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미학의 선언자 : 구스타브 쿠르베

[팥빙수 05]

by E 앙데팡당

“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천사를 내 눈앞에 데려와라. 그럼 그리겠다.”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가 남긴 말이다.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심화되고 실증주의 철학이 학문의 전반적 기초로 뻗어나가던 시대에 사실주의를 최초로 선언한 화가 쿠르베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가장 급진적인 변혁의 공간, 19세기 프랑스에서 사실주의 사조가 나타난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신분제 사회가 막을 내리고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불평등한 사회는 변화하지 않았다.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까지 이어지면서 중세 봉건-신분제 사회에는 금이 가고 있었고 이전과는 다르게 귀족과 왕족이 몰락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소수의 부유층이 권력을 잡고 있다는 점은 동일했다. 혁명에 성공한 부르주아 계급이 누리는 부와 사치는 도시의 빈민이 된 몰락한 자영농의 가난과 대비되었다.

스크린샷 2021-06-29 오후 10.53.18.png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 1844

초기의 쿠르베는 낭만주의 사조가 잔뜩 묻어있는 작품을 그리곤 했다. 1842년 쿠르베의 입선작 <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는 전원적인 풍경이 있는 자화상이다. 남들처럼 낭만주의 사조를 쫓아가던 쿠르베는 1848년 2월 혁명과 실증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Realism'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스크린샷 2021-06-29 오후 10.56.21.png 돌 깨는 초상, 1849

이후, 1849년 <돌 깨는 초상>을 발표한 쿠르베는 대중들로부터 질타를 받는다. 대형 그림은 귀족이나 왕족밖에 주문할 수 없었던 당시에 쿠르베가 그린 ‘돌 깨는 사람’은 프랑스에서 최하위층에 속하는 하루하루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가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찢어진 옷, 닳아서 헤져버린 신발, 학교에 가지 않고 노동을 해야만 하는 소년과 늙은 신체를 가지고 무릎을 구부리며 힘겹게 일하는 남성. 그의 그림 속에는 당대 프랑스 회화의 주요 고객층이 인정하기 싫어하던 모습이 담겨있었다.

스크린샷 2021-06-29 오후 10.57.24.png 오르낭의 장례식, 1850

쿠르베는 굴하지 않고 고향에서 열린 이름 모를 사람의 장례식을 거대한 크기로 그린다. 이전까지 회화 속 죽음은 신성하거나 극적인 비극감을 주는 순간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쿠르베의 장례식 그림에서는 누가 죽었는지 이름을 알 수 없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죽은 이를 기리는데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인물들도 보인다. 이처럼 쿠르베는 낭만화되고 이상화된 그림을 남기는 대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친 이상화와 추상화를 비판하고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예술가의 역할을 새로이 정의했던 쿠르베의 사실주의 사조는 왜곡과 객관화가 떨어지는 현대 사회에도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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