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 06]
[현대시와 현대 미술, 그 환상의 콜라보레이션-01 ]
현대 시는 유독 어렵다. 현대 미술도 그렇다. 이 파편 난 현대 사회를 묘사하듯 현대의 예술은 유난히 조각난 형태를 하고 있는 듯하다. 현대시를 읽으면서 분명히 읽어 내릴 수 있는 글자들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고, 현대 미술을 감상하며 애써 고개를 끄덕이지만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가득 찼던 적은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한 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범상치 않은 예술관을 공유하기 때문일까.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시와 현대 미술의 거장들은 유독 짝짜꿍이 맞아떨어졌다. 이들의 조각난 퍼즐 같은 작품들은 자기들끼리 합을 맞춰 자신들의 예술관을 관통하는 논리를 완성시킨다. 이 흥미로운 상호작용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감히 미술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는 입체파의 대표 거장, 피카소와 거트루드 스타인이다.
거투르드 스타인이 써 내린 피카소의 초상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 미술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는 점으로 유명하지만, (이와 관련한 글은 https://brunch.co.kr/@ewhaindependent/73 에서 읽을 수 있다.) 그 자신도 시를 쓰는 예술가였다. 20세기 초 현대 영미시를 대표하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T.S 엘리엇은 한 평론에서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에 대해 비평하기 위해 정신 이상과 관련한 용어를 사용했다. 박한 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스타인의 시를 한 구절 본다면 엘리엇이 어떤 측면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다음은 스타인이 쓴 시 「피카소 Picasso」의 한 단락이다.
(문장의 가시성을 위해 원문과는 다르게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단락을 나누었다는 점을 참고해주길 바란다.)
One whom some were certainly following was one who was completely charming.
One whom some were certainly following was one who was charming.
One whom some were following was one who was completely charming.
One whom some were following was one who was certainly completely charming.
스타인의 시는 보기에 마치 영화 <샤이닝>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언뜻 똑같은 단어와 문장의 반복 같아 보이기도 한다. 다른 단락도 크게 다르지 않다.
This One was certainly working and working was something this one was certain this one would be doing and this one was doing that thing, this one was working.
This one was not one completely working.
This one was not ever completely working.
This one certainly was not completely working.
이처럼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듯한 스타인에 시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 먼저 입체주의 혹은 큐비즘의 예술 철학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입체파가 태동할 20세기 초, 화가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포기"1) 한다. 카메라의 발명으로 사물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일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기계의 몫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기보다는 몸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본 사물의 형태를 동시에 그려내고자 했다. 2) 가령 바이올린의 예를 들어보자. 당시 화가들은 보이는 그대로의 바이올린을 그려내는 일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볼 때 보이는 측면과 바이올린의 정면에서 보이는 현과 공명 공, 그리고 바이올린을 쥠으로써 느끼는 촉감으로 인식되는 바이올린의 곡선을 그려냄으로써 바이올린이 가진 어떠한 본질을 화면에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입체파의 철학을 앞서 본 스타인의 시에 적용해 보자. 스타인은 단순히 "피카소는 매력적이다."는 말로 피카소의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스타인은 언어의 변주를 통해 자신의 친구인 피카소가 가진 어떤 핵심적인 인상을 말로써 그려내고자 한다. 앞선 도판에서 피카소가 바이올린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부분들을 동시에 그려냈다면, 스타인은 "charming", "working", "following"과 같은 단어들로 피카소를 그려낼 수 있는 표현들을 동시에 나열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스타인이 그 단어들을 복사하듯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앞선 인용구의 문단처럼, 문장 속에서 단어의 배열을 달리 하거나 표현에 미세한 차이를 첨가한다. 인용구의 문장을 예시로 들자면, 그러한 문장들 속에서 나타나는 변주되는 단어의 배열과 표현들을 통해 독자는 피카소가 자신의 세계관을 뚜렷이 가지고 세상에 의미를 창조해내는 매력("charming") 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거투르드 스타인이 말로 그려낸 피카소의 초상은 입체파와 화풍과 닮아 있다. 자신이 느낀 피카소를 붓과 물감이 아닌 언어로 그려냈다는 차이만이 존재한다. 앞서 입체파 화가들이 바이올린을 그리되 그것이 가진 여러 측면들을 담아 본질을 표현해내고자 했다면, 스타인은 피카소를 설명할 때 언어로 그가 본 피카소의 본질을 여러 가지 언어의 변주로 써내려 갔다.
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
아마 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을 보고 느낄 첫인상은 그의 그림이 놀랄 만큼 스타인을 닮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당시 피카소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피카소에게 스타인의 초상이 전혀 닮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카소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대답한다. “곧 닮게 될 것이다.”
거투르드 스타인의 초상이 이토록 스타인을 닮지 않은 이유는 피카소가 스타인의 초상을 그릴 때 그를 보지 않은 채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스타인의 외향을 똑같이 그려내는 일은 피카소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피카소가 그림을 통해 그려내고자 했던 스타인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스타인은 그 자신도 한 명의 예술가였다. 피카소가 회화의 영역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고자 했다면 스타인은 언어, 즉 시의 영역에서 혁명을 시도하였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언어를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언어의 역할에서 탈피해, 언어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향유하고자 했다. 스타인의 시 "Picasso"에서는 "charming", "working", "follwoing"과 같이 반복되는 라임이 두드러진다. 또한 비슷하게 반복되는 문장들은 마치 "간장공장 공장장"과 같은 잰말놀이를 하듯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는 앞서 입체파의 화가들이 화면 속 물체의 해독이라는 측면에서 관람자로 하여금 수수께끼와 같은 게임 제시함으로써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면 스타인은 언어 고유의 음악성과 특징들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언어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스타인은 언어가 단순히 의미를 담는 도구에서 벗어나 동등한 위치에서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처럼 피카소가 그려낸 스타인의 초상 속에서 우리는 언어의 새로운 측면을 자신만의 예술로 그려내는 스타인의 날카로운 지성을 읽어낼 수 있다. 무표정한 표정 속 느껴지는 스타인의 단호함과 뚝심, 채도가 낮은 화면 속에 느끼져는 스타인의 진중한 분위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화면 밖을 바라보는 스타인의 시선을 통해 당시의 파리의 예술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그가 가진 선구안을 다시금 떠올릴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피카소가 읽어낸 스타인의 본질이며, 그는 이 초상화를 기점으로 입체파라는 완전히 새로운 화풍을 시도한다.
이렇듯 우리는 현대 예술의 두 거장이 써내라고 그려낸 서로의 초상을 보았다. 비록 이 둘은 각자가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를 설명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재능 있는 동료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은 맞닿아 있다. 더불어 동시대의 예술에 대한 고민이 담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현대시와 현대 미술에 대한 어떤 편린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한 예술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 분야를 넘어 동시대의 다른 장르의 예술 또한 탐독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여러 가지 측면이 동시에 그려진 바이올린을 통해 우리는 그것의 본질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시대를 표현한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함께 바라본다면 그 시대와 예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시와 현대미술은 그 자체로만 보면 난해하기 그지없지만, 시대와 예술에 대한 고민이 담긴 스타인과 피카소의 작품을 함께 보았을 때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참고문헌
1) E.H 곰브리치 (2013), 『서양 미술사 (문고판), 예경, 443p.
2) E.H 곰브리치 (2013), 『서양 미술사 (문고판), 예경, 44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