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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Mar 17. 2021

작품으로 사유하기: <얼론 투게더>
/ 디지털, 몸

[오리 05] 평면화된 신체, 덩어리진 몸

 디지털적 2차원과 3차원의 끊임없는 전환과 교차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안나 안데렉 Anna Anderegg의 <ALONE TOGETHER>는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2차원과 3차원의 교차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작가의 작품으로 이전 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자.  


 라이브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에는 연속적인 입체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웠으나 몇 개의 조명, 노트북, 휴대폰, 그리고 퍼포머의 신발이 뿜어내는 희미한 빛으로 긴장감 있게 채워졌다. 음악은 공간을 순환하며 퍼포머와 구조물, 관객 사이의 공백을 메웠고, 관객은 최면에 걸린 듯 보다 깊이 작품에 빠져들었다. 총 4명의 퍼포머는 노트북과 휴대폰 속 신체로 자신의 물리적 신체를 대체하며 구조물을 넘나들었다. 수직적이며 연속적으로 설치된 구조물과 인공 빛으로 인해 마치 디지털 프로그램 속 한 구간에 서 있는 듯했지만, 퍼포머들의 몸짓은 유연하고 부드럽고 좌절스럽기도 하여 인간적이었다. 그들의 춤이 남기는 그림자에는 작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작가의 작품은 지금 이 시대에 필연적으로 사유해야만 하는 분리, 고립, 연결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다. 세 가지 주제에서 인간의 몸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으며, 어떤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가.


© 안나 안데렉, 얼론투게더 Anna Anderegg, Alone Together, © 은암미술관 Eunam Museum of Art, 개인 촬영


© 안나 안데렉, 얼론투게더 Anna Anderegg, Alone Together, © 은암미술관 Eunam Museum of Art, 개인촬영





 1. 분리

화면에 보이는 신체 일부와 화면 너머 움직이는 몸의 행위가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부조화는 괴리감을 자아낸다. 2차원과 3차원의 자유로운 전환을 위해 괴리감은 제거해야만 하는 감정인가? 


[노트북 화면 속 얼굴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는데, 이에 반해 몸은 정적이다. 한편 몸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얼굴은 무표정이다. 노트북 속 얼굴만으로는 퍼포머의 행위를 예측하기 어려웠고, 예측했다고 해도 예상과는 다른 몸짓을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2차원 신체 일부와 3차원의 물리적 신체가 일치하지 않고 분리된 모습을 포착했을 때, 관람객은 이상한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보통 이런 분리의 대상은 육체와 감정이 아니었던가? 내면의 생각과 외면의 행동이 전혀 다른 경우는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그것이 육체로 전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격렬함과 냉정함이 공존하는 [노트북 + 물리적 신체]에게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2차원과 3차원 신체의 분리는 인간 간의 관계성을 더욱 '비인간적'이고 '차갑고', '정 없는' 그 무언가로 추락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속을 알 수 없다는 것, 거기에 더해 이젠 몸짓에서도 분리 가능성이 분명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인간관계가 결국 피상적인 그 무언가가 돼 버릴 수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2차원과 3차원 신체의 분리 가능성은 해방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자신의 ‘보이는’ 신체 일부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 관계 속에서 일종의 해방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 고립과 연결

우리의 몸은 물리적 고립과 영구적인 디지털 연결을 어떻게 견디고 진화하는가? (How do our bodies evolve and endure in a condition of physical isolation and permanent digital connection?) [1]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어가는 퍼포머는 바닥에 누워있는 다른 퍼포머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얀색 구조물에 들어가려는 한 퍼포머의 시도는 빈번히 실패하고, 그로 인해 넘어지고 쓰러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 그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듯 행위 하는 퍼포머가 있지만, 서로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들은 때로 기기를 통해 연결된 몸짓을 하기도 하고, 서로를 마주 보며 비슷한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고립과 연결이라는 모순된 단어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고립과 연결은 통상적으로 같이 쓰일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시대의 몸은 반강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지만 SNS나 화상 회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디지털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이전의 디지털적 연결과 지금의 디지털적 연결의 차이점은 이것이 대면 만남의 부차적인 수단이 아니라, 주요한 수단이 되어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리적인 접촉이 불가하고, 그런 만남이 언제쯤 다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덩어리' 몸은 계속 고립되고 있다.  


 안나 안데렉은 이러한 상황에서 '견디다(endure)'와 '진화하다(evolve)'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몸이 물리적 고립과 영구적인 디지털 연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디지털 연결을 통해 정서적인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 그렇게 하여 물리적 고립감을 정서적 유대감으로 극복하는 법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일 것이다. 필연적으로 몸이 물리적 고립감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 몸이 직면하는 물리적 고립 상태가 정서적 연결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런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 어쩌면 ‘진화’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퍼포먼스는 인류의 새로운, 그리고 인류에게 적합한 신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물리적 신체의 역할은 축소되고, 2차원으로 전환된 몸이 더욱 많은 기능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지만 ‘얼론 투게더’의 가치 아래에서 새로운 신체성이 확립된다면, 그것이 어떠한 형태던 인간은 새로운 형태의 몸으로 또 한 번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안나 안데렉, 얼론투게더 Anna Anderegg, Alone Together, © 은암미술관 Eunam Museum of Art, 개인 촬영


[1] 안나 안데렉, <ALONE TOGETHER>, 팜플렛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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