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하나 시켰을 뿐인데
그런 날이 있다. 정말 손 하나도 까닥하고 싶지 않은 날. 건강함을 부르짖으며 챙겨 먹던 음식들이 다 귀찮아지고, 육즙이 좔좔 흘러내리는, 칼로리 폭탄 임에 분명한 햄버거를 '와구’먹고싶은 날.
햄버거뿐인가. 사이드로는 감자튀김이나 고구마튀김이 함께 와야 한다. 시원해서 온 몸이 부르르 떨릴 것 같은 콜라 한잔도. 그 탄산 가득한 검은 물을 목을 꼴-깍, 하고 넘기는 순간의 쾌감이란!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배달 햄버거를 시켰다는 말이다.
꽤나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엄지손가락은 바빠졌다. 어플 속에 있는 핸드폰 사진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나마 가장 짧은 예상 배달시간을 써 놓은 집으로 정했다. 20-30분 배달 예상시간. 다른 곳은 막 40-60분이 걸린단다. 에이, 자고로 배달은 빠른 배송이지. 게다가 눈만 들면 수제버거가 판을 치는 나라이니 사실 맛은 거기서 거기 일 것이 뻔했다. 거기서 거기, 어디나 맛있다는 말이다.
치즈 추가, 토마토 추가, 베이컨 추가. 야무지게 주문서를 작성하고 마요네즈와 케챱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 왜 확인이 필요하냐면 03.케챱이 사라집니다. 마요네즈도요. 에서 열심히 이야기했었다. 휴. 다행히도 그득하다. 콜라까지 주문하면 가격이 넘실넘실 올라가 버리니 차라리 집 앞 마트에서 후딱 사 오는 것이 경제적이다. 꼼짝도 하기 싫었던 몸이지만 햄버거가 온다는데 콜라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의지가 불타올랐다.
페이팔로 결제까지 완료하고 콜라를 사러 룰루랄라 집을 나섰다. 뒤이어 도착하는 문자.
"고객님의 햄버거는 120분 뒤 도착 예정입니다."
12분을 잘못 본 줄 알았다.
'에이 설마'
급하게 어플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120분이 맞았다. 아니 이게 웬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예요.
햄버거랑 사이드까지 다 해서 10000원(10€)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두 시간이라니?
헐레벌떡 가게에 전화를 했다.
"진짜로 두 시간이나 걸리니? 내 햄버거 하나가?"
전화 속 가게는 우당탕, 헤이, 우짜장, 등등의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대충 손님이 많아서 그렇다는 석연치 않은 대답을 듣고 슬프게도 전화를 끊었다. 그냥 맥도널드나 시킬걸. 괜히 수제버거를 골라서는.
손에 꼭 쥔 콜라가 서글펐다. 배와 등이 들러붙기 전에는 와야 할 텐데.
독일에다가 빠른 서비스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그렇게 당하고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은 또 나를 이렇게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한 번은 한 시간 뒤에 도착한다고 해서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는데, 40분 뒤 전화가 왔다. 주섬주섬 문을 열어줄 준비를 하며 '할로-'하고 받은 전화의 내용은 절망적이었다. 주문이 너무 밀려 배달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환불해줄게. 하고 뚝 끊어진 전화를 붙들고 얼마나 망연자실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배달 예상시간 30분을 보면 한 시간을 예상하는 경험치가 쌓였으면서도 또 이렇게 기대했다,
두 시간이 흐른 뒤, 착실하게 도착한 배달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해사하게 웃었다. 1유로의 팁을 넘겨주면서 '조심히 가'하고 배웅을 했다. 너무 맛있는 이 햄버거의 전략이었을까. 굶을 대로 굶게 해서 이런 꿀맛을 느끼게 하는 게?
다음엔 배고프기 두 시간 전에 주문을 해야지. 여전히 뜨거운 김이 남아있어 호호 불며 입에 넣는 감튀가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