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알이 아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뻔한 한국 영화일 거란 착각, 그리고 뜻밖의 눈물
최근 한국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기억이 별로 없다. 툭하면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이나 뻔한 조폭 영화의 패턴에 식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선 오랜만의 조조영화 데이트에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장항준 감독이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사극을 내놨고, 무려 700만 관객을 넘었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라며 마음을 비우고 상영관에 들어섰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훌쩍이며 눈물을 쏙 빼고 말았다. 자극적인 연출 없이도 묵직하게 다가온 감동 뒤에는, 감독의 숨겨진 치열한 고민과 배우들의 완벽한 앙상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통제가 아닌 존중: 장항준의 '마에스트로' 리더십
이번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장항준 감독의 리더십이었다. 촬영장에서 키스태프들에게 절대 소리 지르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일화나, 배우들이 연기 아이디어를 내면 감독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뛰어난 예술적 안목을 가졌다고 해서 배우들을 바둑판의 흑돌과 백돌처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는 사람을 진정한 거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장 감독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았다. 단원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특색, 목소리를 살려내며 최상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예능에서 보여주던 가볍고 유쾌한 모습 뒤에는, 오랜 시간 수많은 연예계 인사들과 단기적이 아닌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소통해 온 '연결자'이자 '촉진자'로서의 탁월한 관리 능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15kg의 절제력, 그리고 중심을 잡는 촌장의 무게감
배우들의 연기 역시 경이로웠다. 특히 드라마 <약한 영웅>에서 눈도장을 찍었던 박지훈은 단종 역을 맡아 무려 15kg을 감량했다. 그 지독한 정신력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절제할 줄 아는 연기'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과잉된 감정 대신 절제된 표현으로 왕의 품위와 깊은 고뇌, 심경의 변화를 완벽하게 담아냈다.
여기에 유해진이라는 대배우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묵묵히 영화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잡으며 극을 이끌어갔다. 영화 속 청령포 마을의 촌장으로서뿐만 아니라,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수많은 기라성 같은 후배 배우들을 아우르는 든든한 '연기자들의 촌장' 역할을 해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지태를 비롯한 모든 배우가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톱니바퀴처럼 찰떡궁합의 화합을 보여주었다.
적재적소의 미학과 잊혀진 자들에 대한 연민
영화는 역사적 승자인 수양대군이나 한명회를 중심에 두지 않았다. 대신 잊혀진 왕 단종과 평범한 백성들의 삶에 조명을 비췄다. 이러한 기발한 시각과 배우들의 완벽한 배치는, 학교에서 교감이라는 중간 관리자로 일하는 나에게 아주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매년 새 학기가 다가오면 선생님들의 학년과 업무를 분장하며 무척 많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선생님들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최고의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 고민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보여주었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빛을 알아보고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에 배치하여 하나의 훌륭한 교향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자극 없는 따뜻함으로 위로를 건넨 영화의 여운이, 내일 마주할 나의 일터에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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