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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나의 날이 아니었다

가족의 시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

뜻밖의 선물, 딸의 편지 한 장

올해도 어김없이 생일이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였겠지만, 이번 생일은 조금 달랐다. 집사람은 소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여주었고, 딸은 손편지를 내밀었다.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빠가 늦게 퇴근하면서도 떡볶이 사 온 거,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초코 데려온 날, 아직도 기억나."

나는 그 순간, 아이들과 함께 반려견 초코를 데려오던 날을 떠올렸다. 아이들은 미리 손수 만든 ‘환영’ 팻말을 들고, 초코를 맞이했다. 그날의 따뜻함이 나의 생일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초코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게 정서적 안정이 되었고, 아이들에겐 친구였으며, 우리 부부에겐 위로였다.


강화도 만두와 꽈배기, 아버지의 마음

6년 전, 강화교육청으로 발령이 났다. 하루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버텼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저녁 늦게까지 일을 마쳐도,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 이전에는 꼭 출근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집으로 가는 길엔 항상 만두가게에 들렀다. 고속도로 입구에 있는 작은 휴게소 같은 곳.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던 ‘강화만두’였다. 퇴근길에 사간 그 만두를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피곤이 씻겼다. 교육청을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그 만두가 먹고 싶다 하여, 다시 강화도로 향한 적이 있다.

북부교육청 근무 시절엔 꽈배기 맛집을 들렀다. 시교육청에 있을 땐 영화관 앞 식당가에서 떡볶이를 포장해 가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맛있는 것’으로 표현했던 셈이다.


공직자의 자존심, 그리고 스스로의 족쇄

나는 늘 맡은 일에는 고집스럽게 최선을 다했다. 장학사로서 ‘무슨 일이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책임감이 있었다. 혹여 누가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할까봐, 늘 두 배는 노력했다. 일이 몰릴수록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이려 애썼고, 연휴에도 혼자 출근하던 때가 많았다.

자존심이 높았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했던 걸까.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나의 존재감’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을 종종 잊고 살았다.


연휴, 처음으로 여유를 배우다

올해 추석 연휴는 조금 달랐다. 출근 걱정 없는 긴 연휴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파트 헬스장을 찾았다. 10년을 살면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그 공간. 막상 가보니 너무 좋았다. 단지 안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는데, 여태 왜 몰랐을까. 아니, 보지 못했던 걸까.

그건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도 못 보고, 바로 곁에 있는 가족조차 마음으로 품지 못했던 시절.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다 보니,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실감했다. 20대의 내 몸은 이제 없지만, 대신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후회 없는 삶? 아니, 반성 없는 삶은 없다

돌아보면, 교육청에서의 6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훌륭한 분들과의 교류, 행정의 논리, 정책의 작동 방식, 그리고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와 연결을 동시에 배웠다.

하지만 후회도 있다. 가족과 보내지 못한 시간, 친구들과의 멀어진 거리, 그리고 ‘스스로 얽매인 일중독’이 남긴 텅 빈 자리. 누군가는 나를 성실한 공무원이라 불렀겠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관리자였다.

아들, 딸 모두 어느덧 다 커버렸다. 큰 키만큼이나, 감정도 말도 훌쩍 자랐다. 이제야 깨닫는다. 아이들은 부모가 뭔가 해주어서가 아니라, 부모와 ‘시간을 함께 보냈는가’로 기억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이제 어떤 불빛이 되고 싶은가?

삶의 전성기는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전성기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건, ‘지속 가능한 등불’이 아닐까. 한때는 강하게, 멀리 비추는 불빛을 동경했지만, 지금은 조용히 곁을 비춰주는 안정적인 불빛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건강이 필요하고,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보고, 가족과 주변을 살피는 눈이 필요하다. 이제는 ‘무리한 열심’이 아니라 ‘지혜로운 꾸준함’을 택하고 싶다. 그 속에서 나의 삶도, 나의 가족도 조금 더 따뜻해지리라 믿는다.


생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지만, 결국은 ‘사랑이 시작된 날’이다. 그 시작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제나 고마움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처음의 마음’ 아닐까.


2025. 10. 7. (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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