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그리미05]
페미니스트 역사가 조앤 켈리(1928-1982)는 “여성에게 르네상스는 존재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존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르네상스하면 떠오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카라바조 같은 위대한 천재들을 시작으로 미술사에서는 영웅적인 한 명의 백인 남자 예술가에서 다른 남자 예술가로 이어지는 계보가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고 이 계보 사이에 우리가 떠올리는 여성 예술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이에 정말 여성 예술가들이 없었던 것인가?
아니다. 단지 조명되지 못했을 뿐. 게릴라걸스는 이처럼 조명 받지 못했던 르네상스 여성 미술가들을 ‘무대 뒤에 감춰진 비밀병기’라 표현한다. 본고에서는 당대 여성들의 제약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예술혼을 불태웠던 여성 예술가들을 조명하며 기존의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르네상스 시대에 여성의 삶은 어땠을까? 여성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해야 했다. 또한 당대 여성들은 남편이 발기 불능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이혼이 가능했다. 여성은 귀족, 창녀, 여배우 혹은 창문 닦기인 경우에만 속옷을 입을 수 있었다. 단 세 문장으로 당대 여성들의 삶이 어땠을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제한된 삶을 살아야 했고 수많은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러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시대에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본래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은 보통 재산이 많지 않은 장인 계급으로 성공한 예술가의 견습생에서 독립해서 자신의 화실이나 작업장을 경영했다. 그들이 성공해 부유한 후원자나 교회의 주문을 받으면 귀족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소수의 귀족 가문 출신 예술가들은 특권적인 지위를 누렸다. 물론 이는 여성들에게는 닫혀 있었던 이야기이다. 도시에서 여성들은 레이스나 비단을 만드는 조합을 제외하고는 조합이나 아카데미에서 배제되었다. 주문을 받거나 합법적으로 작업실을 소유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여성이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길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가족이 운영하는 작업장이나 화실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소포니소바 앙귀솔라(1532?-1614)는 그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이례적이게도 그녀의 아버지는 여성들도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귀족이었으며, 딸의 작품을 미켈란젤로에게 보내기도 했다. 아버지의 적극적인 면모와 재능을 통해 앙귀솔라는 스페인 궁정에서 궁정 화가로 일했으며 그녀는 당대의 성공한 여성 예술가가 되었고 그녀의 주요 작품으로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위의 그림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본인의 자화상이다. 창조적 행위를 하는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누드가 포함되는 종교화나 역사화는 남성 화가의 영역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종교화를 그리는 모습을 담았다는 점도 자신의 능력을 당당히 드러낸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를 그리고 있는 베르나르디노 캄피>에서는 이탈리아 명성화가였던 베르나르디오 캄피의 제자였던 자신을 드러내었다. 앙귀솔라를 그리는 캄피를 통해 자신이 그의 계보를 잇는 것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캄피의 제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며 그동안 우리가 알던 남성 중심의 계보에서 벗어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주로 당대의 우아하고 정숙한 여성의 모습을 그리며 수동적인 여성상을 재생산하며 당대 성위계를 되풀이했다. 이는 그녀가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도 당대 여성 화가로서 자신을 화가로서 정체화하고 스페인 궁정 화가를 할 정도의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점은 분명 그녀가 조명 받아야 하는 위대한 여성 화가임을 뜻한다
소포니소바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모두가 그녀처럼 당대에 명성을 가진 화가가 될 순 없었다. 이러한 비극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거장 틴토렌토의 딸 마리아 로부스티(1560?-1590)이다. 틴토레토의 재능있는 딸로 태어나 로부스티는 미술과 음악을 배웠다. 특히 미술에 재능이 있던 마리아 로부스티는 틴토레토의 작업장에서 15년 동안 함께 일하며 그녀의 재능이 베네치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의 궁정 화가로 초대받게 되지만 틴토레토의 반대로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 4년 뒤 마리아 로부스티는 출산하다 30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마리아 로부스티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아버지로 인해 전업화가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30살의 나이에 출산하다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 이러한 그녀의 죽음 이후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예술계에서는 그녀를 틴토렌토의 예술적 영감으로서만 기억했을 뿐이다. 역사속에서 그녀의 능력이 지워지면서 실제로 그녀의 작품인 <소년과 함께 있는 노인>은 오랫동안 틴토레토의 작품으로 오해받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렇게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예술계에서 그녀를 틴토레토의 예술적 영감(뮤즈)으로 기억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죽음 이후 틴토레토의 작업장의 생산량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틴토레토가 딸을 잃은 슬픔에 작업을 멈추었다고 말했지만,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새로운 이유를 제시했다.
마리아 로부스티 생전에 틴토레토와 마리아의 작품을 거의 분간할 수 없을정도라 틴토레토는 모든 작품에 사인을 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보아 자신의 비밀병기인 마리아 로부스티의 부재로 작업량이 준 이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속에서 마리아 로부스티의 능력을 지우고 틴토렌토의 뮤즈로 축소시키며 그녀는 거장의 예술혼이 꺾이는 신화의 한 장면으로 남은 것이다.
마리아 로부스티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역사속에서 그 능력이 축소되었는지, 지워졌는지 알 수 없다. 최근에 들어서야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한 르네상스 시대의 여성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활동들이 조명되고 있고 나아가 여성들이 미술 활동뿐만 아나라 적극적인 후원자(귀족집안의 여성들, 왕가 여성들, 대수녀원장 등)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여성들에게 르네상스란 존재했는가?" 분명 여성들에게도 르네상스는 존재했지만 제대로 조명받지 못 한채 지워졌다는 점에서 '네'도 '아니오'도 확실하게 대답할 순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중심주의를 외치며 인간의 미와 능력을 찬양했던 르네상스의 '인간'이 어쩌면 반쪽짜리는 아니었을까? 필자는 본고를 읽은 이들이 기존의 르네상스 속 숨겨진 이야기를, 나아가 미술사에서 그동안 조명받지 못 한 또 한 편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참고문헌
게릴라걸스(2010),『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우효경 역, 마음산책, 53-65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