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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알레르기, 그리고 다시 설레기 위한 마음 연습

갈림길 앞에서, 나의 길을 묻다

알레르기, 감정의 증상으로 나타나다

요즘 나는 알레르기가 많아졌다. 사람도, 음악도, 음식도, 장소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알레르기처럼, 정신과 감정에도 면역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
누군가를 만나기 전부터 단정하고, 과거의 기억을 덧씌우고,
그 기억이 만든 틀 안에서 사람을 판단하고 거리를 둔다.

TV 프로그램 하나 고르기도 버겁다.
화면 속의 갈등, 분노, 공포…
예전엔 감동으로 다가오던 장면도,
이젠 마음을 흔드는 진동으로 다가와 피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의 알레르기,
어쩌면 마음이 약해졌다는 하나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혹은, 마음이 그만큼 지쳤다는, 조용한 외침일지도.


익숙한 것에만 손이 가는 이유

얼마 전, 딸과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처음 보는 신기한 맛들이 즐비했지만,
내 손은 결국 어릴 적부터 먹던 익숙한 맛을 골랐다.

음식도 그렇다.
맵고, 기름지고, 낯선 향이 섞인 건
이젠 ‘도전’이 아니라 ‘불편’으로 다가온다.

여행도 마찬가지.
한때는 지도를 펼치며 설레던 내가,
이젠 길을 헤맬까, 낯선 상황에 놓일까 두려워
익숙하고 안전한 곳만 찾는다.

도전보다는 회귀, 호기심보다는 안정.
이제 나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을 선택하는 법을 더 잘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나이듦은 육체보다, 감정에서 먼저 시작된다

나는 이제 40대 후반.
지금 시대의 기준으론 ‘한창 일할 나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문득문득 ‘노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과거에 비하면 더 여유롭고, 더 경험이 풍부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 앞에서 움츠러들기도 한다.


“삶은 앞으로 살아야 이해되지만, 뒤돌아보며 배워지는 것이다.”
— 소렌 키에르케고르


지금 내 삶은 어쩌면 그 배움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다.
불안과 설렘 사이에서,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균형을 찾기 위해 몸을 낮춘다.


브런치의 시작, 다시 피어난 감성의 씨앗

신기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하지만 다시 떠올려보면,
나는 고등학생 시절 ‘문학소년’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고 시와 산문을 올렸다.
교사 시절엔 학급 홈페이지에 매일 교직일기를 써 올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내면의 아이를 길들이지 않으면, 어른이 된 후에도 그 아이는 계속해서 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 칼 융


문득문득 글을 쓰는 순간,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세상을 들여다본다.
낯설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을.


마음에 쌓인 피로, 감정의 필터가 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예전의 어떤 상처나 경험을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사실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고,
그저 지금 내 앞에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일 뿐인데.

이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 알레르기’라는 필터를 마음에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는 음악도, 글도, 풍경도
과거의 익숙함을 반복하게 된다.
그저 그때 그 감정이 ‘안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감정은 통제가 안 된다.
그건 내 안의 불안을 건드릴지도 모르는 감정의 낯선 냄새이기에..


나의 고립, 나의 도피

지하철 안, 산책길, 퇴근길…
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만의 음악과 팟캐스트로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한다.

세상은 시끄럽고, 나는 지쳤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나만의 ‘안정한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단절일지도 모른다.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의 불신과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고향으로. 다시, 학교로.

이제 나는 교감으로서 학교로 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쁨과 동시에
6년의 공백과 역할의 변화가 내게는 부담이 된다.

학생도, 교사도, 학교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변화 앞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까.
새로움에 감사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서진 않을까.


소진된 마음에, 새로움을 한 스푼

마음이 소진된다는 것은
모든 자극을 알레르기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알레르기를 극복하고 싶다.
감정의 면역력을 다시 키우고 싶다.
조금씩, 아주 작게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연습을 다시 하고 싶다.

새로운 노래 한 곡,
가보지 않았던 카페 한 곳,
말을 섞어보지 않았던 사람과의 짧은 대화 한 마디.

그 작은 시도가
다시 내 감정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영혼의 나이만은 늙지 않기를

육체가 나이 들고, 감정이 무디어질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것은 영혼의 감각이다.

아이처럼 다시 세상을 놀라움으로 바라보자.
익숙한 것에서 한 발짝만 나아가보자.
나를 가두던 틀을 하나씩 풀어보자.

삶은 여전히 새롭고,
새로움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린다.

지금 나는,
감정의 알레르기를 극복하고
새로움을 향해 걸어가려는 마음 연습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나이 들수록, 감정은 더 민감해진다.
그러나 그 민감함이 회피가 아니라, 감동을 위한 감수성으로 남기를.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위로하고, 나를 다시 사랑해본다.


2025. 8. 30.(토)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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