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미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웃사이더는 인사이더의 틀을 부술 수 있는 힘이 있다. 덴마크의 예술가, 아스거 욘 (Asger Jorn, 1914-1973)이 예술을 어떻게 대안적 언어로서 구사하고 있는지 보자. 그리고,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주류를 함께 비웃어 보려고 한다.
다음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서문 중 일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주요 서술 역사 속 가려진 조각들을 발굴, 조명하여 개인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역사 읽기의 대안적 시각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역사를 회고하고 서술하려는 국립현대미술관이 Asger Jorn을 한국으로 불러왔다. 이 점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먼저, 주류의 역사를 향한 갈증과 동경을 깰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서양 미술의 주요 서술 체계 안에 편입되고자 하는 묘한 욕심이 있다.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예술에 대한 갈증이 있고, 확장된 세계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당연히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과 흐름이 있고, 여기서 개인의 역사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서양 미술의 주요 서술 체계를 아는 것이 미술을 조망하는 기본적인 단계라고 할 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책을 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 흩뿌려진 수많은 미술 행위들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 알아 차려지는 걸까.
<이국 정서>, 1959, Asger Jorn, 61x50cm, (기존 작품에 수정), 욘 미술관 소장
‘미술사’는 미술을 통해 본 역사, 또는 미술의 역사적 흐름 등을 밝히는 작업을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쓰고 있는, 또는 누군가에 의해 쓰여 졌던 역사에 의존하여 역사적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역사가 서술하고 있는 어떠한 속에 우겨 넣으려 않아도 존재하는 흩어져 있는 문화, 그리고 미술들이 있다. 흩어져 있는 미술의 다양한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와 역학관계를 발견한다. 하나의 사건, 한 명의 인물, 하나의 그림이 던지는 새로운 관점!
조수미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했다. 어떤 개인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과 동시에 우리는 국위선양의 시선으로 어떤 감동을 받는다. 욘은 그 프레임을 거부했다. 자본주의와 국제 권력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룰에 따르지 않겠다는 의견을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주류는 이상하게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당황한다; ‘왜 이걸 거부하지?’ .
메인스트림의 시선에서는, 욘이 구사하는 예술, 그리고 상징적인 행위들이 매우 신선하고, 어떤 주류 미술사의 행보에 큰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류가 이런 새로운 관점을 전유할 수 없게 되었다.
욘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욘은 주요 미술계 밖에 있다는 점에서 아웃사이더이다. 욘이 수상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웃사이더의 입장에서 인사이더의 룰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이더, 또는 인사이더를 선망하는 집단과는 다르게. (물론 이들 간에 어떤 가치의 위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욘은 단순히 국제 미술계에 어떤 충격을 주기 위한 전략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뒤샹이나 앤디 워홀이 의도적으로 현대미술계의 구설수를 통해서 기성품 또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한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욘은 어쩌면 국제 질서에서 배제된 자신의 경험 그 자체가 주류가 서술하고 있는 역사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주류의 관점에서는 이를 "대안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욘에게는 이것이 대안이 아니라 원래부터 "답"이었을 수도 있다.
이 맥락에서 어쩌면 욘은 미국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자본주의의 상징으로서 미국에 대해서 말이다. 세계대전과 냉전 체제를 모두 경험한 욘이 표현하고자 했던 국제 체제에 대한 반감을 다음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황금돼지: 전쟁의 환상> 이라는 제목을 통해서도 욘이 표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다음 연작에도 밝히겠지만, 욘은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로 자본주의에 큰 거부감을 느꼈던 인물이다. 황금과 돼지를 통해 자본주의와 탐욕의 탐혹한 결과로서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황금돼지: 전쟁의 환상> 1950, Asger Jorn, 60x100cm, 욘 미술관 소장
아스거 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때로는 상상의 생명체들의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원초적인 본능을 통해 사람들 간의 근본적인 갈등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짐승을 대상화하여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자체를 인간짐승으로 그려야 한다" 욘은 '인간짐승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기에 드러난 잔인하고 공격적이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설명 참고)'을 의도적으로 기괴하게 묘사하며 '대안적 언어'로서 미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스거 욘 1부에서는 역사 안에서 욘의 경험과 위치,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 속에서 욘의 행보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야기해보았다. 다음 2부에서는 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술을 통해 대안적 언어를 구사하려고 했는지 상세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모그04 2019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