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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un 27. 2019

동서양 미술의 이색적인 만남, 우키요에

[그리미04]


무더운 더위가 우리 곁에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이맘때쯤 꼭 찾게 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일본 우키요에 대표작인 가쓰시카 호쿠사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이다. 본고에서는 여름을 맞이하는 자세로 이 작품을 중심으로 우키요에에 대해 짚어보고 나아가 일본의 우키요에가 서양미술과 만난 이색적인 순간을 포착해보고자 한다.

먼저 ‘우키요'(浮世)라는 말 자체를 풀이하면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 즉 현세의 이모저모를 그려낸 그림이라는 뜻으로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에도 시대에 성립되어 당대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려낸 풍속화의 형태를 말한다.  


우키요에가 꽃피우던 당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본과 유럽은 이미 19세기 이전부터 일본과 무역하던 네덜란드를 통해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인지하고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나아가 구체적으로 일본의 문화가 유럽에 알려지며 영향을 끼친 것은 1862년 런던, 1867년 파리 등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통해서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도자기와 차, 부채, 우키요에 판화 등이 소개되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29/1833년, 25.4cm x 37.5cm

그중 필자는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집중적으로 알아보았다. 이 작품은 일본 에도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목판화로 <후지산 36경>(1831년) 연작 중 첫 작품이며 니시키에(다색으로 제작된 목판화)의 일종으로 우키요에 대표작으로 알려져있다.


장면 전체를 지배하는 거센 파도 그리고 완벽한 나선형 중심이 그림의 중심과 정확히 일치한다. 파도 사이에 휩쓸린 배 세척 뒤에 원경의 눈 덮인 후지산은 무심히 풍랑 속 배 세척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거센 파도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을 보여주며 자연의 힘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원경의 후지산은 파도와 대비되는 정적인 분위기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위의 설명을 보면 이 작품 자체가 동서양의 이색적인 만남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인 부감구도를 사용하고 있던 일본의 회화 방식과 달리 서양의 원근법을 도입하여 파도치는 바다를 입체적으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본 판화에서는 처음으로 서양의 청색 안료인 프러시안 블루를 사용하러 일본 화단에 큰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발표하자마자 일본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원근 묘사를 응용하여 다양한 구도를 선보인 점, 거기에 판화 특유의 간결한 외곽선과 밝은 색면 처리도 나타냈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인들에게 낯설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것으로 소개되었다. 여기서 나아가 당시 유럽을 비롯한 서구의 미학이 큰 변화를 요구하는 시점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인상주의를 비롯한 모더니즘 화가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갔다.


이처럼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적인 취향 및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현상을 자포니즘이라 하며 이러한 자포니즘은 반 고흐, 모네, 드가, 르누아르, 클림트 등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당시의 유럽 사회는 일본 보다 앞서 진행된 근대 시민 사회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대부분 상품으로써의 생산이 아닌 개인주의 예술 창조를 추구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단순히 우키요에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모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작품에 맞는 것들을 선택하여 흡수했다.


우키요에의 영향은 강렬한 색채, 자유로운 구도와 시점,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그린 역동적인 모습을 꼽는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들의 작품에서 이러한 모습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좌 고흐, 꽃이 핀 자두나무, 1887년, 55 x 46 cm.   우 히로시게, 가메이도 매화, 1857년, 목판화, 36.4 x 24.4 cm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우타가와 카가와 쿠니사다의 '미인도' 모사), 1887년,  92 x 75 cm.

우선 자포니즘에 큰 영향을 받았던 반 고흐의 위의 작품들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로 당시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일본 화가들이 모든 것을 극도로 단순하게 표현한다는 점이 부럽다. 그것은 너무 지루하게도 조급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작업은 숨 쉬는 것처럼 간결하며, 그들은 마치 옷의 단추를 푸는 것처럼 손쉽게 몇 가지 특징만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어쨌든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 미술은 일본 자국에서는 퇴폐해졌어도(일본 메이지 시대 사진·제판·기계인쇄의 유입으로)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 사이에서 다시 그 뿌리를 박고 있구나. 내게 자연적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물건의 거래적인 가치보다는 예술가를 위한 그 실질적인 가치에 있단다…….”
 좌 모네, 일본 여인 또는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1875년, 231.8 × 142.3 cm. 우 마네 피리부는 소년, 1866년, 160 cm × 97 cm

위의 클로드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속의 일본 부채 그리고 기모노를 작품 소재로 쓰며 당대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의 전통의상이나 일본의 기물을 사용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작인 ‘피리 부는 소년’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데, 뚜렷한 윤곽선과 평면색 처리, 인물 단독의 전신상의 모티브 사용 등이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에두아르 마네는 아카데미에 대항하여 살롱전의 낙선품들을 전시했던 '앙데팡당'에 작품을 출품하며 도전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마네가 우키요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용하면서 자신의 이러한 행보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서 우키요에는 단지 일본풍의 취향에서 나아가 전통 예술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반세기 동안 우키요에로 인해 유럽의 화가들은 잘 사용되지 않던 자연 풍경과 동식물의 모티브, 원근법과 다양한 시점, 뚜렷한 색채 등의 영향으로 낡은 관습으로부터 벗어났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와 실험 태도를 가지고 일본의 우키요에를 탐구했다. 그 결과 자신들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소재로 사용하여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근대 이후의 동양을 이성과 진보 합리성을 내세워 발전하는 서양에게 침략당하며 식민지로 전락하는 패배적인 모습으로 주로 떠올린다. 하지만 당시 서양은 동양 미술의 영향으로 미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어내며 발전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처럼 본고를 통해 그 당시 일본을 비롯한 동양이 유럽에게 문화적으로 끼친 영향력을 보여줌으로써 근대 동양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자 했다. 또한 본고를 통해 동양 미술과 서양 미술을 나누고 단절적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동서양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부분에 대해 조명하여 본고를 보는 이들이 보다 더 넓은 시각으로 미술사를 봐주기를 바라본다.


참고문헌


김승연, 신지연. (2012). 일본의 우키요에가 19세기 후반 서양 미술사에 끼친 영향. 기초조형학연구, 13(4), 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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