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새벽녘엔 빗자루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컷이 바뀌더니 잠을 자는 히라야마의 귀가 보인다. 이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은 재빠르게 줌인되는데, 이 간단한 카메라의 움직임에 매료가 되어 ‘흠 이영화..’하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이는 아마 퀵줌을 촬영 콘셉트로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연출자로서 줌이 쓰인 또 다른 영화를 마주한 반가움일 지도 모른다.
퍼펙트 데이즈는 참 특이한 영화다. 나는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특별한 이야기나 사건 혹은 강렬한 감정이 오가는 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한 중년 남성의 하루를, 기상-출근-업무-점심-업무-퇴근-목욕-저녁-독서-취침이라는 단순하고 정갈한 하루만 엿보았을 뿐이었다. 이 평이한 나열 속에서 나를 위안하고 울린 것은 언뜻언뜻 보이는 히라야마의 살아있는 표정과 따뜻한 눈빛이었다. (나는 야쿠쇼 고지의 명연기가 나왔다는 마지막 씬보다도 영화 속에서 언뜻언뜻 나오는 히라야마의 표정이 더 좋았다.)
다음에 언제 바다를 볼 거냐는 조카의 말에 히라야마는 “나중은 나중,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하며 눈앞에 있는 강을 응시한다. 이어진 씬에서 조카와 히라야마는 반복해서, 노랫말을 붙여가며 외친다. “나중은 나중, 지금은 지금” 이 대사는 내 마음에 쏙 들어와 나도 괜히 지금을 즐기고 싶어 눈뜨고 명상하듯 나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본다.
그리고 문득 풋살 수업을 가는 날에 이 영화를 보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풋살 수업을 듣고 짧은 매치를 뛰는 동안만은 지금을 사는 법을 잘 모르는 내가 유일하게 지금에 집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은 경기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웃은 날이었는데, 이 유쾌한 하루 끝이 퍼펙트 데이즈로 마무리가 되어 나는 아마 오늘을 잊지 못하겠구나란 예감이 들었다. 아주 긴 시간이 흘러 한성대에서 자취하던 날을 떠올릴 때면 오늘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거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