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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Aug 20. 2021

죽고 싶은 여자들

[E앙데팡당X아트렉처/수풀]

"Nam Sibyllam quidem Cumis ego ipse oculis meis vidi
 in ampulla pendere, et cum illi pueri dicerent: Σιβυλλα
 τι θελεις; respondebat illa: αποθανειν θελω."


한 번은 나는 내 눈으로 쿠마의 무녀 시빌이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음을 보았다. 

병사들이 그를 향해 물었다.  “시빌,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오?” 

그러자 시빌이 말했다. “나는 죽고 싶소.”  


-T.S. Eliot의 "The Waste Land" 중 일부 인용.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들은 결말에서 자신들을 둘러싼 가부장적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절벽을 향해 뛰어든다. 이 결말을 두고 누군가는 이들은 추락하는 게 아니라 도약한다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해석이 썩 마음에 들었었다.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해방한 델마와 루이스의 선택을 비극으로 보지 않은 게 어떤 통쾌함을 선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안나 카레니나의 결말에 대해 비슷한 해석을 접하게 되었다. 안나의 자살 역시 죽음을 향한 퇴보가 아니라 이상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요지의 글이었는데, 좋은 글이라는 인상과는 별개로 <델마와 루이스>의 결말을 접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전과 같은 통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여성의 자살 수치가 이례적으로 늘어났다는 요즈음, 현실 속 여성들의 자살 소식이 전하는 비애감이 예술 속의 자살이 주는 해방감을 가렸는지도 모른다. 

  여성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예술 작품들에서 수치와 권태에 물든 삶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미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딘가 망가졌다고 여겨지는 삶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미술 속에서 재현되어 온 죽고 싶은 여성들을 소개한다. 

  


귀도 레니, 루크레티아, 1626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의 도상이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남성 자살자들과는 달리 그들의 자살이 어떤 이상과 맞닿아 있다는 부분이다. 사실 미술사 속에서는 자살하는 남성들의 도상 또한 꾸준히 존재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성별의 구별 없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들이 미술 속에 표현된다. 그러나 자살하는 여성 도상에서는 비록 그 자살의 동기는 남성 자살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죄악에서 시작될지 언정 끝은 어떤 이상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루크레티아는 로마 시대에 그 정숙함을 인정받았던 여성이다. 그는 부패한 로마 제국의 귀족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다.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은 그녀가 남편 외의 인물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기꺼이 용서하나 그는 수치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정숙하고 현명한 여성인 루크레티아의 죽음은 로마 시민으로 하여금 부패한 권력에 대해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는 로마가 공화정을 세우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루크레티아는 스스로를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살아있는 여성은 가질 수 없는 권력을 가진다 1). 그는 순결을 잃은 몸, 수치에 물든 몸을 죽음으로써 탈피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크레티아의 죽음은 더 이상 그 자신의 것이 아닌, 당대의 여성들의 응당 따라야 할 이상화된 삶의 대안으로 탈바꿈한다. 이 점에서 루크레티아의 도상에서 개인의 고통이나 자살을 앞둔 개인의 고뇌는 더 이상 중요시되지 않는다. 불결한 여자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것으로 표상된 루크레티아의 이미지는 순결의 메타포 2)를 뒤집어썼고, 그리하여 자살은 삶이라는 비극을 이상화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한다. 



George Frederic Watts, 익사로 발견, 1848-1850

  여성의 자살이 이상적으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또 다른 예시는 19세기 영국의 익사한 여성 도상이다. 앞선 루크레티아의 죽음은 자살을 수치스러운 삶에 대비되는 이상화된 대안으로 제시했다면, 19세기 익사한 여성 도상은 자살이라는 행위와 그 방식을 이상화시킨다. 

 19세기의 익사한 여성 도상에서 등장하는 여성들도 앞선 루크레티아와 마찬가지로 성적인 이유로 인해 타락하고, 이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고 여겨진다. 이는 19세기 당시 영국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는 점과 맞물려 있다. 이 시기의 영국 여성들은 산업화의 이유로 집안에 머물러 있던 과거와 달리, 사회로 나와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처럼 어머니라는 기존의 역할에서 탈피한 여성들을 바라보는 영국 남성들의 불안감은 이러한 익사한 여성 도상에 드러나 있다. 이들의 불안감은 이처럼 가정을 떠나 사회로 진출하는 여성들이 성적으로 타락할 위험에 처하고, 그 타락으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는 경고가 담긴 도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익사한 여성의 도상에서 주목해봐야 할 부분은 죽음의 방식이다. 앞서 짧게 언급한 바 있듯, 19세기의 영국에서는 비단 여성의 자살만이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남성의 자살 또한 빈번하게 그려지는 소재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19세기의 영국에서 그려진 남성과 여성의 자살은 그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좌: 단두대를 이용한 자살를 그린 경찰 신문의 목판화             우: George Cruikshank의 판화


  "익사"라는 사인에서 알 수 있듯이 미술 속에서 여성의 자살은 손쉽게 이루어진다. 그들은 그저 강으로 몸을 던진다. 그렇게 뛰어내린 그들의 시체는 익사라는 방식을 고려하더라도 생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한다. 반면 남성의 자살은 여성의 방식과 다르게 나타난다. 이들 역시 사업을 실패하거나, 혹은 유다처럼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수치스러운 삶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여성 자살자들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은 목을 매달거나 권총 자살을 하거나 독약을 먹는 등의 폭력성을 가진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는 여성적 죽음과는 대비되는 방식3) 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들은 단두대나, 십자가 등을 이용하여 엽기적인 죽음을 선택한다. 앞서 여성의 죽음이 그 과정이 노골적으로 전시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모습이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남성의 자살이 표현된 방식은 일견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는 남자, 1869, 목판화


이처럼 남성 자살자의 도상에서는 어떠한 구원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죽음은 과장되리만큼 희화화되어있으며, 죽음의 폭력성이 그들이 선택한 자살의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러니 남성에게는 자살은 죄악과 수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손쉬운 수단이 아니다.  여성들과는 달리 그들에게 자살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이상화된 그림들은 여성들에게 자살이라는 선택지에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남성 자살자의 도상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죽음이 현실의 어떤 부조리함을 넘어 결국 이상적인 결과를 선사해줄 거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죽음으로 가는 일이 더러운 삶과 달리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Gustave Dore, The bridge of Sighs,1882


  그러나 이처럼 죽음을 통해 손쉽게 “수치스러운” 삶에서 탈피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우리는 이제 그림 속에서 죽음을 선택한 여성들은 당대 사회의 이상에 따라 부끄러운 삶에서 탈출했음을 안다. 그렇다면 그림 밖에서 수치스러움을 부여잡은 채 끝까지 살아 간 여성들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자화상, 1638-1639년 경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esia Gentileschi)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벤 유디트>로 유명한 바로크 시대의 화가이다. 그 역시 앞서 언급한 루크레티아를 그린 적 있다. 젠틸레스키는 루크레티아와 마찬가지로 성폭행의 피해자로 알려져 있다. 젠틸레스키는 가해자인 그의 스승을 고소한다. 그러나 그 사건의 쟁점은 젠틸레스키의 피해 사실이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순결했는지의 여부였다. 젠틸레스키는 순결을 증명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모진 고문을 견디어 냈고, 결국 성폭행범과의 소송에서 승소하였다. 루크레티아의 도상이 표방하는 이상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여성으로서 응당 지켜내야 할 가치인 순결을 지키지 못한 젠틸레스키는 수치스러운 삶을 이어갈 바엔 차라리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 지 되짚어 보자. 젠틸레스키는 당시 바로크의 역동적인 미학을 발현시킨 뛰어난 작품들을 그려 냈고, 선구적인 시각을 가진 화가로서 현재까지도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그를 성폭행한 남성 작가는 어떠한가? 현재 누가 그의 이름을, 더 나아가 누가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가? 그의 인생에서 유의미한 단 하나의 타이틀은 그가 성폭행범이라는 것이다. 그런 삶이야 말로 한 인간으로서도, 한 예술가로서도 수치에 물든 삶이다. 


캐롤라인 노턴의 초상

  19세기 영국의 타락한 여성 도상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가정을 제대로 일구지 못했을뿐더러 행실이 바르지 못해 간통죄로 고소를 당한 여성. 앞선 묘사는 당시 영국 사회가 생각하던 타락한 여성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캐롤라인 노턴(Caroline Norton)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는 19세기 영국 사회의 부당한 여성법을 바꾸는 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남성에게 무조건적으로 양육권이 주어지는 이혼법부터 여성이 벌은 수입이 그대로 자신의 몫이 될 수 있는 재산법까지 그는 불합리한 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실제로 이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 “우리는 법을 어기는 사람이 아닌, 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We don't want to be law-breakers. We want to be law-makers.)”라는 서프레제트 에멀린 팽크허스트 (Emmeline Pankhurst)의 말은 캐롤라인 노턴의 정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19세기의 미술 속에서 기준으로 보자면 이 타락한 여성 또한 템즈강에서 떠내려오는 시체였어야 한다. 그러나 노턴은 결국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회의사당 프레스코화로 남겨져 있다. 

  그러니 수치스러운 삶을 탈피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정말로, 죽음이 이상을 이룩하는 대안으로써 기꺼이 선택해야 되는 것인가? 한 여성의 삶을 추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하며,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손에 쥐어 주는 이들은 누구인가. 


 Daniel Maclise , <The Spirit of Justice>, 1847-9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의 비고에 이전과 달리 큰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여성과 자살이라는 관념이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이제는 그 둘 사이의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전쟁의 상황이 아닌데도 타인의 죽음을 너무나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참한 일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여성 개인의 결정에 어떤 말을 얹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차원을 넘어 예술 속에서 자살을 삶의 대안으로써 계속해서 재현해내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이를 이상화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누군가는 예술 속의 질서는 현실의 논리와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또 죽음이 어떤 맥락에서는 예술 속 여성들에게 해방을 선사한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추하고 시시하고 수치에 물든 삶일지 언정 결국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살아있는 자의 몫이었다. 그러니 박제된 죽음보다는 썩어 없어지는 삶을 기꺼이 선택하고 싶다. 결국 새 싹은 언제나 썩어버린 것에서부터 피어나지 않는가. 







참고문헌

1) 론 브라운(2003), 자살의 미술사』, 다지리, p. 119.

2) 론 브라운(2003), 『자살의 미술사』, 다지리, p. 120.

3) 론 브라운(2003), 『자살의 미술사』, 다지리, p.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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