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갇힌 교실, 쓰나미처럼 밀려온 변화
최근 사회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담고 있는 송길영 작가의 『경량사회』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변화 양상을 예리하게 분석하며, 교육을 포함한 여러 제도들이 어떻게 다시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그의 통찰은 현장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호명사회』에서 시작된 그의 사유는 『핵개인의 시대』, 그리고 『경량사회』로 이어지며 점점 더 개인의 내면으로,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본질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게 듣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삶,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와 교육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변화는 언제나 갑작스럽기보다 서서히 스며든다. 처음에는 미세한 불편함이나 낯섦으로 시작되지만, 어느새 일상 전반을 바꾸어 놓는다. 지금 우리의 사회가 그렇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각, 전혀 다른 연결 방식, 전혀 다른 속도로 관계를 맺고 정보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알고리즘이 관심사를 선별하고, 감정은 플랫폼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된다. 우리는 이미 완전히 다른 시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초연결사회'다. 전에는 불가능했던 운동, 예를 들어 네팔의 민주화나 해외 이슈에 대한 연대 같은 일이 SNS 하나로 가능해지는 시대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즉각 연결되고, 감정은 곧 행동을 일으킨다. 종교가 예배당에서 경전을 통해 감정을 공유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한 줄의 트윗, 한 장의 이미지, 짧은 영상 하나로 전 세계가 울고 웃는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외로운, 아이러니한 사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다.
송길영 작가는 ‘경량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가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정교하게 반응하며,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통해 개인의 역량이 증폭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그는, 소수의 개인이 자신의 힘만으로 문화와 집단을 이끌고, 작은 여론이 거대한 변화를 촉발하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하며, 그 변화의 흐름이 교육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교육의 가치, 효용성, 필요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의 공부, 지금의 학교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점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내용은 현실과 괴리가 크고, 학습 동기는 점점 떨어지며, 교육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왜, 아무도 멈추지 않는가.
답은 명확하다. 경쟁 중심의 제도, 서열화된 평가, 대학 진학을 향한 직선적인 구조,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강력하게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 유지의 합의, 기득권의 논리, 안정적인 질서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오래된 시스템을 방어하고 있다.
‘경량사회’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고의 유연성, 구조의 단순화, 개인의 선택권 확대라는 본질적인 흐름을 담고 있다. 이제 교육도 무거운 틀을 벗어던지고, 시대에 맞게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교육행정은 지금 너무나 복잡하다. 학교는 여전히 각종 공문과 보고서, 평가와 절차에 시달리고 있다. 교육청과 교육부의 승인과 통제는 학교 현장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이제는 단순해져야 한다. 교사와 학교가 보다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본질적인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시스템을 가볍게 바꿔야 한다.
배움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내용을 주입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성적을 매기고, 같은 시간표로 움직이는 학교는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경량화된 교육은 단순히 교과 분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관심사와 자기 속도에 맞춘 학습 경로를 설계하여, 학생들이 수많은 정보를 '넓고 얕게' 훑는 대신 자신이 주도한 배움의 영역에서 '깊고 본질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은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속도에 맞게 배워야 한다.
교사의 역할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교사는 더 이상 정보 전달자가 아니다. 정보는 AI가 훨씬 잘 전달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왜’ 배워야 하는지, 그 학습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의 감정을 읽고, 배움의 동기를 불러일으키며,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이자 코디네이터,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의 ‘동기’다. 성적도, 시험도 아닌 ‘하고 싶다’는 마음, ‘함께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모든 배움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 시작이 사라지고 있다.
자퇴생이 늘고, 조기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많아지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학교 시스템에 대한 집단적 거부 반응이다. 아이들은 이미 알아버렸다. 이 구조 안에 미래는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는 교과서 중심의 수업, 교사 중심의 강의, 시험과 성적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교실도, 수업도, 시간표도, 학기제도도 그대로다.
우리는 왜 이렇게도 느린가.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은 쓰나미처럼 강력하다. 학교도, 교실도, 수업도 그 거대한 흐름 속에 삼켜질 수밖에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교육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바꾸지 않는 우리가 무너지는 것이다.
교사는 이제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에서, 배움의 경험을 설계하고 안내하는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욕구를 기반으로, 학습 경로를 설계해주는 사람.
학교는 더 이상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교실은 실험실이어야 하고, 모든 수업은 탐험이어야 하며, 교사는 함께 항해하는 선장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의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 학교는, 이 교사는 아이들의 미래와 연결되는가?”
가벼워진다는 것은 결코 얕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더 본질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무거운 교과서와 복잡한 행정을 내려놓는 경량화는, '배움의 본질'인 자발적 동기와 깊이 있는 탐구를 되찾는 과정이다. 교사와 학교가 자율성을 확보하는 만큼, 우리는 아이들의 성장에 대한 새로운 책무성을 바탕으로 교육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 무거운 틀을 내려놓고, 새로운 교육의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억지로 낡은 틀에 맞추지 말고, 미래의 요구에 맞게 학교의 틀을 바꾸자. 그 본질적인 변화의 시작이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2025. 10. 5. (일)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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