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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드라마 한 편을 끝까지 못 볼까?

하이라이트만 소비하는 삶 – 조급한 마음의 사회학

드라마 한 편도 끝까지 못 보는 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끝까지 보지 못하게 되었다. 스스로도 이상했다. 정주행하던 시간은 어느새 사라졌고, 띄엄띄엄, 빨리감기, 요약 리뷰로 ‘서사’를 압축 소비하고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딸이 '미지의 서울'을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심히 그 장면들을 곁눈질하다가 결국 나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익숙한 패턴은 반복됐다. 앞으로, 앞으로, 건너뛰기. 결국은 다음 회차 버튼을 연타하다, 나는 어느새 멈췄다.


“나는 왜 이렇게 조급한가?”

“왜 나는 한 가지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가?”

이 물음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되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

“우리는 시간을 아끼려다 인생을 놓친다.” – 세네카


나는 평일이면 밤 9시 혹은 10시에 집에 들어온다. 주말도 업무로 가득하다. 그렇게 어렵게 쥐어낸 ‘자유시간’ 3~4시간. 그 시간마저도 조급해진다.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쓸까?"

"낭비하면 안 돼. 쉬는 것도 생산적으로 쉬어야 해."

이런 생각은 나를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그래서 책을 펼쳐도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드라마를 봐도 하이라이트만 쫓는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강박은 시간을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내 일상은 점점 속도에 잠식되고, 삶은 어느덧 단편적인 시간의 조각으로 분해되어 버렸다. 조각난 시간은 결국 조각난 정신으로 이어지고, 하루하루가 흐릿한 영상처럼 지나간다.



클라이맥스 중독 사회

“지루함은 깊이를 낳는다. 깊이는 존재를 가능케 한다.” – 한병철


요즘 음악은 후렴구에서 시작해 후렴구에서 끝난다. 중독성 있는 '후크'만으로 짜여진 곡들이 넘쳐난다. 드라마조차 초반 10분 내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면 '망작'으로 평가받는다.


나도 그 중독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상의 고요함은 지루하고, 잔잔한 전개는 답답하다.

그래서 자꾸 ‘하이라이트만’ 찾아본다. 결국 삶조차 그렇게 소비된다. 기-승-전-결 중 ‘기’와 ‘승’은 뛰어넘고, ‘전’과 ‘결’만 남긴 채.


그러다 보니 삶의 호흡은 짧아지고, 감정은 얕아지고, 경험은 흐릿해진다.

슬픔이 올 때도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고, 기쁨이 와도 다음 자극을 찾느라 흘려버린다. 감정의 완성은 시간의 누적을 필요로 하지만, 나는 그 시간조차 건너뛴다.


멀티태스킹이 나를 파편화시키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태블릿으로 쇼핑하고, 휴대폰으로 영상도 본다. 귀에는 늘 이어폰.

나는 ‘한 가지’에 머무르지 못한다. 항상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한다. 그럴수록 집중력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절반의 몰입’으로 남는다.


정신과 의사 김현수는 말한다.

“불안한 현대인은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불안을 잊으려 한다.”


나는 불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화면, 다른 자극으로 나를 분산시키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뭘 해야한다는 강박과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한 상태다. 깊이 빠져들지 못하는 두려운 뇌. 무엇 하나 ‘끝까지’ 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나. 결국 나는 집중의 시대가 아닌 산만함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멀티태스킹이라는 환상 속에 있다.


알고리즘이 나를 사로잡다.

“우리는 정보를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정보가 우리를 선택하고 있다.”

– 슈테판 크라인


요즘은 알고리즘이 나를 더 잘 안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어떤 속도로 지루해지는지.

SNS, 유튜브,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은 내 관심을 절묘하게 건드린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침엔 뉴스, 낮엔 쇼츠, 밤엔 하이라이트 모음. 영상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내 마음도 끊임없이 떠다닌다.


『멋진 신세계』에서 헉슬리는 예언했다.

“미래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 속에서 사고하지 못하게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예언 속에 살고 있다. 머무르지 못하고, 멈추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한 채.


심지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시간조차 이어폰을 꽂고 영상을 틀어놓는다. 바람이 부는 소리, 발자국 소리 대신 AI 추천 알고리즘의 음성이 내 귀를 채운다.



관계의 피로와 사회적 고립

“관계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외로워진다.”

– 지그문트 바우만


나는 요즘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보다, ‘거래’를 한다는 느낌이 든다.

SNS, 단톡방, 카톡 알림… 표면적인 관계의 파편들.

말을 걸지만 진짜 대화는 사라졌고, 눈을 마주치지만 마음은 닫혀 있다.

사회학자 바우만은 이런 사회를 ‘액체 근대’라 불렀다. 형체 없이 유동적이고, 깊은 연결 없이 흘러가는 인간관계.


나도 어느덧 그 안에 있다. 가깝지만 먼 관계. 연결됐지만 단절된 나.

관계의 표면화는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결국은 사람보다 알고리즘을 택하게 만든다.

진짜 관계는 불편하고 느리고 감정의 상처도 남기지만, 그 안에야말로 살아있는 온기가 있다.

나는 요즘 그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글을 쓰며 나를 다시 만나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글을 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하루를 정리하고 생각의 실타래를 푼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 상태를 들여다보는 등불이다.


글을 쓰며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조급한 나, 불안한 나, 고립된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비난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한다. 안아주려고 한다.

글은 내 생각을 붙잡아주고, 나를 다시 지금 이곳에 앉히는 힘이다.


끝까지 보지 못하는 나에게 – 느림의 권리

나는 아직도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한다. 책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사람과의 대화도 자꾸 끊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속도에 중독된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드라마 한 편을 천천히 보기. 음악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삶의 진짜 맛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그 사이사이의 숨결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에필로그 – 나를 위한 처방전

‘지루함’을 회피하지 말 것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해볼 것

알고리즘 대신 ‘우연’을 선택할 것

매일 15분이라도 글을 쓸 것

끝까지 보지 못하는 나를 탓하지 말 것


“조급함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나를 멀리 데려간다.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 지금, 여기에.”


2025 7. 11. (금)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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