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 03]
‘예술가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개는 예술가는 예술가라는 하나의 구분된 정체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예술가도 복잡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경제적 계층, 인종, 국적, 젠더와 같은 여러 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으며, 예술 작품도 독립적인 개체일 수 없다. 이러한 점을 인식한 메리 켈리는 회화나 조각 같은 시각적 언어보다는 개념적 언어을 통해 여성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1960,70년대에 영국에서 생활한 켈리는 여성해방운동, 학생운동, 반제도권 운동을 접하였고, 이때부터 예술가 노조에 가입한 후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개념미술을 다루기 시작했다. 켈리는 페미니즘이론과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에 특히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세기 중반 미술계에 큰 영향을 준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은 유아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환영과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자아가 형성된다는 이론으로, 이러한 자아는 진정한 자아가 아닌 '오인의 자아'로써, 인간은 안정적 중심을 결여하지만 완전성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이러한 '거울 단계 이론'은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는 '주체'의 불완전성을 제시한다. 즉 라캉은 '거울 단계 이론'을 통해서 '주체'가 사회적 위치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 혹은 상징적 질서로 들어가야만 하며, 곧 인간의 실질적 '주체'는 억압되어 나타난다고 보았다. 라캉의 영향을 받은 켈리는 자신 스스로가 인식한 ‘주체’인 여성이 사회적 위치를 획득하기 위해서 개념적 언어를 사용하여 작품활동을 진행하기도 했고, 반대로 인간의 실질적 '주체'를 증명하는 작품활동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여성과 일 : 산업에서의 노동의 분리에 대한 기록 Women and Work: A Document on the Division of Labour in Industry 1973-75>이 라캉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켈리가 개념미술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작품으로 금속상자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에 대한 탐사하고 설치작업으로 만들었다. 150여명의 여성근로자의 일과 직장, 남녀동일임금 정책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사진, 출근 카드, 월급내역, 음성, 영상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체'인 여성이 사회적 위치를 갖기 위해 언어적이고 상징적인 질서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언어로 제작된 정책과 영수증 등 기록물을 통해 증명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후, 여성 작가이자 아이의 엄마로 가사노동과 직장이라는 문제를 날카롭게 인지하고 있었던 켈리는 1976년 <산후기록>을 선보인다. 켈리의 아들이 썼던 기저귀, 낙서, 이유식 식단표, 아이 옷, 아이와의 대화기록, 말을 배우는 아이가 한 말등 직접 육아를 하면서 접한 거의 모든 재료와 소재를 활용하여 기록한 작업으로 공개 직후, 똥 기저귀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중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메리 켈리는 <산후기록>에서 개인적인 고백이라기보다는 분석적이고 지금까지는 단지 ‘기능 ’으로 간주되었거나 자연적 능력으로 간주된 모성의 경험을 여성의 욕망, 불안, 쾌락을 가시화했다. 켈리에게 여성은 자신의 여성됨을 긍정하고 그것을 재현/표현하는 실체가 아니라 “여성적인 것에 사회적으로 수여된 의미를 질문”하는 자이다. 즉, 사회가 부여한 '어머니' 지위를 갖는 여성이 아닌 자신 스스로를 인식한 불완전한 '주체'인 여성으로서 질문했다. 그리고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메리의 의심과 질문은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그리려는” 것과 연동한다. 메리는 가부장제가 용인한 모성의 신화 혹은 이데올로기에 맞선다. 모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재현은 “여성의 모든 관심과 활동을 배제한 채 양육을 여성의 책임의 자연적 범위로 구성하고 따라서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아이, 남편, 아버지)을 위한 존재 안으로 여성의 욕망을 밀폐시켜버린다.” 사회적인 위치를 갖기 위해 상징적인 질서인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된 여성을 실질적 '주체'로 다시 꺼내오기 위한 작업이다.
메리는 “나의 이야기도, 어머니의 이야기도 아닌, 1970년대 일어난 영국 여성 운동 내부 여성주의 논쟁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라고 평가했다. <산후기록>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1인칭 고백인 듯 보이지만, 작품 내부 일기에 등장하는 엄마인 ‘나’의 일상과 심리에 대한 과학적이고 정신분석적인 분석에서 메리 켈리는 모두 3인칭 관찰자이자 분석가의 태도를 취한다. 엄마로서의 나의 경험,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여성주의자의 분석”인 <산후기록>은 엄마의 경험, 여성주의자의 분석, 아카데믹한 토론, 정치적 논쟁과 같은 목소리들이 함께 직조한 텍스트이다.
예술가라는 정체성 외의 다양한 사회적 역할과 주체를 인식하고 작품화하는 첫 시도에는 메리 켈리가 있었다.
참고문헌 : Tate museum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