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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ul 07. 2021

80억 개의 세계

[그루잠07]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의 책 '화성의 인류학자'에는 뇌에 병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후천적으로 병을 가지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의 앞부분에는 이들 중 화가인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소개되어있다. 


1. 교통사고로 색맹이 된 화가 조너선 I.가 그린 그림
2. 기억을 지우거나 멈출 수 없는 화가 프랑코 마냐니의 그림
3. 자폐증이 있는 소년 스티븐의 그림


1. 

조너선은 원래 화가였기 때문에 색맹이 된 후에도 그전에 해왔듯 채색화를 그렸는데, 그 결과가 첫 번째 그림이다. 기억을 바탕으로 적당한 색을 사용하여 꽃을 그렸지만, 친구가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그림을 다시 찍어서 보고 나서야 형태가 잘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조너선은 색채 감각이 매우 뛰어났었지만, 사고 이후 섬세한 색조의 구분이 아닌 극단적인 명암의 대비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였다. 처음에는 세상이 너무 역겹고 지저분하게 보여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흑백의 세계에 적응하게 되었고 자신이 보는 세상을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하였다. 


2.

프랑코는 발작성 성격 증후군의 증상인 매우 선명한 꿈, 발작에 가까운 환각, 계시와 무아지경 등을 겪었다. 이는 저명한 예술가들도 겪던 증후군인데, 대표적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 반 고흐, 모파상, 플로베르, 루이스 캐럴, 파가니니, 프루스트 등이 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계기인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는 경험성 발작을 일으키는 과거를 환기하는 특정 자극의 한 예이다. 프랑코는 어렸을 적 자신이 살던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폰티토를 마치 머릿속에 동영상으로 저장해놓은 듯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폰티토의 풍경을 끊임없이 그림으로 그려낸다. 나중에 프랑코가 모두가 떠나버린 폰티토를 방문하였을 때 처음에는 큰 실망을 하였지만, 해가 떨어지는 변하지 않은 장면을 보고 남아있던 한 이웃을 만나며 새로운 폰티토를 인식한다. 현재 그는 이 날 본 새로운 폰티토를 그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스티븐이 겪고 있는 자폐증은 스스로 외부 세계의 자극을 최대한 외면하고 차단하여 정신적 고립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자폐아 중 비범한 재능이 어린 시절부터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는 비율은 10% 정도에 이르며, 이들 대부분은 뛰어난 기억력과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고력을 특징으로 갖는다. 스티븐은 순간적인 장면을 기억하는 것과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그림 역시 시카고 극장과 노트르담 성당을 단 몇 분 동안 보고 그린 그림이다.  스티븐이 10살이던 당시 A~Z까지의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런던의 명소를 그려 <런던 알파벳> 연작을 선보였다. 


이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이들의 그림과 설명을 통해 손상된 뇌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일부분이나마 알 수 있으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올리버 색스 박사 책의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그는 구체성을 잃어가면서 추상성을 얻었고 그래서 선, 경계, 윤곽선 등 모든 구조적인 요소들에 대해 전혀 다른 감각을 발전시켰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졌다고 판정받은 이들은 장애의 스펙트럼에서 가운데보다는 양쪽 끝에 가까운 사람들일 것이다. 장애가 있는 수많은 사람 중 일부가 사회에서 잘 살아감을 근거로 모든 장애가 있는 이들이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른 종류와 정도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조금씩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조그마한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반면, 그 차이가 조그맣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한가지 방식으로 제시되는 객관적인 세계가 이들이 돌아다니거나 심지어 그저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불편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수는 매우 많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설계된 세계를 기준으로 조그마한 편차를 넘어 정상 범주의 이들과 매우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언제나 존재함을 인식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과 관심에 꼭 이타적인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작은 편차 사이에 살고 있는 이들 역시 언제 그 범위를 벗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기적인 이유에서라도 동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타인과 다른 각자의 주관적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약 80억 명의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에는 최소 80억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의 표준화된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과 이외의 사람들로 구분 짓기보다는 각자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생각을 갖고 서로의 세계에 관심을 갖는다면,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세계가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세상으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그저 또 하나의 주관적 세상일 뿐인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6월 27일 포스트 팡당과 함께한 대담에서 장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리님께서 barrier-free가 아닌 barrier-conscious가 중요하며 더욱 근본적인 대안임을 주장한 작가님을 소개해 주셨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겪어본 한국 사회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나 배타적인 곳이라고 생각하였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알고 있는 것은 배리어 프리 디자인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종류의 장애에 일일이 대응하기 위한 배리어 프리 디자인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 자체의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배리어 프리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함을 느꼈지만, 너무 물리적인 장벽 해소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배리어 컨셔스는 모든 종류의 장벽을 인식하고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뜻한다. 계단 대신 경사로를 만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안심하기보다는 경사로조차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 추상적이지만, 훨씬 근본적이고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배리어 컨셔스 개념을 먼저 적용하기에는 배리어 컨셔스를 기반으로 하는 효율적인 도움을 위한 배리어 프리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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