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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연수 강의 소감, 교육도 울타리가 필요하다.

법과 절차를 넘어, 관계와 존중으로 만드는 학교

설렘과 부담이 교차하는 강의

오랜만에 1급 정교사 자격연수 강의를 했다. 사실 강단에 선다는 건 언제나 특별하다.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꺼내 놓는 일이고, 누군가의 하루와 마음에 작은 흔적을 남길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강의를 맡을 때마다 늘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걱정 같은 다양한 감정이 든다.

혹시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혹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괜히 시간을 뺏은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강단에 오르기 직전까지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늘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다. 강단에 서는 순간, 나는 다시 질문을 붙잡게 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교육은 무엇인가? 교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7월 말, 모두가 잠시 숨을 고르며 휴가를 떠나는 시기에 나는 여전히 바쁘다. 내가 맡고 있는 교육청 학교 민원 업무는 쉬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전화, 이어지는 보고와 회의, 쌓여가는 계획서. 그런 일상 속에서 강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잠시 망설였다. 솔직히 내 하루가 너무 벅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승락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교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교육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되고, 그 만남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움직였다.

강의 전날 밤, 하루 종일 쌓인 업무로 지쳐 집에 돌아왔지만 강의 자료를 다시 펼쳤다. 졸린 눈을 비비며 몇 번이고 내용을 고쳤다. 새벽 5시에 눈을 뜨고 다시 노트북을 키고 발표 흐름을 점검했다. 피곤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이건 단순한 강의 준비가 아니라 내 삶과 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라고 여겨졌다.


법과 절차를 넘어, 철학과 경험으로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강의에서 법과 행정 절차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교권침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괜히 오해를 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컸다. 나 자신도 그 문제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방향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는 늘 건조하고, 딱딱하고, 말 그대로 ‘행정 설명회’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1년 7개월 동안 교권침해 민원을 직접 접하고, 수많은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속에 쌓인 생각을 꺼내고 싶었다. 교권침해와 갈등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마치 도로에서 방어운전을 하듯 사고를 미리 막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필요한 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회복이다.

나는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법정에서 이기더라도 교사의 마음에 남는 건 상처뿐입니다. 법적 싸움은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교사로서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교육은 결국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문제이고, 관계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그래서 예방과 대화, 중재가 가장 큰 힘을 가진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지,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늘은 그런 철학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마음에 이 메시지가 닿길 바라면서.


누구나 겪는 일, 자책하지 않기를..

내가 가장 강조한 건 이것이었다. 교육활동 침해나 갈등은 어느 교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역량, 열정,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교직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면 교사들은 가장 먼저 자신을 탓한다.
"내가 부족했나?"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가?"

나도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신규교사 시절, 교권침해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때, 억울한 상황에서도 나만 잘못했다고 여겼다. 밤마다 ‘내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교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 사건과 자신을 심리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감정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게 남는다. 한 번 생기면 쉽게 재발하고, 다시 마음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교육은 긴 여정이다.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야 한다. 교사가 버티지 못하면 교육도 흔들린다. 나는 오늘 강의에서 그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


쉬는 시간에 들려온 이야기들.. 교사의 외로운 싸움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걸어주셨다.
어떤 분은 학부모와의 끝나지 않는 갈등을, 또 다른 분은 학생 지도 중 억울한 일을 털어놓았다. 그들의 표정은 지쳐 있었고,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봐…” 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많은 선생님들이 말한다. “내 편은 없는 것 같아요.”
행정기관이나 제도가 나를 보호해줄 거라 기대하지만, 막상 사건이 터지고 나면 여전히 혼자라고 느낀다. 상담을 받아도, 법률적 도움을 받아도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남는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교육활동에서 교사가 주도권을 갖고 학생을 지도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연한 일이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언제 터질지 모를 민원과 갈등 앞에서 교사들은 늘 방어적인 자세로 교단에 서야 한다.

교사가 마음 놓고 수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학생들의 교육권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교육청도, 사회도 더 단단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교사가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들도 안전하게 배울 수 있다.


관계가 만드는 교육, 잊혀져 가는 존중의 가치

얼마 전 본 영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고 웃는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이었다. 교실에서, 학교에서 함께 웃고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신뢰와 관계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학교는 그런 장면을 잃어가고 있다. 규정과 서류, 민원과 법적 다툼 속에서 자연스러운 관계가 말라가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바라볼 때 ‘혹시 오해를 살까?’를 먼저 떠올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권이 존중받는 사회는 교사만을 위한 게 아니다.
교사가 온전히 교육활동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학생도 편안하게 배우고 성장한다. 신뢰와 존중은 교사의 권리이자 학생의 권리다. 관계가 무너진 교육은 껍데기만 남는다. 존중이 회복될 때 교육도 다시 살아난다.


교육은 삶을 지탱하는 토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했다.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니다. 삶을 지탱하는 토대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배우고, 실수할 자유를 가지며,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가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
교사가 교육활동이 부당하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열정이 꺼지지 않는다. 그 불빛이 학생에게 전해져야 한다.

교육청에서, 그리고 언젠가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흔들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계속 일조하고 싶다.

교육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오늘 강의를 하며 다시 한 번 되새겼다.


2025. 7. 31.(목)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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