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 학원 퇴사를 약 1주일 앞두고 있다. 인생의 또 다른 새로운 챕터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새 자주 가던 단골 카페도 바뀌었고 자주 보는 사람들도 바뀌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오랜 냉담 기간을 끝내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간 일이 아닌가 싶다.
"예수 취급을 받던 아담이 스스로가 아담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면서 원래 상태로 자기 소멸을 맞아가는 이야기"라는 박쥐 평론은 내 안에 해결되지 않던 감정의 실마리를 해결해 주었다. 이 얽힌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어 시나리오로 그리고 싶었기에 괜히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집어 들어 열심히 읽었다. 약 8개월 전에 읽기 시작한 책인데 아직 그 책을 다 읽지 못했으며 시나리오는 캐릭터 구상도 제대로 되지 못한 채 멈춰있지만 딱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크리스천들의 믿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색채가 많이 묻어있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큰 역할을 했다.
"초기 기독교인은 아담의 불복종으로 인해서 일어난 에덴의 상실이라는 참담한 사건을 주로 생각했다. 그 이야기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은 죄와 그 결과를 사유하게 되었다. 그들은 괴롭고 보편적이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현실의 원인을 추적하여 그것이 사탄의 유혹 때문에 악에 빠져든 최초의 인간들의 행동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그들은 새 아담 - 예수 그리스도-이 고난을 받고 죽음으로써 옛 아담으로 인해서 생긴 피해들을 복구했다는 믿음에서 위안을 얻었다."
-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P.14.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을 읽다 보니 다시 성당에 가보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집 근처 돈암동 성당에 갔다. 어리숙하게 눈치를 보며 신자들을 따라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기도하는 척하며 바빴던 와중에도 기억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다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던 순간이었다. 더불어 그들이 우리의 이웃임을 잊지 않도록 기도하던 순간이었다. 한평생을 가난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목소리만 듣던 나는 난생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고 이들이 나의 이웃임을 잊지 않도록 기도했다. 왠지 모를 해방감 혹은 감동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음 주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성당에 갔고, 그다음 주에는 성가를 부르러 성당에 갔고, 또 그다음 주에는 다정하시고 잘생긴 신부님을 보기 위해 성당을 갔다. 한 한 달간은 잘생긴 신부님을 덕질하는 마음으로 성당에 갔던 것 같다. 고된 인생 문제와 잘생긴 신부님 눈웃음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겠다는 핑계가 합쳐져 평일 미사까지 갔었다!!! 언젠가 한 번은 박쥐에서 오마주 되었던 성경 구절을 신부님께서 읽어주시며 '존재의 이유를 성취를 통해서만 증명하려고 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오랜 냉담의 끝의 시작이었던 박쥐 속 '마태복음'을 다정한 신부님을 통해 다시 접하고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그때부터 괜스레 운명적이라고 느껴 매주 성당에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사실 첫 영성체를 받던 12살 때도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주일학교에 가기 싫어서 엄마한테 떼쓰며 울기도 했고 학원 땡땡이는 치지 않더라도 주일 학교 땡땡이는 참 자주 쳤다. 세례를 받긴 했지만 무신론자로서 한평생 살았다. 무신론자로서 미사를 볼 때, 실눈을 뜨며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의문스러워하며 기도하는 척하던 순간이 많았다. 아직 성당 다닌 지 3개월 정도 되었기에 여전히 성경의 말씀과 신부님의 말씀을 완벽히 믿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어서 믿는다. 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 난 이 어렴풋한 것들이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신앙을 회복하게 되자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고 엄마도 오랜 냉담 기간을 끝내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셨다. 실체도 없고 대답도 없는 온전한 내 편이 생긴 나는 상담사님 다음으로 마음 편히 엉엉 울 수 있는 대상이 생겼고 누군가가 올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는 믿음 아래 조금 더 용기있고 대범하게 불안의 목소리가 아닌 '직관'의 목소리를 따를 수 있게 되었다. '신'만이 할 수 있는 무한한 관용과 인내를 타인에게 바라왔던 나는 그 기대의 방향을 올바른 대상에게로 돌려 더 이상 타인도, 나도 괴롭히지도 않게 되었다. (사실 '전보다 덜 괴롭히고 있다'가 더 적절하겠다. 내가 타인을 안 괴롭히고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주 큰 오만이다.)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나의 해방일지」
성당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면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경건한 장소 속에서 나의 출세와 성공과 부를 위한 기도는 저절로 하지 않게 된다. 아직 제대로 기도해 본 적이 없어 눈을 감고 손을 모은 후에는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 고민하는 데 오랜 시간을 쓴다. 우선 가족의 평안을, 친구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또다시 더 깊은 차원으로 기도하기 위해 고민한다. 잠깐의 고민 후 이 고통스러운 불확실성 속에서 하루에 하나씩 작은 기쁨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빌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더 나아가 내가 나를 존재 자체로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들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속세로부터 벗어나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해주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어찌나 기쁜 일인지! 언젠가 블로그에 요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평안하길 바란다'라고 인사한다고 했었는데 내가 미사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완전한 타인처럼 느껴졌던 사람들이 눈을 맞추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순간 의미 있는 타인으로 다가온다. 나를 더 다정하고 안정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나의 종교에 감사하고, 오랜 냉담을 끝내게 도와주신 잘생기고 다정하신 부주임 신부님께 특히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 (이 멘트는 석가탄신일 기념 불상 밑에 적혀있는 멘트긴 하지만... 천주교나 불교나 다 같은 이야기 하고 있으니깐 한잔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