서구사회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었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동양과 서양은 절대로 서로 어울릴 수 없다'(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ain shall meet)는 말을 남긴 식민지주의 역사학자 키플링의 사망 50주년을 맞아 1986년도에 <바이 바이 키플링>을 제작하기도 했다. 키플링의 식민지주의 적인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서구와 비서구의 모습을 보여냈다. 두 사회 간 우위란 없었다. 뒤죽박죽 섞여서 나오는 서구와 비 서구의 모습을 보면 동일한 지구에 사는 같은 종의 인간들임을 키플링에게 고하는 것 같았다. 동양과 서양은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로 기획했다는 해석이 대부분이었지만 1998년에 선보인 작품의 제목을 보면 <바이 바이 키플링> 에도 식민지주의를 열창하는 서구 사회에 대한 비판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1998년. 백남준이 서구사회에 남긴 선언이 나온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비트겐슈타인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모방이다. 비트겐슈타인을 제외하고는” 그만큼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서양의 정신이었다.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은 우주나 사물의 본질에 대해 논해왔다. 인간 자신보다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세계의 이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칸트에 이르러서야 인간 주체에 대한 관심으로 변화하였고 비트겐슈타인은 다시금 세계를 구축하고자 등장한다. 언어가 세계를 기술하며 인간이 인식 가능한 것은 언어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언어로 기술된 세계가 참임을 증명할 수 있고, 경험에 의한 증명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인 명제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 된다. 그는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논리철학 문고>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백남준은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
이 제목만으로도 작품은 완성된다.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는 선언은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예술, 종교 같은 것들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서양철학의 대표 자격인 비트겐슈타인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사고의 틀을 서양철학에 맞추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도 볼 수 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기본 화면 색으로 벽을 칠하고 끝 부분마다 랜덤으로 영상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붙였다.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텔레비전을 붙이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상을 틀어놓았다. 이는 서양철학자들처럼 사고의 틀을 정해놓지 않고 말랑말랑한 뇌 같은 텔레비전이 항상 새로운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양에게 인정받아온 한국의 예술가 백남준이 아닌 서구사회에 신랄한 비판을 던지는 예술가 백남준을 <I never read Wittgenstein>을 만나고야 알 수 있었다.
참고자료
본태박물관, 백승태 도슨트 전시 설명
조중걸,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