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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Apr 16. 2024

독일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으로 "직업"이 변경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지원해서 정말 기뻐요!”


와아! 인사담당자의 미소과 전해져 오는 따뜻한 악수, 그리고 새롭게 동료가 된 이들의 축하와 환영. 이 모든 것들이 꿈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해냈구나! 지원서를 뿌리고, 면접을 거치고, 또 면접을 보고, 또 면접을 본 끝에 목에 걸린 찬란한 합격목걸이.      



프리랜서로 사는 삶도 나쁘지 않았지만, 때론 조금 버겁고 때론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직장인으로 일하는 인생을 살아보려고 이력서를 쇽쇽 넣은 끝에 얻게 된 결과였다. (쇽쇽 = 흑흑 과 훌쩍훌쩍, 그리고 엉엉 울던 시간들의 함축어)     


“그래서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나요?”


맨 처음 악수를 건넨 셰프가 물었다. 그러게요. 언제부터 내가 일할 수 있을까요? 이사도 해야하고 집도 알아봐야 하고 지금 살던 집도 넘겨야 하고.. 느려터진 독일 서류 작업도 닥달해서 해내야 하고, 머릿속이 미친 듯이 회전을 거듭하다가 겨우 말을 뱉었다.


“지금 베를린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만 끝내면 바로 합류할 수 있어요. 아마 세달 뒤 쯤 가능할 것 같아요.”


너무 늦나? 지금 당장, 롸잇나우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었어야 했을까? 나 말고 마지막까지 올라왔던 다른 지원자에게 기회가 가려나?

그렇다고 이미 싸인해놓은 계약서 일을 어떻게 엎어? 그건 안될일이지. 괜찮겠지?


언제나 사리분별 잘 하고 이성적이며 똑똑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싶지만, 간택당하는 입장에서는 한마디 말 내뱉기도 이리도 힘이 든다. 선명한 푸른 눈이 고민을 하듯 지긋이 감겼다. 아이고 두야. 초조함을 숨기려 괜시리 기도하는 손을 모아보았다. 제발!

     

셰프는 곰곰히 턱을 움켜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의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덩달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 축하를 위해 몰려왔던 동료들이 이야기를 살곰살곰 전하는 소리도 귓가에 울렸다.


“뭐래? 언제부터 온대?”

“삼개월 뒤에 온대.”

“삼개월? 아하 이사하고 그러려나보네.”

“그러게. 그정도 시간은 필요하지.”


“근데 당장 와야하지 않아? 너 은퇴가 언제랬지?

”아냐, 내가 좀 더 커버할 수 있어“

“아 그럼, 딱 좋네. 우리 그때 새로운 거 시작하잖아.”


그리고 흰 머리를 흩날리는 동료가 저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셰프가 기다리던게 그 동료였는지 그가 가져온 세부 일정을 다른 결정권자와 논의하기 시작했다.


몇번의 눈썹 꿈틀거림과 나를 안심시려는 듯한 작은 미소, 그리고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던 다른 동료들의 몇마디 추임새가 오고가더니 이윽고 끄덕끄독 하는 긍정적 마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휴 엉겹결에 넘겨짚은 날짜가 나에게도 이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악수가 한번 넘어왔고, 나에게도 세부 일정을 전달하고, 출근 날짜를 알려주고 동의를 구하고 다시한번 악수, 그리고 사무실에서 나온 직원과도 한번 더 악수, 그가 내 출근 날짜를 다시 한번 고지했다.


이렇게 모두가 종국에는 만족했고, 웃었고, 안녕을 건넸고, 건강하게 곧 만나자고 인사도 했다.      


“혹시 집 구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연락해. 우리 집에 방 하나가 보름동안 비워져 있을 예정이야.”

은퇴를 목전에 둔 전임자가 친절하게 집 걱정을 덜어주며 마지막까지 따라나와 배웅을 건넸다.


“그리고 너가 올 때 까지 내가 커버할게, 걱정마. 나는 너가 내 후임으로 들어오게 되어서 너무 기뻐.”

나도 내가 당신의 자리를 물려받게 되어서 기뻐요. 어쩐지 조금 울컥하고 여전히 얼떨떨해서 미처 뱉어지지 못한 목소리가 목에 걸린 듯 했다. 주름진 손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악수에 손을 꽉 마주잡았다.

      

그리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길, 기차에서 집 찾기 어플들을 다운 받으며 꿈결같은 기분을 털어냈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삼개월동안 내가 이 많은 일처리를 다 해낼 수 있을까.

일처리가 느리기고 소문난 이 나라에서, 무언가를 해내려면 속도가 생명이다.

그러니까 내가 서류 이전을 신청하는 속도.


서류가 처리되는 속도는 내가 어쩔 수 없으니,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하숙집에서 시작했던 독일살이가 그 뒤에는 기숙사가 되었고, 그 뒤에는 Wg(공동거주아파트)가 되었다가 이제는 온전한 나만의 아파트가 생기기 일보 직전이다. 햐, 이게 몇 년만에 이룩한 작은 한 걸음인지. 남들 다 해내는 일이라지만 막상 내 일이 되어보니 놀랍고 생경하다.


아 물론, 외국인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자 장점!)과 아직 계약서에 싸인을 하지 않은 구두계약 상태라는 떨림과 일년동안의 시험기간(Probejahr)이라는 산이 눈 앞에 거대하게 턱턱 나타나는 중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동안의 독일살이 생활력을 긁어모아 새롭게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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