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였던 나에게 말을 건넨 것은, 다름 아닌 글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거창한 진실을 말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한 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감정의 틈, 관계의 틈, 진실과 거짓 사이의 틈. 언뜻 명확해 보이는 세상도, 글이라는 렌즈를 들이대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대개 명료함을 좋아하지만, 나는 명료하지 않은 것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한다. 고요함과 침묵 사이, 오해와 이해 사이, 그 틈에서 내 마음이 반응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미세한 떨림이 나를 키보드 앞에 앉히고, 문장을 낳는다.
“완벽한 평면에는 아무것도 머무르지 못한다.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온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이 나를 끌고 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생각을 쫓아 썼지만, 오히려 그 생각이 나를 새 방향으로 이끌었다.
글의 길은 직선이 아니다. 때론 느리고, 때론 돌아가고, 때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안에 숨겨진 감정과 무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만난다.
글은 머리로 쓰지만, 끝은 늘 마음에서 맺힌다.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면 글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굳이 말로 하지 않는 어떤 표정이나 분위기에 더 끌린다. 글도 마찬가지다. 매끈하고 정리된 글보다는, 어딘가 거칠고 덜 다듬어졌지만 진심이 묻어 있는 문장이 더 오래 남는다.
좋은 글이란 ‘튀어나온 감정’이 있는 글이다. 그 사람만의 언어, 그 순간만의 온도. 그런 돌출된 진심 하나가 독자의 마음에 탁, 와닿는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진심은 반드시 돌아오는 길이 있다.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글을 쓰다 보면 자주 ‘이건 내가 쓴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단어는 내 손끝에서 나왔지만, 그 안엔 친구의 말버릇, 아내의 한숨, 아이의 눈빛이 담겨 있다. 어느새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내 문장 속에 스며든다.
혼자 쓰는 글도 결국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관계가 문장 안에 녹아든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 글을 읽으며 ‘우리’의 시간을 떠올린다. 내가 겪은 세계이자, 그들과 공유한 풍경이다.
글은 결국 나의 목소리로 세상의 잔향을 담아내는 일이다.
브런치를 만나고 나서 글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처음엔 막연했다. 누가 내 글을 읽을까?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그러나 몇 편의 글을 올리고 ‘좋아요’ 하나, 짧은 댓글 하나를 받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군가가 내 말에 반응해준다는 건, 존재가 승인받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어느 날은, 댓글 한 줄에 하루가 구겨지지 않고 살아나기도 했다. 브런치는 내 일상에 작지만 강한 힘을 불어넣었다.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간다. 기억은 흐려지고, 감정은 마모된다. 하지만 글은 그 모든 것에 고리를 채운다. 나는 예전의 글을 읽으며, 그 시절의 나와 다시 인사를 나눈다.
그때의 고민, 아픔, 기대, 설렘이 글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글은 나의 시간을 기록하고, 그 시간 속 감정을 유예한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도록 한다.
“글은 기억보다 오래간다. 글은 망각의 방패다.”
글을 쓴다는 건 정리의 과정이다. 머릿속의 혼란이 문장으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내가 무얼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된다. 생각은 막연하지만, 글로 쓰는 순간 그 윤곽이 선명해진다.
수정의 반복은 곧 나를 다듬는 일이다. 첫 문장보다 두 번째 문장이 낫고, 열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 마음과 가까워진다. 완벽한 문장이란 없다. 하지만 반복 속에서 진짜 마음에 가까워지는 글은 있다.
때로는 아내에게 보여주며 조언을 듣는다. 그녀의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그 용기가 글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글은 혼자 쓰지만, 다듬는 건 함께 하는 일이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시대, 독자는 긴 설명보다 흐름을 원한다. 짧고 리듬감 있는 문장, 여백의 간격, 시선의 위치. 이제는 글도 시각적으로 읽힌다.
웹툰처럼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하며 느끼는 감정의 속도. 그 안에 긴장과 완급이 있다. 나 역시 내 글을 그런 방식으로 구성해보려 한다. 문단마다 작은 쉼표를 넣고, 강조할 문장은 띄워 쓴다.
글도 시대와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남는 건 ‘진심’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 정답을 쓰고 싶어진다. 하지만 인생은 정답보다 질문에 가깝다. 나는 이제 글 속에 여백을 남겨두려 한다. 독자가 자기만의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문장. 내가 제시하는 방향이 아닌, 각자가 길을 찾을 수 있는 힌트 같은 문장.
때로는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정말 중요한 게 뭘까?" 그렇게 글은 생각의 도구이자 질문의 도구가 된다.
“질문은 생각의 문을 열고, 정답은 그 문을 닫는다.” – 파울로 프레이리
세상은 너무 빠르게 달리고, 사람들은 점점 말이 줄어든다. 마음의 문도 닫히고, 관계의 문도 닫힌다. 그럴수록 나는 글을 쓴다. 내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 누구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글은 나에게 명상이고, 기도이다. 조용히 마음을 걸어 다니며 길을 낸다. 언젠가 그 길이 누군가와 이어지기를, 그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줄을 적는다.
2025. 7. 18.(금)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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