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

[생산 중독자의 초상] 작성일: 16/05/14

by 문영


나의 원가족은 나와 아빠, 엄마, 여동생 두 명, 그리고 친할머니로 구성되어 있었다. 90년대에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우리 집에서도 고부갈등이 꽤 심했는데, 친할머니가 폭군과 같았고 나 또한 친할머니에게 정서적 학대, 즉 쌍욕을 많이 듣고 자랐다. 욕지거리를 듣는 엄마의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고 같이 주방에 쭈그려 앉아 듣다가(엄마는 왼쪽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면 노래만 들을 수 있었다), 소리를 치던 할머니가 안방에서 나오려고 하거나 대답을 요구할 때 그 이어폰을 빼고 <엄마, 이렇게 대답해> 하고 말해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동생들과 나에게 난동을 부릴 때면 피아노 의자 같은 걸 방문 앞에 대고 막아서 못 들어오게 했고, 문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를 귀를 막고 버텼다.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눈치를 살핀 뒤 양말 바람으로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기도 했다.


정서적 학대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모두 다르지만, 나는 태생이 꽤나 똘똘한 아이였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모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할머니를 어떻게 죽이고 싶은지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해 종이에 빽빽이 적고는 했고(부모님이 이것을 읽었는데 당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게 뭐냐며 훈육하지 않음) 중학생이 되어서는 mp3에 할머니의 욕설을 녹음해 증거자료 따위로 저장해 두었었다. 그런데 뭐 당연하게도 실제로 살해는 하지 않았고 경찰에 아동학대를 신고하지도 않았다. 너무 진부한 표현인데 천장에 부딪힌 벼룩처럼, 냄비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사실 나는 학교에, 사회에 나의 정서적 결핍을 <숨기느라고>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렸던 것 같아. 그래서 못 죽였고 신고도 못 했다. 몇 번 제발 이러지 말라며 소리친 적은 있기는 하지만 노인의 눈을 노려보았던 그 순간 내 분노가 그 노인에게 닿지 않는다는 감각만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화를 낸들 저 노인에게 닿을 리가 없다. 애초에 내 감정을 알아주는 사람이었으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 정도의 생각을 한 뒤부터는 학대가 멈출 걸 기대하고 행동한 적은 없고 그저 문을 막고 귀를 막았다.


그러나 폭발은 어느 날 평범한 날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날 평범한 욕지거리의 현장. 나는 엄마를 보호해 준답시고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가 <제발 죽어>라고 울부짖으며 노인을 밀치고 그릇을 다 부쉈다. 동생들이 내 팔을 하나씩 잡아 할머니를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지 못하게 막았고 나는 결국 방으로 질질 끌려 들어간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할머니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니 깨진 그릇을 치우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외쳤고, 엄마는 나에게 <나를 보호해 준 것은 고맙지만 어른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책임? 그렇군. 만 23세였던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집을 나가게 된다.


그때는 대학원 입학 직전이었고 등록금을 막 납부한 직후였기 때문에 수중에 50만 원도 없었다. 수능 치른 직후부터 알바는 쉬지 않고 했으나 이 시점부터는 내 밥 세끼는 내가 챙겨 먹어야 하는 상황. 일단 고시원을 잡고 일을 더 늘린다. 아르바이트를 다니기 위해 오토바이도 산다(효성 프리마 랠리 50cc, 당시 20만 원에 중고로 구입). 대학원 수업도 듣는다. 대학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받아한다. 대학원 행사가 있으면 과자나 남는 음식을 다 가져온다.


나의 정서적 결핍을 숨기느라고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어느 정도 티는 났다. 예컨대 대학원 석사과정 중 집단상담 수업을 듣던 중에 <이렇게 저렇게 학대를 받았습니다>라고 내 경험을 고백하고, 강사가 할머니와 마주하는 빈 의자 기법 따위를 하려고 해서 두려움에 소스라치게 울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은 된 성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엉엉 울었단 거다. 내가 우는 걸 보고 같이 따라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명절에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마주해야만 할 때도 울었다. 아빠, 엄마, 어린 동생들을 옆에 두고 나는 너무 혐오스럽고 힘들어서 그냥 목 놓아 울었다. 한번 더 진부한 표현을 해 보자면, 마치 도살장 앞에 선 소처럼 울었다는 거지.


친할머니를 죽이고 싶어서 죽어버릴 것 같아. 이 분노는 어린아이였던 시절부터 내 안에 수십 년을 존재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태생이 밝은 성향이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연애도 즐겼고, MBTI 결과는 거의 100% 외향으로 나오곤 했다(흔치 않은 여자 ESTP). 사회 속 나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열정적이었으나 그와 동시에 나는 할머니를 죽이고 싶어 엉엉 울던 어린이이기도 했다. 이 두 세계의 간극은 해가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나는 이 분노가 할머니의 죽음으로도 해결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냥 눈을 감고 버티고 있을 뿐이다. 분노를 느끼지만, 분노를 느끼는 것이 힘들어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아. 이것이 나와 가장 가까운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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