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정직하다, 그래서 아이를 성장시킨다
우리 학교 야구부 학생들을 볼 때마다 늘 비슷한 마음이 든다. 든든하다. 대견하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아침 등굣길에 마주치는 아이들도 그렇고,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운동장에 남아 훈련하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오후 다섯 시, 여섯 시가 넘어도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공이 미트를 때리는 소리, 서로를 부르는 소리, 감독님과 코치님의 지도 소리, 그리고 끝까지 버티는 아이들의 기합이 학교를 채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린 학생들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어떤 진지함과 성실함이 느껴진다.
나는 운동선수가 아니다. 야구를 전문적으로 해 본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운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늘 배울 것이 많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운동에는 삶의 본질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삶보다 더 정직한 세계가 운동인지도 모른다.
운동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며칠만 게으름을 피워도 몸이 먼저 안다. 훈련을 건너뛰면 기록이 달라지고, 집중을 놓치면 플레이가 흔들린다. 운으로 버틸 수 있는 순간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 실력은 쌓인 시간만큼만 나온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는 아이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반복하고, 지루함을 견디고, 몸의 고통을 이겨내고,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다시 훈련장에 서는 사람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야구부 학생들에게 꼭 해 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야구를 잘하는 것 이전에, 운동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태도를 갖는 일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첫째는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되라.
단체 운동은 혼자 잘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 준비를 미리 하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몸을 푸는 것, 필요한 장비를 함께 챙기는 것, 서로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것. 이런 작은 태도들이 모여 팀을 만든다. 야구는 개인 기록이 있는 스포츠이지만, 동시에 아주 강한 팀 스포츠다. 누군가 “누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팀은 느려지고, 모두가 “내가 먼저 하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팀은 강해진다.
사실 사회도 그렇다. 학교도 그렇다. 가정도 그렇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서로 미루면 관계도 흐트러지고 공동체도 무너진다. 반대로 누군가 한 발 먼저 움직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책임감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결국 먼저 움직이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둘째는 이름을 걸고 산다는 것의 무게를 잊지 말라.
야구 유니폼 뒤에는 이름이 적힌다. 그 이름은 단지 선수를 구분하기 위한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 이름 뒤에는 학교의 이름도 함께 따라붙는다. 어느 학교 선수인지, 어떤 팀에 속한 사람인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금방 기억한다.
그래서 운동선수는 운동장 안에서만 선수가 아니다.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급식실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선생님을 대할 때도 이미 그 사람의 태도가 평가된다. 실력은 좋은데 생활이 흐트러진 학생, 경기력은 뛰어나지만 친구들과 계속 갈등을 만드는 학생, 운동은 열심히 하지만 예의가 없는 학생은 오래 존중받기 어렵다. 잠깐 주목받을 수는 있어도 오래 사랑받을 수는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말하고 싶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떳떳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야구 외의 공간에서도 자기 자신을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것이 진짜 실력이라고. 운동장 위의 플레이만이 아니라 일상의 태도까지도 결국 그 사람을 만든다.
셋째는 몸은 재산이라는 사실이다.
운동부 학생들에게 몸은 단순히 신체가 아니다. 꿈을 실어 나르는 도구이고, 미래의 가능성이며, 지금까지 쌓아 온 시간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래서 몸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훈련 중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 준비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장난으로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경기 외 시간에도 괜한 사고를 만들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자기 몸을 지키는 일이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단지 며칠 아픈 문제가 아니다. 훈련을 멈추게 하고,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때로는 진로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경기 중 최선을 다하다가 생기는 부상은 안타깝지만 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까지 무심함으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규율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규율은 자유를 빼앗는 장치가 아니라, 더 멀리 가게 해 주는 안전장치다.
넷째는 인사와 예의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아이들이 인사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모자를 벗었다 쓰는 일, 눈을 맞추고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말하는 일, 선배와 후배, 친구와 선생님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을 어떤 아이들은 귀찮게 여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거기서 그 사람의 품격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인사는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예의는 약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단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야구처럼 선후배 문화와 팀워크가 중요한 종목에서는 더 그렇다. 선배를 존중하고, 후배를 배려하고, 지도자를 신뢰하고, 동료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는 경기력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문화가 좋은 팀을 만든다.
팬들이 왜 어떤 선수를 오래 기억할까. 단지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겸손한 선수,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 경기장 안팎에서 품위를 지키는 선수에게 사람들은 더 오래 마음을 준다. 반대로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태도가 거칠고 늘 문제를 일으키는 선수는 결국 스스로 자기 가치를 깎아 내린다.
우리는 흔히 결과만 본다. 홈런 수, 타율, 구속, 승률 같은 숫자로 선수를 평가한다. 그러나 정말 위대한 선수는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직함, 배려, 존중, 겸손, 책임감 같은 태도가 더해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선수는 깊이를 갖게 된다.
다섯째는 노력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종종 조급해한다. 열심히 했는데 왜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듯이, 노력은 오늘 했다고 내일 바로 눈앞에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변화는 오랜 시간 몸속에, 마음속에, 습관 속에 천천히 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실력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난다.
나는 이것을 우물 파기에 비유하고 싶다. 물이 나오는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아무리 애써도 허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땅속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다. 운동도 그렇다. 슬럼프가 오고, 부상이 오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같은 시간이 온다. 그러나 많은 경우 포기 직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끝까지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길을 선택했다면, 조금 힘들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여섯째는 운동선수에게도 공부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직도 어떤 아이들은 운동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낡은 생각이다. 야구는 결코 몸만 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상황 판단, 데이터 분석, 상대 전략 읽기, 심리 조절, 팀 운영, 의사소통 능력 등 수많은 지적 요소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 스포츠다. 게다가 야구를 오래 하다 보면 선수 외에도 수많은 길이 열린다. 지도자, 트레이너, 스포츠 심리상담가, 재활 전문가, 데이터 분석가, 해설위원, 스포츠 행정가, 스포츠 마케터, 기자 등 진로의 폭은 매우 넓다.
그런데 학업을 너무 일찍 놓아 버리면 그 가능성의 문도 함께 닫히게 된다. 최소한의 기초학력은 단지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선택지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운동을 계속하든, 다른 길로 전환하든, 결국 공부는 자신을 도와주는 자산이 된다. 학생선수에게 공부는 운동의 방해물이 아니라, 미래를 지켜 주는 또 하나의 훈련이다.
마지막으로 꼭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학교폭력은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운동부는 선후배 관계가 뚜렷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다. 그러다 보니 장난과 훈육, 친밀감과 강압, 규율과 폭력의 경계가 흐려지기 쉽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장난이었다”가 아니라 “상대는 어떻게 느꼈는가”이다. 내가 가볍게 한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고 공포가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운동선수는 체격과 힘의 차이 때문에 같은 충돌이라도 결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결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강한 사람일수록 더 절제해야 하고, 더 많이 참아야 하고,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 그것이 약해서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 가져야 할 책임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학교폭력 문제가 단지 학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진학과 선수 생활, 사회적 평가까지 이어진다. 운동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모든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실력보다 먼저 인성이 검증되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오래 가는 선수, 끝까지 존중받는 선수는 실력과 품성을 함께 갖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야구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야구는 정직한 스포츠다. 하루하루가 몸에 남고, 습관으로 남고, 태도로 남는다.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경기이며, 강함과 예의가 동시에 필요한 세계다. 먼저 움직일 줄 알고, 자기 이름의 무게를 알고, 몸을 소중히 여기고, 예의를 지키고, 오래 버티는 힘을 갖춘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좋은 선수가 되고, 더 나아가 좋은 어른이 된다.
나는 우리 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꼭 유명한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시간을 지나며 성실함을 배우고, 팀워크를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자기 절제를 배우는 사람으로 자라나면 좋겠다. 그러면 그 경험은 평생 그 아이들 안에 남는다. 야구를 계속하든, 다른 길을 가든,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운동장은 단지 공을 던지고 치는 곳이 아니다. 한 사람의 태도와 품격이 길러지는 삶의 교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아이들을 보면 반갑고, 대견하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우리 학교 야구부 아이들이 서로를 아끼고, 자신을 지키고, 끝까지 당당한 선수로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어떤 자리에 서더라도, 사람들은 이렇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실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상인천초 여구부 학생들을 응원하는 교감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