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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Oct 09. 2020

고갱의 6펜스

[그루잠01]

고갱은 현대 전 세계인에게 친숙한 화가 중 한 명이다. 특히 고갱은 원시주의의 선구자로서 유명하다.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는 고갱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원시주의를 담고 있으며, 고갱의 원시주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타히티 섬이다. 고갱은 11년 간 증권거래인으로 일하며 미술품을 사들이거나 직접 그림을 그리던 중, 파리의 증권시장 붕괴를 계기로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고갱이 돌연 전업화가로 전향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의 가족은 고갱의 아내의 고향인 덴마크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갱은 아내와 5명의 자녀를 두고 그림에 매진하기 위한다는 이유로 파리로 떠난다. 달과 6펜스는 고갱의 인생에서 이 시점을 소설의 시작으로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고갱은 1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아내와 다섯 명의 자식을 무책임하게 버린 인간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고갱의 그런 선택을 시작으로 설정하고 순수한 예술을 좇는 인간으로 연출하며 결국은 이 선택을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포장하고 있다. 소설의 서술자는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 찰스 스트릭랜드의 무책임한 선택에 대해 처음에는 우리가 느끼는 바와 같이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비판적 시선을 보내지만, 곧 스트릭랜드의 대담한 결정을 은연중에 흠모하고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독자의 심리에 동조하며 서술자를 독자의 대변인으로 만든 후 서서히 관찰 대상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는 전개는 독자가 거부감 없이 서술자와 같은 입장을 취하게 만든다.  서머싯 몸은 소설의 전반에서 스트릭랜드의 삶을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육체적 욕망을 멀리하고 그림에만 집중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또한 스트릭랜드가 타히티에서 만난 아타라는 어린 여자와 결혼하여 죽을 때까지 아타만을 곁에 두는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파리의 문명화된 삶에 염증을 느끼고 떠난 타히티에서의 고갱의 삶은 보통 사람의 관점으로 보기에 문란함과 비도덕함의 끝장을 보여준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10대 초반의 어린 여자 아이들과 여러 번 결혼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림의 모델과 친밀감을 느끼고 모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림 모델들과 수없이 많은 관계를 가지고 이들을 소유했다는 만족을 얻는다. 그림에서 여성을 그리는 방식에서도 여성에 대한 고갱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는 고갱의 그림 중 <과일을 들고 있는 여인>과 <두 명의 타히티 여인들>에서는 여성이 가슴 부근에서 과일을 들고 자세를 취한다. 이는 여성 신체의 일부를 과일에 비유하며 대상화하는 전형적인 표현 장식이다. 또한 <마나오 투파라우>에서는 엎드린 자세로 관람자를 쳐다보는 자세의 원주민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 자세 역시 서구 회화 작품에서 전형적으로 여성의 수동성을 강조하며 남성이 마음만 먹으면 여성을 취할 수 있다는 관념을 보여주는, 여성을 사물화 하여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자세이다.



고갱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 그가 결국 전형적인 서구 백인 남성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 백인 남성들은 예전부터 이국적인 곳의 신비로운 여성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고 오달리스크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고갱에게 외지인과 대가 없이 관계를 맺는 타히티 여성들은 서구 남성으로서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에 좋은 도구였다. 그가 타히티 여성들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본 것은 그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고갱은 13살 여자 아이인 테하아마나와 동거하던 중 파리에 갔다 오는데, 돌아와서 자신이 매독에 걸렸음에도 타하아마나를 부르고, 그녀가 거절하자 14살의 파우라와 결혼한다. 또한 고갱의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마오리 매춘부들의 요염한 열정은 파리 매춘부들의 수동적인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테후라의 피에는 불길이 치솟고, 그 불길이 본질적인 자양분이 되어 사랑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마치 독한 향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눈과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계산을 하고 있든 아니든, 그녀의 눈과 입이 말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남성 화가들은 현대 우리의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미 남성이 주류로서 이끌어온 미술사에서 대부분의 작품에 여성에 대한 혐오적 시선이 투영되어있고, 따라서 그 정도에 따라 작품의 예술성을 평가하기는 힘들다. 또한 그들의 여성에 대한 혐오적 시각이 오롯이 화가 자신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가 가진 잘못된 가치관인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가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알아야 하고, 이것이 미화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고갱이 천재적인 예술가임은 분명하지만, 달과 6펜스에서 미화된 고갱의 일생이 아닌 그의 진짜 일생을 알게 되면 그의 가치관 역시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명화로 불리는 그의 작품을 볼 때나 달과 6펜스를 읽으며 단순한 경탄이 아닌 적절한 비판을 할 수 있다. 고갱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감상하는 수많은,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그림들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여성에 대한, 혹은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예술 작품들을 감상해야 한다. 물론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이들을 감상하는 이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이다. 잘못된 것들에 익숙해져 자각 없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의 부조리는 공고해질 것이다.

올해 초 넷플릭스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드라마 <인간 수업>을 본 적이 있다. 별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성매매에 가담한 사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자신이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해준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에 이입하여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에게 들킬까, 경찰에 잡힐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보던 화면을 끄면 그제야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미디어가 너무나도 쉽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를 옹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달과 6펜스를 읽은 후에도 <인간 수업>을 본 후와 같은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달과 6펜스에서는 화자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성격과 도덕성을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이러한 점들을 예술가적 면모로 치부하고 오히려 존경을 표한다. 소설을 읽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자의 입장에 이입하여 화자의 시선으로 찰스 스트릭랜드로 표현된 고갱을 관찰하게 되고, 화자의 생각에 동감하게 된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작품에서 미화된 스트릭랜드조차도 도덕적 결함이 많은 사람이며 고갱은 더 지독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럴 때면 미디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쉽게 제작자의 생각을 주입하여 공감하도록 만드는지 깨닫게 되고, 이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유경희, <유경희의 아트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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