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무03]
이화 창립 133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 <분청사기>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2층 기획전시관 1~5실
2019.05.31~2019.12.31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는 5월부터 이화 창립 133주년을 기념하는 소장품 특별전 <분청사기>가 한창이다. 더욱이 이번 전시는 지난 특별전에서 보인 청자와는 다른 분청사기만의 독특한 매력을 소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맑은 비색의 고려청자나 덧없이 순수한 조선의 백자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나 한편, 고려와 조선 건국 이후 백자가 중심을 잡기 전까지 분청사기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청사기는 15세기 당시의 문헌기록에서도 조차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다. 분청사기라는 명칭은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1930년대 ‘분장회청사기’라 정의 내린 것을 줄여 부르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유래했는데 그 말인즉슨, 백토로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라는 뜻이다.
분청사기의 원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백토분장기법은 분청사기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넓고 굵은 붓으로 백토를 칠해 붓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는 귀얄과 그릇을 백토에 덤벙 담가버리는 덤벙은 순백자에 대한 동경과 회화적인 과감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분청사기는 백토분장을 구사한 어떤 종류의 기법에서도 모두 자연스럽다. 인위적으로 무늬나 장식을 계획하지 않고, 무심한 듯 대담하게 분장을 한 분청사기는 천진난만함과 자연미가 느껴진다.
백토분장뿐만 아니라, 선으로 무늬를 선각으로 한 것은 경직된 선이 아닌 자유롭고 회화적인 선이다. 유로문, 어문, 모란문 등에서 볼 수 있는 자연물들의 생김새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분청사기철화 모란문 병의 모란은 추상적이기도 하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윗부분이 좁고 아랫부분이 불룩한 물방울 같은 형태는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적인 기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함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당시 백자가 조선 왕실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분청사기 가마는 백자 제작으로 전환하거나 축소되었는데, 이때 제작된 분청사기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아 자유롭고 작가의 개성이 잘 들어난 그릇으로 생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분청사기는 비단 투박하고 거칠게 만들어진것만은 아니다. 자칫 분청사기는 대충 만든 것이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었는데, 분청사기는 같은 무늬를 여러번 도장처럼 찍어낸 인화문으로 장식되기도 했다. 흐트러짐 없이 빼곡하게 같은 무늬를 반복해서 찍을 때의 마음가짐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인화문을 통해 그 당시의 기술력과 정성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는 백토분장과 달리, 인화분청사기는 한국만의 고유성을 지닌 자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적인 장식성이 돋보이는 인화문은 현대인의 미감에도 잘 어울리는 현대성이 담겨있다고 본다. 이를 강조하듯 이번전시에서는 약 500년의 시차를 두고 현대 화가인 수화 김환기의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다시 표현된 인화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순백자를 동경하여 회청색의 사기에 흰 백토를 칠한 것인데 왜 꼼꼼히 칠하기는 커녕, 거친 붓자국을 그대로 두고 백토가 흐른 자국까지 남겼을까? 이전에 분청사기를 처음 봤을 때는 청자도 백자도 아닌, 투박하고 덜 다듬어진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고 느껴졌다. 분청사기의 독특한 미감이 이해되지 않아, 그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일시적인 과도기적 현상인 것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러나 분청사기는 보면 볼 수록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붓자국을 통해 속도감과 회화성을 느낄 수 있는 귀얄과 대범한 우연의 미학이 담겨있는 덤벙, 그리고 추상적인 인화문까지, 분청사기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면모를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비록 완전한 백자는 아니지만 분청사기가 지닌 이런 독특한 요소들은 격변하던 시대의 변화와 생동감을 보여주고, 시대가 변해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그 시대 나름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 이화 창립 133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 <분청사기> 전시 리플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