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는 각자에게만 유효하니까

다짐의 자리

by 문정

누군가 보기엔 별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겐 그 시절이 전부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버텨야 했던 하루하루의 기록을 풀어본다.


사는 게 벅찼고, 작은 선택에도 망설임이 따랐다.

비교는 의미 없었다. 삶의 무게는 각자에게만 유효하니까.

나는 그 무게를 안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나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 본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과거 늘 어딘가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집은, 이제 고지서 하나에도 더 깊은 침묵에 잠기곤 했다.

그 무거운 현실은 나에게도 피할 수 없는 짐이 됐다.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이었다.

여러 번 사업이 어려워졌다가, 다시 시작하길 반복하셨다.

내가 다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집안 곳곳에 균열이 더 깊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 현실을 제대로 마주한 건, 군에서 제대한 직후였다.

그제야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이미 무너져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버티는 사이 쌓아온 것들은 서서히 잠식돼 갔고,

결국 큰 규모의 사업 대출은 연체로 이어졌다.

살고 있던 집엔 경매가 예고됐다.

경매까지 가면 손해가 너무 커질 게 뻔했기에,

나는 그전에 집을 팔 수밖에 없었다.


스물셋.

세상 물정엔 아직 서툴렀다. 그래서 그 절박함을 더 날것으로 느꼈다.

나는 사업을 위해 중국에 머물고 있던 아버지에게 지금 이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지, 어째서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를 메일로, 때로는 통화로 쏟아냈다. 대답은 돌아왔지만, 멀리 있는 사람의 말은 늘 현실보다 가벼웠다.

결국, 그 결정은 내 손으로 내려야 했다.


내일은 나아질까, 오늘보다 조금은 숨 쉴 수 있을까.

막연한 희망과 깊은 회의감은 날마다 뒤섞였고, 나는 그 불안 속에서도 움직였다.


낮에는 고등학생 과외를 했고, 밤에는 지하 술집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그때의 나로선 할 수 있는,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했으니까.

화려한 네온 아래, 취객들의 흔들리는 몸짓을 피해가며 술병과 술잔을 날랐다.


어느 날은 술 취한 손님이 마이크를 집어 들어 내 머리를 내리쳤다. 장난도 실수도 아닌, 분명한 폭력이었다.

놀란 여종업원들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목이 메었다. 누군가의 관심이, 그날따라 더 벅찼다.


어쩌면, 그들도 그런 일이 익숙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사정을 안고, 각자의 방식으로,

나처럼 그들도, 하루를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번 팁과 일당은 빠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밀린 것들 중 하나라도 해결되기를 바라며, 나는 새벽에 집에 들어와 구겨진 지폐들을 어머니의 손에 쥐여드렸다.

어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물으셨다.

어디서 이런 돈을 구했느냐고.

내심, 혹시라도 나쁜 일에 얽힌 건 아닐까 걱정하신 거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온몸으로 감당하며 번 정직한 돈이었다.


그렇게 번 돈을 어머니께 건넬 때마다,

마음 한켠은 조금 놓이는 듯했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지하 술집의 공기는 내 마음까지 눅눅하게 만들었다. 하루 서너 시간도 채 못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느낀 어느 날, 나는 혼잣말처럼 다짐했다.


“다시 시작하자.”

그게 내 유일한 희망이었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멈추지 않겠다는 결심 하나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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