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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Dec 18. 2020

꿈의 공간

[아오라 02]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 현실의 다양한 제약 속에서 움직인다.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이라는 시공간적 특성에 부딪히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수면을 통해 시간적, 공간적 제약들을 뛰어넘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꿈’ 속에서 가능하다. 이 꿈의 공간에서는 누구나 무한한 자유로움과 현실에서 받던 제약들이 없는 채로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의식적인, 깨어있는 시공간이 아닌 무의식적인 꿈속의 시공간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시공간적 제약의 현실에서 벗어난 완벽히 자유로운 나만의 공간, 하지만 무의식의 공간인 꿈속의 공간에서 어떠한 신비로운, 비현실적인,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경험이든 할 수 있다. 따라서 꿈은 과거에서 현대까지 예술가에게 창작의 영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창작된 예술 작품 또한 꿈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을 상징하고,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성찰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꿈이 창작에 영감을 준 동양과 서양의 작품을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신비로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잊지 못해 안견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고, 안견은 사흘 만에 완성했다는 안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 속에는 산세가 이어지고, 기암절벽이 등장하며 험준한 바위와 계곡은 비스듬한 복숭아밭을 병풍처럼 둘렀다. 안개 자욱한 언덕엔 복사꽃이 만발하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며 두 줄기로 쏟아지는 환상적 폭포와 함께 물가에 출렁이는 빈 배도 보인다. 이렇듯 안평대군의 꿈을 한 화면 속에 담아내며,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그의 꿈속의 낙원을 안견은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안평대군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초월한 이상 세계를 꿈꾸기도 한다. 꿈속의 대상을 실제적인 공간 안에 대입시켜 지금까지 보았던 전통적인 공간의 묘사와는 다른 몽환적인 공간을 드러내고 있는 독특한 화면적 구성을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꿈에 의해 무의식의 상태인 것을 진짜 있는 것처럼, 실제 산수보다 훨씬 더 실제인 것처럼 조화롭고 짜임새 있게 표현하였다. 


 다음으로 ‘호안 미로’의 <Harlequin 's Carnival> (어릿광대의 사육제)

 그의 작품을 보기 전에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초현실주의 사조와 그의 작품적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린 미술사조인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았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지성을 초월한 꿈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하는 것으로 초현실적인 미를 창조하려고 했다. 


 호안 미로는 자신이 꾼 꿈을 기억하여 상징을 통해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내면의 세계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였다. 꿈의 회화, 꿈의 의미들은 몽환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고 꿈의 이미지와 서정적 감성이 합쳐져 과거 유년의 감성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생물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고 상징화하여 초월적 세계를 표현하였다. 그는 천진난만한 순수성, 사물의 이미지를 자신의 세계와 결합하여 상징으로, 꿈에 의한 환상으로, 기호화된 추상으로 표현하여 그만의 독특한 미지의 꿈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어릿광대의 사육제>는 그가 현실의 모습을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것의 무의미함을 인지하고, 의식 하의 영역이나 꿈의 세계 속 비합리적 환상을 적극적으로 취하려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살펴보면,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이상하고 특이한 생물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듯하다. 화면엔 푸른색의 탁자와 창이 보이고, 화면 왼쪽으로 긴 수염을 단 어릿광대(할리퀸)를 중심으로 실내 공간 가득히 이름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생물들이 어지럽게 존재하고 있다. 인간, 동물, 기물 모두 녹아들어 나비, 애벌레, 물고기, 고양이인 듯 알 수 없는 기이한 형태로 변모하였다. 우리는 그가 그려낸 생물체들, 공간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그의 기이한 미지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는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점, 곡선, 직선들을 사용해 자신이 체험한 세계의 모습을 간결하게 나타내었다. 이로써 현실로부터 꿈의 세계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적 소망과 욕구가 ‘꿈의 공간’을 통해 나타난다. 그곳에선 의도치 않은 흥미로운 상황과 움직임이 상상을 통해 실현되어 새로운 창조적 공간을 구성한다. 꿈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고 무의식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만나고 사라지며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제작하며 창조적 상상, 꿈속에서의 여러 이미지를 새롭게 조합, 변형하여 그들만의 방식으로 온전히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의 무의식 세계의 자유로운 탐구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도 찾을 수 있다. 그 작품들을 감상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상상력을 더하고 자신의 주관적 해석으로 작품을 느끼며 그들만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꿈의 공간은 꿈을 꾸는 우리 모두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린 매력적인 공간이다. 꿈이라는 공간 속에서 어떤 신비롭고 흥미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까 또, 그 세계를 다시 곱씹으며 또 다른 어떤 새로운 환상이 창조될까 생각하며 잠에 들기 시작해보자.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희경. "초현실주의 작가 호안 미로의 형상에 관한 연구." 국내 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 대학원, 2002. 서울
윤효정. "꿈을 표현한 도자 조형 연구." 국내 석사학위논문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2013. 서울
박동희. "안견 몽유도원도에 내재된 현실과 이상 세계에 관한 연구." 국내 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8. 서울

도판

호안 미로, 어릿광대의 사육제 Harlequin 's Carnival, 1925년
안견, 몽유도원도, 14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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