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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송회, 감사함으로 충만한 시간

짧지 않았던 6년, 그리고 마음에 남은 고마움과 유종의 미

잠들 수 없는 밤, 책상에 앉다

늦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스탠드 불빛만이 방 안을 감싸고, 커피 한 모금보다 더 진한 오늘 하루의 감정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파도처럼 일렁인다.

오늘, 나는 마지막으로 교육청으로 출근했다.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묵직했던 아침.
익숙한 복도, 매일 지나던 사무실 문, 나를 향해 건네지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들이 평소보다 더 또렷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작별의 순간이란 늘 예상보다 조용히, 그러나 깊이 스며든다.


6년의 시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말없이, 조용히, 누군가에게 민폐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는 사람.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나는 올해 3월 1일자로 학교로 복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6개월을 더 교육청에 남게 되었고, 그 6개월은 내게 또 다른 인생 수업이었다.

작년 한 해는 유독 숨가빴다.
신설 부서, 준비되지 않은 구조, 쏟아지는 과제들 속에서 나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교육부와의 화상 회의 중, 뜨거운 커피를 손등에 쏟아 2도 화상을 입었을 때도 병원에 다녀온 후 다시 자리로 돌아가 밤 11시까지 일을 마쳤다.
그땐 정말 아픈 줄도 몰랐다.
몸보다 무거웠던 건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무게를 나누는 동료가 있다는 것

올해는 달랐다.
작년의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 인력도 충원되고, 나는 수석 장학사로서 부서 전체의 조율과 방향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학교 민원 대응’이라는 중대한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은 교사들이 암묵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무게였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생기는 민원,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던 학교.
이제는 그 짐을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그 첫 단추를 꿰는 역할을 맡았고, 실태조사와 시스템 설계, 협력 체계 구상까지 하루하루가 치열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말하기보다 참고 버티는 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겪은 현장의 현실, 바꿔야 할 구조적 문제들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내부 회의는 물론 외부 간담회, 신문 기고까지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족하지만,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고, 그리고 바꾸고 싶다고.


환송회, 그 따뜻한 마음의 자리

그리고 오늘, 마지막 환송회.
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동료들이 직접 만든 '부서 상장'
진심 어린 문구와 꽃다발까지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임명장을 받을 때도 이렇게 울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부족했던 점, 말이 많았던 순간, 투덜거렸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그럼에도 동료들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이 정도면 유종의 미야’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머리가 아파서 병원도 다녀왔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어느새 통증이 사라졌다.
이게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이구나 싶었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기에, 나는 덜 힘들었고, 더 많이 버틸 수 있었다.


받기만 했던 시간, 그리고 흘려보낼 시간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주기보다 받은 것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언제나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봐주었고,
말없이 도와주었으며, 조용히 응원해주었다.
그 덕분에 오늘 이 자리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간다. 다시 아이들 곁으로.
그곳에서도 나는 내가 받았던 것들을 흘려보내고 싶다.
좋은 정책과 사업을 설계하려고 밤늦게까지 고민했던 시간,
함께 울고 웃었던 동료들과의 인연,
그리고 내가 받은 따뜻함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넓은 교육 현장에 흘려보내고 싶다.


고마움은 끝나지 않는다

돌아보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매 순간 누군가가 함께 있었고,
같이 고민했고, 같이 일했다.
그래서 오늘 밤은 외롭지 않다.
슬프지 않다.
단지 고마울 뿐이다.

작은 후회는 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따뜻할 수 있었는데,
더 많이 웃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했던 말들, 내 의도들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전해졌기를 바란다.


나의 송별사

“함께해 주셨기에, 저는 무사히 이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마음, 잊지 않고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건네겠습니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글을 남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고요하고 충만하다.
감사로 가득 찬 밤이다.

6년 전, 설렘과 책임을 안고 교육청 문을 열었고
이제는 사랑과 고마움을 품고 문을 닫는다.

새로운 자리에서도
그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2025. 8. 27.(수)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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