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화05]
오늘은 조금 내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나는 어렸을 때 미술을 좋아했다. 엄마가 4~5살 아기일 때 내가 조용해져서 뭐하나 찾아보면 항상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줄곧 미술대회 상을 타 왔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미술학원을 다니며 예중입시까지 했었다. 하지만 예중입시도, 영재반도 모두 그만두었다. 나는 내 그림이 너무 좋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계속 이 부분을 더 손봐라, 여기를 더 다듬어라 하고 작품을 더 보게 하셨다. 인내심이 부족한 어린 시절의 나는,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미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부터 알았다. 그 과정도 견디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내가 미술에 재능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들보다 조금 잘할 뿐 돈이 되지는 않겠구나. 그 이후로 나는 미술을 그만두었지만 미술에 여전히 관심을 가진 나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 번 식은 애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랬던 나에게 아주 큰 인상을 남긴 그림이 있었다. 그 그림은 중학생 때 미술책인지 미술교과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곳에서 보게 되었다. 정말 다른 그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 그림만 기억이 난다. 그 그림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것도, 나와 미술과의 관계변화를 준 것도 없지만 이상하게 한 번 본 그림이 잊혀지지 않아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 그림이 어느 시대의 작품인지, 누구의 작품인지 조차 모른채 처음 본 순간부터 꽂혀있었다. 이후 작품의 이름은 고등학교 때 알게 되고 작가의 이름은 대학에 와서 알게 되었다. 그 그림은 바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이다. 내가 영문도 모른채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에 꽂혀있던 이유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1.색감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다소 어두운 색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매우 선명하다. 어둡고 밝고의 문제보다는 선명하다는 점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 같다. 그림이 아닌 사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었던 것도 선명함 덕분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유화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유화라는 점이 색감을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내가 이 작품을 보자마자 느꼈던 점과 유화라는 것을 알게 되고 유화작품들을 보며 느꼈던 점은 비슷하다. 흐리지 않은 선명함. 유화가 나타내는 선명함은 매우 매력적이다. 유화가 아니라면 이런 색감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유화인 것을 알게 되고 이런 색감을 너무 좋아하게 돼서 유화작품에 빠지게 되었다. 기회가 되는 유화를 사용해서 직접 작품을 그려보고싶다.
2. 사실성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사진같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굉장히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인상주의나 현대미술을 보면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추상적인 그림들이다. 열린 결말과 같이 오픈형 그림인 것들은 내게 생각할 거리들을 주기에 매우 좋다. 심지어는 보이는 것과 똑같이 그리는 것을 지양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사실적인 작품들을 보면 놀란다. 아무리 추상적이고 개성을 살린 작품에 대한 기호가 많아도 실제와 같은 그림은 와- 소리가 나오게 된다. 이 작품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거울 속 작가의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사실 아르놀피니 부부보다는 그 외 주변의 사물들의 정교함과 사실성이 나에게는 더 매력적이다.
3. 시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르네상스시기의 작품이다. 르네상스란 유럽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는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르네상스에 만들어졌다는 점마저도 르네상스를 좋아하는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반 에이크의 이 이 초상화는 당시 브뤼헤에서 부와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거머쥐었던 조반니 아르놀피니로 대표되는 당시의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 즉 ‘중세 말, 물질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유럽인 부부와 이러한 주문자의 의도를 이해한 화가가 사실주의 회화로 재현한 15세기 플랑드르 상인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한다.1) 작품에서 예술에 있어서의 르네상스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세 유럽 상인들의 모습과 르네상스 시기의 풍부한 소비생활을 보여준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이 그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명확하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글을 쓰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역사와 미술의 즐거움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역사라는 것과 미술, 예술이라는 것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낸 것이 현재 우리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 미술사학의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역사에서만 미술을 배워도, 미술에서만 역사를 배워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역사와 미술을 함께 배우고 그 둘의 상호작용을 배우기에 미술사학은 매력적이다.
1) 구지훈 (2018).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통해 본 토스카나와 플랑드르 간의 사회적, 예술적 상호 교류. 역사와 세계, 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