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무01] 지금까지 이런 예술은 없었다.
작년 12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마르셀 뒤샹전이 한창이다. 필자는 모 영화도 마르셀 뒤샹전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오늘날 뒤샹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샘>이다.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 한 구석에서 보았던 새하얀 변기, 바로 그것이다. 마르셀 뒤샹은 이 변기, 아니 <샘>이라는 작품을 통해 미술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들의 근본적인 생각을 흔들어 놓았으며, 그로 인해 현대미술사에서 20세기 개념미술의 선구자,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로 칭송 받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만일 뒤샹을 모른 채로 전시를 보았다면? 혹은 <샘>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미술사의 흐름을 몰랐다면? 전시를 보고 당황스럽거나, 심지어는 화가 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그 당시 주류 미술가들과 평론가들처럼 말이다.
혜성같이 나타난 직접적인 오브제의 등장은 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그동안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던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진 ‘훌륭한’ 것들 이었다. 성스럽고 신비로운 신들의 이야기, 위대한 영웅들과 왕들의 역사, 그리고 혹은 여성의 누드이거나. 요점은 작가가 창작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예술혼이 담긴 작품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대리석처럼 매끄럽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샘>을 보라! 그것은 전시장에도 욕실용품 제조업장에도, 건너편 상가에도, 옆집에도 있다. 작가가 직접 창작 하지도, 유일 하지도 않은 <샘>의 예술성은 무엇인가? 이미 만들어진 ‘레디 메이드’인 오브제들을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미술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의도를 찾고, 미술작품의 미적인 형식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등, 더 나아가 미술작품의 희소성과 가치를 판단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이러한 기존의 사고와는 달리, 뒤샹의 <샘>은 흔하디 흔하고, 왠지 모르게 지극히 고귀한 것 과는 거리가 먼 ‘변기’라는 오브제를 통해 미술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필자는 문득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눈 앞에 있는 오브제를 캔버스에서 옮겨 그리는 것에서부터 오브제를 캔버스 밖으로 빼내어 전시장에 그대로 전시하는 것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극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실재하는 오브제(사물)와 그것을 모방(복제)한 캔버스 안의 오브제, 그리고 실재하는 오브제는 대개 이미 만들어진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가지 엉뚱한 예를 들어보자. 눈 앞에10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고, 빛나는 광채에 매혹된 나머지 그 다이아몬드를 캔버스에 옮겼다. 그 매혹적인 다이아몬드 그림은 전시에 출품되어 전시장에 걸려 여러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나, 10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는 비밀금고에 갇혀 영영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 예시 안에는 원본과 복제품이 나온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접하는 그림과 조각과 같은 예술작품들 또한 원본을 모방하거나 복제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그런 작품들은 수없이 많이 복제되어 세계 여러 박물관의 어딘가의 모퉁이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복제들을 ‘시뮬라크르(simularce)’ 라고 하는데, 머리가 아파오는 관계로 이 개념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더 다룰 예정이다.
창작은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어쩌면 미술에 있어서 100% ‘순수한 창작’을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오브제를 통해 미술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디까지가 작가의 순수한 작품 활동이며, 어디까지가 작가의 주관성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