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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한 달 만에 구독자 천명 달성, 그 비밀은?

글을 쓰며 나는 다시 나를 살았다.

글을 쓴다는 건, 감정과 사고를 되살리는 일이다.

나는 '별의별 교육연구소'를 운영하는 장학사이자 유튜버다. 교육, 학교, 사회에 대해 말하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며, 나만의 생각을 세상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고, 처음엔 단지 유튜브 홍보의 창구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브런치’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감탄했다.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고, 삶의 반성과 성찰이 깃든 글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스쳤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늘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 감정과 생각의 결들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 기록해보자고.

2025년 6월 24일, 나는 첫 글을 썼다. 그리고 오늘 7월 22일, 한 달 만에 구독자 1,000명을 달성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이 글은 단순한 성과 자랑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이 길을 걸어왔고, 글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사유의 시간이다.


첫째, 글 쓰는 재미에 미쳐야 한다.

무엇이든 좋아지려면, 그 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과 생각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는 걸 느꼈다.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서, 새벽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회의 중 문득 떠오른 문장을 메모장에 적다가 글이 되었다.

마침 나는 교육청 장학사로서의 6년을 마무리하고, 교감으로 발령받는 직전의 과도기에 있었다. 온몸이 지쳤고, 마음은 유리처럼 불안정했다. 후회와 회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 건강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반성이 감정의 파고처럼 몰려왔다.

그렇게 ‘지나갔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감정’도 글로 옮기게 되었고, 그렇게 글은 내 감정을 기록하고 회복하는 도구가 되었다.


“삶은 지나가고, 글은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살아낸다.”


둘째, 남들과 다르게 써야 한다.

나는 논쟁적인 글을 썼다. 예를 들면, 《K팝 데몬헌터스》가 한국 문화의 자랑이 맞는가에 대한 글은 3만 뷰가 넘었고, 6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논란도 있었고, 공감도 있었다. 중요한 건, ‘다른 관점’이었다.

모두가 박수칠 때, 나는 한 번쯤 질문을 던졌다. “이게 정말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인가?” 한국인의 자부심이 되는 콘텐츠이지만, 나는 이면의 구조와 창작 시스템의 부재, 유통망과 창작자 생태계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

교육청에서 일하며 늘 ‘평균’을 추구하던 내가, 처음으로 세상의 주류 시선에 반하는 글을 쓴 것이다. 더는 눈치 보고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이 마흔 중반, 나도 이제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 첫 발걸음이 글이었다.


셋째, 솔직함은 글의 생명이다.

사회생활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말하지 않는 기술'을 익힌다. 겉과 속을 다르게 해야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육청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교사들과 학부모 앞에서 ‘사회적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왔다.

하지만 브런치에서는 솔직했다. 글 앞에서는 내가 나였다. 슬프면 슬프다고, 두려우면 두렵다고 썼다. 좋은 건 좋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내겐 그것이 진짜 삶이었다.


“감정은 감출수록 어두워진다. 표현해야 덧칠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글쓰기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안전한 통로였다. 나는 글을 쓰면서 울기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글은 감정의 거울이자 나를 회복시키는 심리치료였다.


넷째, '좋아요'와 '댓글'은 나의 원동력이다.

중년 가장, 교육청 장학사, 공직자. 이 세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숨이 막힌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민원과 회의, 공문과 사업계획 속에서 ‘나는 어디 있는가’ 되물었던 날들.

그런 나에게 브런치의 한 ‘좋아요’는 단순한 클릭이 아니었다. 한 줄 댓글은 ‘당신의 삶에 공감한다’는 신호였다. 낯선 독자에게서 받은 응원이, 때로는 동료나 상사보다 더 위로가 되었다. 이건 감정 과장이 아니다. 진짜다.

브런치는 내게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돌려주었다.


다섯째, 잘 쓰려는 마음을 버려야 쓸 수 있다.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이상하게도 글을 쓰기 두려워졌다. ‘이 글은 구독자에게 실망을 줄까?’, ‘이번 글은 너무 가벼운가?’라는 자기검열이 글쓰기의 즐거움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사람에게 꼭 점수를 물어봤다. 10점 만점에 8점이면 안심하고, 7점 이하면 망설였다. 하지만 집사람은 언제나 말했다. “무조건 올려. 당신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양하니까.”

맞다. 글은 늘 완벽할 수 없다.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지만, 어떤 글은 다른 누군가에게 인생을 바꾸는 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쓰기로 했다.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인연처럼.


여섯째, 글은 삶의 기록이자 의미의 복원이다.

삶은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순간도, 치열했던 날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글은 가능하다. 그 순간을 다시 호출하고, 의미를 되새기고, 남길 수 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의 감정과 삶의 궤적을 복원했다. 그리고 그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나침반이 되기를, 길동무가 되기를 바랐다. 결국 글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타인을 향한 손짓이기도 하다.


“쓰는 자만이, 지나간 삶을 되살릴 수 있다.”


작가가 된다는 건, 삶을 자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제 '작가'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되었다. 브런치 구독자 1,000명, 이 숫자는 단지 인기의 지표가 아니라, 내가 꾸준히 감정과 생각을 쌓아온 시간의 증거다.

작가가 된다는 건, 삶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같은 하루라도 글을 쓸 사람은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사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 단지 유튜버나 교육자라는 역할을 넘어, 삶을 살아내는 '작가'가 되었다.

이 길의 동료가 되어준 모든 구독자에게, 고마움과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지만, 그 길 위에서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것이다.


마무리하며

글은 나의 여정이다.
글은 나의 쉼이다.
글은 나의 회복이다.
글은 나의 또 다른 삶이다.


2025. 7. 22.(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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