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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Nov 04. 2020

문제를 제기하는 디자인

[E앙데팡당X아트렉쳐/새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치열한 입시 끝에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하고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 처음으로 들었던 질문이었다. 약간의 침묵 끝에 학생들은 저마다 손을 들며 야심 차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예쁜 것', '외관을 더욱 보기 좋게 하는 것', '사용을 더 편리하게 하는 것', '상품을 소비하고 싶게 디자이너가 작업을 한 것', '불편한 것을 더 보기 좋고 편리하게 개선하는 것', '디자이너가 의도를 가지고 재구성하는 것' 등의 대답이 쏟아졌다. 여기에 틀린 정답은 없었다. 학생들이 대답한 것이 아마도 그들이 디자인을 공부하고자 생각한 이유일 것이다. 이 질문은 다른 수업에서도 종종 듣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분명 있었다. 디자인은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이 점 하나만은 무수한 답변들의 공통분모라고 생각한다. 


본디 디자인(design)은 ‘지시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 창조하다’라는 뜻인 라틴어 데지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하였으며, 사전적으로는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디자인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조형요소들을 선별하고 선택하여 창조하는 활동이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하루 동안 우리는 다양한 일을 한다. 먹고, 마시고, 어디론가 이동하여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어떠한 공간 속에서 여러 제품이나 도구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 물질적이 아니라 정보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이 비록 미적이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디자인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디자인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멋지고 근사한 것을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쁜 색 조합, 힙하고 세련된 그래픽과 브랜딩 레퍼런스를 찾아서 핀터레스트에 중독되어 있었다. 현실적으로 디자인은 부가가치이고, 상업적이며, 소비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대해 스스로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디자인의 영역은 시각, 산업, 영상, 공간, 공예, 패션처럼 대학교의 과가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입시를 하면서 디자인은 크게 평면적인 화면을 다루는 2D와 입체적인 공간성을 다루는 3D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중 디자인을 다른 관점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바로 디자인이 ‘문제 해결형 디자인’과 ‘문제  제기형 디자인’으로 말이다. 


문제 해결형 디자인은 말 그대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이다. 이 문제 해결형 디자인은 제품을 판매하고 홍보하는 문제, 기업을 알리는 문제, 편리하게 텍스트 등의 콘텐츠를 즐기는 문제 등을 해결한다. 주로 광고나 브랜딩, ux/ui 등 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디자인은 공적이며 효율과 정보 전달성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주로 기업이나 단체에서 주로 원하는 디자인이다. 이와 반대로 문제 제기형 디자인은 자기주도적이며 사적인 영역에 있다. 지금까지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익숙했는데, 어떻게 문제를 제기하는지가 낯설기도 하다. 그동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순수예술(Fine Art)의 영역이었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개인적인 내면을 보여주거나 사회문제를 꼬집기도 한다. 문제 제기형 디자인은 이런 순수예술의 경계에 있는 디자인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에 설치된 미디어 아트 파도(Wave)

지난 5월 서울 삼성동 한복판에 대형 파도가 등장했다. 삼성동 무역 센터 앞 ‘아티움’ 외부에 설치된 대형 LED 전광판에는 각종 브랜드 광고가 등장한다. 그러다 매시 정각과 30분이 되면 전광판은 초대형 수조로 변한다. 수조 안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며 수조 벽면을 거칠게 때리며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이 역동적인 파도는 진짜 파도가 아니라 영상 그래픽인 미디어아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은 이 ‘Wave’를 제작한 곳은 직원이 100명이 채 안 되는 규모의 기업 ‘디스트릭트(d’strict)’이다. 이 회사는 오랜 기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창작자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마음껏 만들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하는 기업문화를 지켜내고 있다고 한다. ‘Wave’ 또한 그 자체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고 한다. 


이 ‘Wave’는 미디어 파사드로 제작된 회화 작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광고판에 등장하며, 회사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는 회화와 거리가 있다. 사업자들의 관심을 끄는 동시에 답답한 도시에 시원함을 가져온다. 그러나 실제로 무더위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옥외에 설치된 ‘Wave’를 보면서 역설적으로 꽉 막힌 강남의 답답함을 마주하게 되며,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갈 수 없는 현실을 느끼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은 소비를 부추기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디자인이 예쁘고 팬시(Fancy)한 것으로 대표되어갈수록 점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과 주변을 돌아볼 기회를 잃어간다. 디자인은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문제 제기형 디자인은 일상에서 작은 미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비 온 뒤 물웅덩이에 비친 네온사인을 보고 자본주의의 이중성을 생각할 수도 있고, 톡톡 터지는 탄산음료의 기포를 보고 소리 낼 수 없는 소수자들의 메시지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지, 문제를 제시할지는 디자이너의 손에 달려있다. 




[참고문헌]

-두산백과 ‘디자인’ 검색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86152&cid=40942&categoryId=33074


https://www.news1.kr/articles/?397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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