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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Aug 14. 2021

02. 루마니아에서 온 작은 강아지

코를 킁킁대던

공원에 앉아있으면 큰 멍멍이 작은 멍멍이, 어린 강아지, 늙은 강아지 그 외 네발 달린 신난 멍멍이들을 줄지어 볼 수 있다. 잔뜩 신이 난 멍멍이들의 통통 튀어 오르는 리듬감 넘치는 발걸음을 사랑한다. 코를 킁킁대며 촉촉한 코를 들이대는 순간도. 자연을 벗 삼아 훌쩍거리며 뛰어노는 풍경을 보면 15년 동안 가족으로 살았던 나의 소중한, 아니 소중했던 동생. 나보다 빠른 생을 살았던 작은 가족도 떠오른다.


어제는 친구가 작은 가족을 데려 온다고 했다. 벌서부터 인사하고 마음껏 예뻐해 주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독일에서 만난 꽤나 많은 멍멍이들은 교육인 잘 된 유치원생들 같아서 쉽게 인사하기도 어렵고 마음껏 예뻐해 주기보다는 눈인사하고 지나가기가 행인의 예의이다. 그러다 보니 쉽사리 채울 수 없었던 작은 온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부풀었다.  


어떤 간식이 좋을지 어떤 장난감이 좋을지 한참 고민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K-인사법은 '먹는 것'으로 귀결되니까 이것저것 좋은 것을 잔뜩 갈아 넣어 만들었다는 야채가 한가득 들어있는 간식을 골랐다. 친구는 너른 공원 잔디밭 위에 점처럼 앉아있어고 그 옆에는 작은 갈색 강아지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정작 강아지는 얌전히 앉아있는데 사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어가 돗자리 위에 안착했다.


'어제 데려와서 처음으로 목욕을 시키는데 아주 까마귀인 줄 알았어. 구정물이 어찌나 나오던지.'

친구는 하하 웃으면서 끊임없이 작은 강아지를 토닥거렸다. 아직 잔디가 낯설고, 자신을 토닥여주는 애정 어린 손길이 어색한 작은 멍멍이는 불안한 눈으로 돗자리에 앉아있는 세 사람을 흩었다. 정확히는 난입한 두 명을.


그래도 도착하면서부터 '이렇게 이쁜 강아지가 누구야아~'하며 이리저리 방방 뛰었더니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물만 먹어도 칭찬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이쁘다고 아우성을 쳤더니 서서히 눈빛에 자신감이 생긴다.  


새로운 등장인물에게 낯 가리는 중 ,                                              한쪽 귀가 접힌게 특히 사랑스럽다

이 작은 갈색 강아지는 루마니아에서 왔단다. 독일에 온지는 겨우 몇 개월. 한 번도 신나는 산책을 누려본 적 없고, 애정 넘치는 손길을 받아 본 적 없는 5살 생이 드디어 가족을 만난 것이다. 허겁지겁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삶, 언제나 자기를 예뻐해 줄 마음이 가득한 사람과 맞이하는 아침이 생경할 작은 꼬맹이. 누구도 지나가면서 자신에게 시비 걸지 않고, 멍멍이 친구들은 예의를 갖춰서 서로를 탐색하고 뛰어노는 삶. 조금쯤 불안한 듯 이리저리 바쁘게 살펴보는 눈동자가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나의 작은 가족이었던 강아지는 이름이 '반디'였다. 그 친구는 내가 장장 7년을 기다려서 만난 소중한 가족이었다. 강아지와 함께 지내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을 엄마는 '네가 너무 어려서, 강아지는 장난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그 강아지를 적어도 10년 이상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면서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그래서 소망이 간절해질 때마다 강아지에 관한 책을 있는 대로 읽어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자라고, 머리가 채워지며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된 후에 여러 번 가족회의를 한 끝에 작은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지금도 엄마의 결정이, 아빠의 결단이 얼마나 현명하며 지혜로웠는지 생각한다. 아직도 너무 어릴 때 만나서 더 잘해주지 못한 마음에 가슴이 아려오는데, 더 어릴 때 만났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의 생이 끝났을 것 아닌가.


우리가 데려온 강아지는 너무 어릴 때 엄마 강아지에게서 떨어져 나와 애가 둘이 있는 집에 분양된 아이 었다. 그 작은 털실만한 강아지를 두 꼬맹이가 너무 못살게 굴 것 같아 강아지를 분양받은 집에서 다른 이를 찾는 중이었다고.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강아지는 우리 집에 왔을 때 겨우 3개월이었다. 엄마 품이 그리웠는지 첫날밤부터 끼잉 거리며 울었고, 채워지지 않는 온기를 먹는 것으로 풀려고 했다. 너무 예쁘고 사랑만 받으며 건강하고 천방지축으로 자라야 할 멍멍이의 슬픈 눈을, 그 첫 눈 맞춤을 기억한다. 열심히 자랐어도 아직 어린 나에게 엄마는 아기강아지가 집에 왔으니 너무 많이 만지거나 강아지가 괴롭다고 느끼는 애정을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강아지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일주일 후 우리 강아지는 집을 제 집 마냥 활보하고 다녔으며, 나와는 언제나 즐거운 놀이 상대였고, 산책을 나가면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하수구를 용감하게 점프해서 건너는 강아지로 성장했다. 눈치 보던 작은 눈망울은 이제 자신감 넘치는 눈이 되어 어디서나 당당했다. 그 작은 뒤통수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부러질 듯 작고 가느다란 다리가 근육이 생겨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었는지. 그 산책은 나를 학교에서 계주 주자로 만들어 줄 정도였다.


아마 이 작은 갈색 강아지도 그렇게 되겠지. 가족의 온기와 사랑이 저 눈에, 저 몸에 생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약 두어 시간 내내 잘했다, 이쁘다, 최고다 라고 칭찬하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영원히 가슴에 묻은  동생, 나의 작은 강아지가 너무 보고 싶어 져서. 빠르게 스러지는 짧은 생에 나를 ,우리 가족을 만나서 행복했기를 오랜만에 기도했다.  

너의 짧은 생이 나를, 우리 가족을 만나 행복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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