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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ul 18. 2021

일상을 변주시키는 양혜규의 세계

[오리08]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 양혜규 - O2 & H2O> 전시 리뷰 

: 일상을 변주시키는 양혜규의 세계


 한 작가의 전시 공간을 ‘○○○의 세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투적일 수 있으나, 이번 전시는 양혜규 작가의 작품들이 짜임새 있게 직조된, 기묘하고 흥미로운 ‘양혜규 월드’ 자체였다. 관객은 다양한 기법을 통해 일상과 기물을 다각적으로 변주해내는 작가의 시도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시도는 관객의 일상성에 해방감과 긴장감을 부여하여 일상에 또 다른 변주를 일으킨다.


  변주는 자신의 세계에서 작가의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겠다는 일종의 ‘통과 의례’로 시작된다. 관람객은 자신이 서 있는 배경을 세상 어느 곳으로도 바꿀 수 있는 <크로마키 벽체 통로>를 통과하며 <래커 회화>를 감상하게 된다. 그물망, 무뎌진 칼 등으로 대표되는 작가의 일상적 순간과 빗방울, 벌레, 나뭇잎 등과 같이 우연히 내려앉은 자연물의 흔적이 맞닿아 있는 래커 회화는 순간에 영원성을 부여한다. 미술관은 래커 회화가 만들어진 여름날과는 온도와 습도 등이 전혀 달랐으나 우리는 크로마키형 건축물의 힘을 빌려 작가의 일상이 존재하던 작업실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작가의 일상과, 작가의 여러 순간이 정지된 회화를 감상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에서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박제해보는 시도로 이어진다. 일상을 묵묵히 채워오던 것들의 순간을 정지시켜 봄으로써 관객은 그들과 이전보다 적극적인 관계를 맺어, 밀도 있는 일상을 꿈꾸게 된다.


 래커 회화를 통한 일상에 자극은 ‘이질성의 침투’로 방식을 달리하여 우리의 일상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중간 유형>과 <소리 나는 동아줄>, <소리 나는 백설 어수선 불룩>이 전시된 공간은 마치 이질적인 유기체들의 놀이터 같다. 다리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만 있는 것 같기도 한 이들의 모습은 꽤 그로테스크하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단순히 불쾌한 감정 혹은 당혹감을 불러오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일상에 ‘침투’한다. 그런 침투로 인해 관객의 일상성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일종의 해방감을 맞이하게 된다. 이 공간의 작품들은 흡사 공기의 진동과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신성한 춤을 추며 의식을 거행하는 한 무리같이 느껴진다. 그들의 신성한 제의는 일상에서 전혀 만나볼 수 없는 아주 기이한 것이지만, 그 기이함은 사람들을 반복적 일상으로부터 탈출시켜 자신들의 제의로 완벽하게 불러들이기에 적절했다. 

중간 유형 - 서리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 2020
중간 유형 - 아쿠아 털보 전사 방패, 2019

 작가는 온전히 이질적인 존재뿐만 아니라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다. 작가의 전시장에서 마우스, 냄비, 다리미, 드라이기는 거대해지고, 온 표면에 방울을 입은 채, 곳곳에 털이 자라 있어 흡사 괴물이나 벌레처럼 보인다. 공학적 기능은 사라지고, 기괴하게 변모한 사물들은 방울 소리와 결부되어 더욱 강력하게 평범한 일상에 가변성을 더할 만큼 위력 있는 존재가 된다.

소리나는 가물, 2020

  반면 <구각형 문열림>은 익숙한 사물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부각하며 일상성의 탈피를 위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구각형 문열림>은 4가지 유형의 동그란 버튼형 문손잡이가 구각형을 이루며 설치되어 있다. 닫힌 공간 속 구획성을 넘나들게 하는 필수적 요소인 ‘손잡이’는 그것을 돌리거나 혹은 잡아당겼을 때, 새로운 공간을 내어준다. 작가의 구각형 문열림은 관객에게 흡사 ‘소환술’처럼 다가오며, 어떠한 세계든 손잡이를 통해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음을, 혹은 넘나들 수 있음을 각인시킨다.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무수한 경계 앞에서, 양혜규의 손잡이를 떠올릴 수 있는 이들은, 경계 너머를 무한히 상상하고, 때론 스스로가 손잡이가 되어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매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관객의 일상에 변주를 일으킨 것으로 이 전시의 의미를 결론짓기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훨씬 거대하다. 하지만 일상을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일상도, 현상과 사건도, 더 나아가 세상도 다시금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하는 것, 그것이 땀과 눈물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 말하는 그의 세계에서, 일상성의 변주와 해체를 경험하는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일상을 재구축하고, 화학식 마냥 단순 명료해진 주변의 존재와 현상들이 지닌 함의를 살펴보려 시도하게 된다. 전시장을 나와, 치열하게 시도하며 양혜규의 세계와 닮아가려는 이들이 모인 곳엔, 물도, 공기도 각자의 삶을 온전히 지키며 공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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