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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새 Mar 28. 2024

나의 나르시시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 . .

   나르시시스트는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고, 절대 피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어쩌면 내 안의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을 인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배척해야 할 나르시시스트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내 안에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이 있(었)다는 것. 나는 나의 인격을 성숙시키기보다 나를 설명하는 외적 조건을 발달시키기 바빴고, 겉으로는 절대 티 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볼 때도 그 사람의 내면세계보다는 외적 조건을 고려할 때가 많았다.


   내가 나르시시스트였구나를 인지한 것은 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많은 외현적 나르시시스트가 그렇듯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았지만 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해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남들보다 우위에 있길 바랐는데, 이 역시 남들에게 절대 티 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소망을 아주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건 도대체 뭔데?"라고 물어본다면 명쾌하게 대답해 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니깐. 흔히들 말하는 외모, 부, 인기를 통해 허상을 채우려고 하지만 그건 그저 허상일 뿐이라 나는 끝없이 공허했다.


   나는 지금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있다. 이반 일리치 역시 나르시시스트로 보인다. 그가 결혼하게 된 이유는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 자만심을 채울 수 있었고, 동시에 고위층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일을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결혼생활에서 불유쾌한 장면들이 연출되기 시작하자, 그는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나마 가정의 품격을 잘 지켜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줄이고 일 속에 파묻힌 채 오직 거기서 삶의 재미를 느꼈다. 아내인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 역시 이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반 일리치가 병에 걸리자 병의 책임이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으며 남편이 병에 걸려 자신을 또다시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다른 사람이나 남편을 향해 드러내놓고 말했다.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파멸(죽음)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이해하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큰 기시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다름 아닌 나의 부모와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지만 그들 역시 미숙한 존재였으며, 내 미숙함의 양상이 그렇듯 내 부모의 미숙함의 양상도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으로 발현되기 때문이었다. 이 년 전쯤 아빠는 맹장이 터질 때까지 참아서 큰 수술을 했다. '그러게! 진작에 병원에 가자니깐 왜 안 가고 버텼냐'고 속상한 마음에 물어보자 아빠는 '병원에 가면 엄마가 나를 약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얕볼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이 무슨...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장면이란 말인가...! 20년 넘는 부부의 신뢰관계가 이렇게까지 얄팍할 수 있구나 놀랐다. 근데 그게 다름 아닌 나의 부모였다는 점에서 그 기억에는 슬픔과 쓸쓸함도 함께 묻어 있다.


  나의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은 부모로부터 대물림받은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온전치 못한 모습이 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선택지였음을 이해한다. 8남매 중 어중간한 여섯째 딸로 태어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온전한 관심을 받으며 자라지 못한 나의 엄마는, 여상에 진학한 이모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인문계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할아버지로부터 원하는 관심을 받아냈다. 할머니를 도와주지 않고 방에만 누워있는 엄마에게 첫째 이모와 막내 이모가 타박을 하자 할아버지는 "**(엄마 이름)는 공부하게 편히 쉬게 둬라!"라는 특혜를 줬다고 한다. 아빠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삼 형제 중 차남으로서 느꼈을 서러움을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고 일을 성실히 수행해냄으로써 부족했던 애정욕구를 채웠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또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는 아프셨다.


  결국 나의 부모 역시 존재 자체로 충분히 사랑받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방식 그대로 나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섬세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 부모로부터 (우리 엄마 아빠에게는 버거울 만큼) 큰 리액션을 원했던 아이였는데, 엄마 아빠가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관심을 충족시켜 준 것은 오롯이 내가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였다. 보통 그 무언가는 공부였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특혜를 주는 우리나라의 교육환경과 더불어 나는 훌륭한 나르시시스트로 자랐다.


  나의 나르시시즘은 오랜 시간 내 옆에 끈질기게 붙어있었고, 내가 나의 나르시시즘을 인지하게 된 것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른 대인 관계에서는 많이 괜찮아졌지만, 연애감정을 느끼는 관계에서는 아직도 나르시시즘이 끈덕지게 붙어서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런 나는 상대방에게 집착하면서 그를 괴롭힌다. 어쩌면 이 글은 아주 좋아했던 상대방에게 거절당한 후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쓰는 글! 상대방을 욕망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려고 해도 감정의 심지에 불이 붙으면 나쁜 습관이 화르륵 발현된다. 폭주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사과하기를 반복했던 그날 밤... ☆彡 그럼에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존심 다 버리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기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우리의 추억은 이제 진짜 마음속에만 묻어두려고 한다... 잘 가... (어차피 이 글은 읽지 못하겠지만)

러브를 아그작 씹어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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