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만들어 보고는 싶었다. 아니 대충이라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정용 광파오븐을 샀다. 나는 그때까지 그것 한 대만 있으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런저런 빵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사용설명서와 각종 예시가 담긴 소책자를 정독했다. 아쉽게도 광파오븐으로 만들 수 있는 빵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가능하다는 그 빵들마저 내가 꿈꾸던 빵이 아니다. 정보수집을 간과한 대가였다. 빵 만들기 관련 서적 8권을 구입해 시험공부하듯 들이 팠다. 오븐만 있으면 빵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충만된 시점이 다가왔다.
새 것을 살 것인가. 일단 중고를 한번 써 볼 것인가. 결정만 남았다. 술도 끊었고, 이런저런 취미도 다 떼어놓은 마당에 새로 들이려는 취미에 그 정도쯤이야 기꺼이 투자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앞섰으나 빵 감각이 없던 나에게 오븐의 세계는 너무도 깊었다. 새 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중고 오븐만 전문적으로 취급한다는 곳을 찾았다. 영화배우 앤서니 퀸을 닮은 주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오븐이 아닌 '오븐을 포함한 장비'에 대해 강의를 펼쳤다. 와이셔츠 두어 장 사러 백화점에 갔다가 셔츠 생김새에 발맞춰 넥타이, 정장, 구두, 양말, 스킨, 로션까지 사들고 온 기억이 청강을 방해하였으나 그 날 저녁 1톤 용달차와 함께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빵이 시작됐다. 그러나 빵이 되라고 했건만 떡이 되기도 하고 숯댕이도 됐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오븐을 포함한 장비'도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전화를 하면 "원래 그것이 그래요"하며 스리슬쩍 눙친다. 원래 그런가?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다시 전화를, 또 전화를... 그때마다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간다. 따따따... 따발총을 쏴도 구렁이는 담을 넘는다. 아무리 중고라지만 열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구렁이 탈을 쓰다니.
앤서니 퀸 기다려!
한달음으로 도착해 잡아먹을 듯 입을 벌렸다. 상대는 침착했다. 나는 그 침착함에 동요하지 않고 '당신! 나 먹인 거지!'라는 취지로 더 크게, 더 세게 입을 벌렸다. 불량품이 아니라 잘못 작동시켜 그런 거라 했다. 환불을 외쳤다. 확인하고 고쳐주겠다 했다. 교환을 외쳤다. 교환에 버금가는 통 큰 AS를 제시했다. 받아들였다.
앤서니 퀸은 빵의 종류에 따라 오븐을 달리 쓰는 거라며 이번엔 오븐에 특화한 강의를 펼쳤다. 이 자가 짜 놓은 되먹임 구조에 말려드는 거 아닌가 싶은 의심이 청강을 방해하였으나 그 날 저녁에도 1톤 용달차와 함께 돌아왔다. 설치 과정에서 통 큰 AS는 소형 반죽기라는 사은품으로 대체됐다. 무지에서 비롯한 오해였다.
3년 전,
빵은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