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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Mar 10. 2021

초현실주의와 현실

[그루잠 06]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 항상 등장했던 <기억의 영속성>은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내가 처음 본 초현실주의 작품 역시 <기억의 영속성>이었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보며 초현실이라는 명칭은 현실을 벗어난 비현실의 세계를 뜻하는 용어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그 명칭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듯 반현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궁극적인 현실에 다가감을 뜻하는데, 이 궁극적 현실은 이성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The Persistence of Memory, Salvador Dali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사조로, 역시 전후 등장한 다다이즘의 예술가(특히 파리 다다)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전후미술이 으레 그러하듯, 두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모두 전쟁을 불러온 과거의 것들에 반항하며 자연스레 과거의 전통적 미술에 대한 반동을 드러낸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1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혹독한 현실에 대해 다다이즘이 회피적인 태도로 부정의 정신을 내세우며 모든 것을 무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추구하였다면, 초현실주의는 이와 정반대로 무의식을 통해 제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이성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불행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 줄 새로운 리얼리티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현실은 환상과 명확히 구분된다. 환상은 현실에서 벗어나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판타지, 허구의 공간을 뜻하고 초현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도달한 무의식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이라고 하면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로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주목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의 목적과 프로이트의 영향 등으로 초현실주의 회화에는 초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초현실주의 초기에 등장하였다가 그룹 내에서 비판을 받은 오토마티즘은 종이에 펜이나 붓을 잡은 손을 대고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법에서 영향을 받은 기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 자체가 이성을 통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오토마티즘의 한계가 드러나고 초현실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게 된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결과에 인간의 개입을 최대한 피하고 우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종이를 바닥 등에 떨어뜨리고 종이 위를 칠해 종이 밑 물체나 바닥의 문양이 배겨나오도록 하는 프로타주 방식이 있다. 마지막 극사실 기법은 아마 우리가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가장 익숙하게 여기는 방식일 것인데, 작가 별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 다르다.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는 편집광적 비판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편집광이란 정신 착란에 가까운 병적인 집착을 뜻하며, 달리는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성적 기준에서 편집증 환자들을 평가하며 이들의 사고 체계를 인정하지 않지만, 편집증 환자들은 그들만의 사고 체계 분명히 있으며 오히려 그들이 환각을 일으켜 본 세계가 이성에서 벗어난 초현실에 가깝다고 여기며 이들의 사고 체계를 작품의 조형 방식으로 채택한다.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Premonition of Civil War), Salvador Dali

달리 외에도 책 표지 등 다양한 디자인 영역에서 활용되는 그림을 그린 작가 르네 마그리트 역시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 개념은 데페이즈망으로 이성적인 기준에서는 사물의 위치나 크기 등을 엉뚱하게 나타내거나 불가능한 결합을 만들어 표현하는 기법이다. 따라서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면서 관람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장면 앞에서 우리가 이성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궁극적인 리얼리티에 한발짝 다가가게 된다. 

Man in a Bowler Hat / Golconda, Rene Magritte

앞서 소개한 화가들에 비해 개인적인 경험을 모든 작품에 녹여내어 그림을 순서대로 볼 때 작가의 일기장을 본 듯한 느낌을 주는 화가가 있다. 또다른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 프리다 칼로이다. 2015년 소마 미술관에서 열린 프리다 칼로 작품 전시를 본 적이 있다. 내가 미술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전시였다. 전시의 모든 그림이 프리다 칼로의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초현실주의의 비현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이러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그 존재감이 너무 커서 당시 전시가 내 기억 상으로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합동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디에고의 작품이 단 한 점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프리다는 어릴 적 사고로 다친 몸과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으로 인해 평생 큰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것은 프리다 칼로 인생의 고통이 아니다. 프리다의 그림과 일기장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모든 아픔을 품고 계속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대표적인 작품 <부서진 기둥>에서 이러한 면모가 잘 나타난다. 당시 전시에서 이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 구분되어 있었고 커다란 작품을 둘러싼 스피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게는 그 소리가 프리다 칼로의 아픔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버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강인한 모습을 더 강조하는 것으로 들렸다. 실제로 프리다 칼로는 병이 악화되어 다리를 잘라내어 앉을 수 없게 되자 "발, 무엇을 위해 그것을 원하나? 나에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라고 하며 누워서 그림을 계속해서 그린다. 1953년 처음으로 자신의 개인전이 열렸을 때는 개막일에 침대에 누워 침대를  통째로 옮겨 전시 개막식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The Broken Column, Frida Kahlo

프리다 칼로는 자신이 초현실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그의 그림이 모두 프리다 칼로의 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는 사조 상으로 초현실주의자로 분류되며, 개인적으로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과 현실의 관계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통해 초현실주의 사조의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을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의 대표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현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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