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03]
백색 소음과 같은 소리가 가득 찬 공간에서 스피커들이 천장에 매달려 순차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정확히 묘사하자면 들어올려졌다가 추락한다. 탄력성 있는 줄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는 안정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들어올려져 한순간에 떨어진다. 들어올려지는 높이는 제각각이다. 그렇게 견고해 보이지도 않는 연결 고리는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옆 스피커와 충돌할 것만 같은 긴장감과 결합하여 관람객에게 불안과 위태의 감정을 불러온다. 끊임없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그 스피커 앞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들의 행위를 바라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죄책감에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싶어지지만, 공간을 채우고 있는 소리가 끊임없이 스피커의 추락 장면을 상기시키고 목격하게 한다. 추락할 것 같은 이 스피커들의 행위를 조작하는 이는 누구인가. 위태로운 연결 고리에 자신을 매달고 추락하여 깨질 위험이 있음에도 딸려 올라갈 수밖에 없는 스피커는 누구인가.
이 작품은 2020년 아르코 미술관 주제 기획전 <더블비전>에 전시 중인 오민수 작가의 <아웃소싱 미라클>이다. <더블비전>은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형성된 인류와 기술, 과학의 관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이다. 아웃소싱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기업 업무의 일부 프로세스를 경영 효과 및 효율의 극대화를 위한 방안으로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는 아웃소싱은 '하청'이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소리의 정체는 작가가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그 이후, 폐허가 된 공간에서 녹음을 한 것이었다. 작가는 그 소리를 통해 거대기업 구조의 노동 현실을 드러내고자 시도한다.
저는 이번 전시에서 하청과 기적에 대한 작업을 할 것입니다. 하청(outsourcing)은 본질적으로 기적과 연관되어있습니다. 노동 현장을 경험한 사람에게 생존이라는 것은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경영학적 원리에 따라 잔혹하게 움직이는 노동 현장은 노동자에게 ‘그때 내가 죽지 않은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번 작업에서 저는 자본주의 사회 구성원 전체를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 현장으로 호출하고자 합니다. 원치 않는 죽음의 순간 노동자들 앞에 닥쳐왔을 불길과 추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 모르는 척하고 있는 불길과 추락의 이미지를 16개의 스피커를 통해 송출하고자 합니다. 이번 작품 아웃소싱 미라클 속 도플러 효과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과 소리의 층위로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소리의 왜곡은 시간을 뭉갭니다. 저는 소리의 왜곡 앞에 우리 모두를 던져 놓고 죽음 앞에 뭉개지는 시간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더블비전> Online Exhibition 중에서 -
<아웃소싱 미라클>은 오늘날 열악하고도 잔혹한 거대 기업 구조의 노동 현실을 목도하게 한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다시 작품을 보니 뭔가 스피커는 스피커로 보이지 않고 한 명의 노동자로 보였다. 물리적 움직임으로 뭉개진 소리는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소리를 넘어 화재와 재난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의 현장을 들려주는 소리로 확대된다. 죽음의 소리 속에서도 여전히 스피커는 추락하고 위태롭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스스로 이러한 노동 현장에 내던져지는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피커의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행동하는 이가 아니라 그저 방관하는 방관자가 된다. 전시 공간은 사람들이 외면했던 적나라한 현실 그 자체였다.
현대 사회의 편리함은 특정 노동의 비가시화로 달성된다. 하지만 작가가 말했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노동의 현장을 앎에도 모른 척 눈을 감아버린다. 눈을 감는 행위는 그들이 늘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보지 않겠다는 암묵적 선언과도 같다. 작품을 통해 재현된 소리는 관람객이 무의식적으로 행한 선언을 인식하게 하고, 이 선언에서 벗어나겠다는 또 다른 선언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에필로그]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방식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사유 체계를 제공한다. 작품을 통한 사유는 힘이 강력하고 임팩트 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작품을 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작가가 구축해 놓은 작품 세계에서 열심히 헤엄치다 보면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경험은 짜릿하지만 동시에 내가 놓치고 살아온 세계를 마주하는 순간이기에 가끔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그런 멍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오민수 작가의 <아웃소싱 미라클>이 나에게 그랬던 것 같다. 열심히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진 출처 : 아르코 미술관 홈페이지
참고 자료 : 아르코 미술관 홈페이지 <더블 비전> 전시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