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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Oct 11. 2020

메두사의 머리

[E앙데팡당X아트렉쳐/수풀]

  신화는 성경과 더불어 많은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토대가 된 이야기가 같더라도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따라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은 단순히 예술로 끝나지 않고,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기록으로도 기능한다. 

   이에 여러분들에게 미술 소재로서의 메두사를 소개하고 싶다. 그는 신이 아니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메두사 이야기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피해자인 그가 오히려 징벌을 받았다는 데에 있다.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그 일이 아테네 신전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아테네에게 괴물로 변하는 벌을 받는다. 그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인간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베어져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잘린 머리가 영원히 아테네의 방패에 박제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러니 메두사는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그 때문에 벌을 받아야하는 괴물인 것이다.


피터 폴 루벤스, <메두사>, 1617-18,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미켈란젤로 카라바지오, <메두사의 머리>, 1598, 우피치 미술관 소장

   이러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미술이 메두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소 잔혹하다. 먼저 루벤스의 <메두사>를 보자. 이 그림 속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 의해 막 목이 베어진 것 같다. 놀라 치켜 뜬 눈과 그의 목 아래 붉은 피는 메두사에게 일어난 참사를 보여준다. 더불어 그의 머리에서 우글거리는 뱀들의 그로테스크함은 괴물로서의 메두사를 강조하며, 그의 처형에 어떠한 정당성을 쥐여주는 듯하다. 카라바지오의 <메두사의 머리>에서 또한 메두사는 폭포 같은 피를 흘리며, 자신에게 닥친 참사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인다. 이처럼 메두사가 보이는 표정의 역동성은 독자로 하여금 그에게 닥친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 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메두사의 죽음은 인간 영웅 페르세우스의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벤베누토 첼리니의 조각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를 보면, 페르세우스는 쓰러진 몸을 밟고 당당히 서서, 메두사의 머리를 치켜든 채 관객에게 자랑스레 내보이고 있다. 이처럼 메두사 죽음은 그 이면에 담긴 비극은 사라진 채 자극적인 고통으로 전시되거나 인간 영웅의 승리로 환원된다.

좌: 구스타브 클림트 <유디트>, 1901  우: 베첼리오 티치아노, <살로메>, 1515

  

  참수된 이가 미술 작품의 소재로 쓰이는 일은 드물지 않다. 대표적으로 성경의 인물인 세례자 요한과 홀르페르네스가 있다. 그러나 메두사와 달리 그들이 당한 참수의 끔찍한 고통은 작품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고요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물론 아르테미시아 젠틸리스키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디트>는 조금 다른 양상 보인다. 그에 대해서는 차후 다른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더불어 그러한 작품들 속에서 참수된 이들은 그림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목을 벤 연약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작품의 중심이 된다. 세례자 요한에게는 살로메가, 홀르페르네스에게는 유디트가 그들 대신 관객의 시선을 끈다. 따라서 참수된 그들의 머리는 고혹적인 여성들이 보여주는 잔혹성을 고조시키는 기능 그 이상을 하지 않는다. 그의 머리를 덩그러니 남겨 놓은 채 관객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되는 건 오직 메두사 뿐이다. 

  그렇다면 메두사가 그에게 닥친 불행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는 강철 같은 몸을 가진 고르고(Gorgon)이나, 이는 참수를 당한 순간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바로 바라보는 모든 것의 생명을 앗아 가는 시선이다. 페르세우스가 그의 목을 벤 이후에도 그의 시선은 형형하게 남아 그 끝에 닿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든다. 그러나 메두사가 이 같은 힘을 가졌음에도, 앞서 본 미술 작품들에서는 그의 앞에 닥친 불행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만한 단서를 찾아볼 수 없다.


벤베누토 첼리니,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 1554

  다시 루벤스의 <메두사>를 보자. 이때 메두사는 정면이 아닌 그림 구석의 어딘가를 비스듬히 노려보고 있다. 즉, 그의 시선은 그를 바라보는 이를 향해 있지 않다. 카라바지오의 <메두사의 머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카라바지오는 메두사의 목이 아테나의 방패에 박제 되었다는 이야기를 착안해 볼록한 방패 위에 그의 목을 그려 넣었다. 이 때문에 그림은 입체감을 가져 메두사는 튀어나오듯 관객을 노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라비지오의 메두사 역시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 조각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첼리니의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에서 메두사는 가만히 그의 눈을 감고 있다. 이처럼 메두사를 소재로 한 미술 작품에서, 메두사의 시선은 정면을 교묘히 빗겨가거나 감긴 채 봉인되어 있다. 모든 것을 돌로 만드는 메두사의 시선은 그를 바라보는 관객을 향하고 있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그의 힘의 원천인 시선은 무력해진다. 

  

  따라서 메두사를 다루는 명화의 문제는 표현상의 잔혹성 뿐만 아니라, 그가 불합리한 현실에 대항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했다는 점에도 있다. 이렇듯 미술 작품 안에서 메두사는 언제나 관람객 앞에 무기력하게 효수되어 있다. 그러니 미술이 메두사에게 내린 형벌은 아테네가 그에게 내린 형벌만큼이나 잔혹하고 불합리하다. 더불어 이 미술의 형벌은 신화 속에 박제된 피해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과거의 시대는 지나가도 작품은 남아 언제나 후세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따라서 메두사를 다룬 미술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에 메두사와 같은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땠는지 만을 깨닫게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을 지 언정 메두사의 머리는 과거의 유산이란 명목으로 여전히 우리 앞에 경고하듯이 걸려 있다. 


Luciano Garbati, <Medusa>, 2008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메두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이탈리아의 조각가 Luciano Garbati가 조각한 메두사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가진 강력한 시선에 작품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 있다.

  이 메두사의 전신 조각상에서,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먼저 메두사의 몸은 여성 신체의 에로틱한 측면이 강조되지 않은 채 현실적인 여성의 몸과 닮아 있다. 그의 머리카락은 루벤스의 그림이 그랬듯 기괴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고 그저 뱀의 형태만을 보여줄 뿐이다. 더불어 첼리니의 조각상과 달리 이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의 머리를 자랑스레 관객에게 내보이지 않는다. 또한 메두사에게 목이 베인 페르세우스의 표정은 앞서 본 작품들의 메두사처럼 놀라 일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표정에 가깝다. 그 어떤 흥미로운 특성이 없는 페르세우스의 잘린 목은 관객들의 눈을 끌지 않는 작품의 부차적인 요소가 된다.

  따라서 Garbati의 메두사는 그의 시선이 작품 전체에 있어 가장 중심이 된다. 관객은 메두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제 그는 정확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관객에 시선을 두지 않거나 눈을 감았던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과거와 달리 메두사는 더 이상 무력한 피해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의 고통이 과장되리 만큼 잔인하게  묘사됨으로써 흥미의 대상이 되지도 않으며, 그를 정복함으로써 승리감을 느끼려고 했던 자의 자랑거리로 전락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이 새롭게 해석된 메두사는 성범죄 피해자가 응당 가져야 했던 서사를 전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더불어 이는 단순히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메두사가 관객을 바라봄으로써, 관객은 자신들 또한 그의 시선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인지한다. 따라서 관객은 그가 피해자라는 이유로 우리의 마음대로 그의 서사를 단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그는 대상의 상태에서 탈출하게 된다. 과거 작품들에서 메두사는 죽어 사라짐으로써 그 서사가 종결되었다. 오직 그의 목만이 남아 타인의 이야기에 도구가 될 뿐이었다. 


Luciano Garbati, <Medusa>, 2008


 그러나 메두사는 이제 살아남은 자로서 그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이제 칼이, 신체가, 무엇보다도 그 힘있는 시선이 있다. 여전히 피해자로서의 고통만이 그가 가진 전부인가? 메두사는 강인한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하는 듯 하다. 그럴 리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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