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종결의 계시

[맥도날드 일기] 작성시점: 2019년 1월

by 문영


해야 될 게 너무 많아서 숨이 막힐 지경인데 나는 오늘 밤에도 햄버거를 수백 개 만들고 왔다. 치즈, 3.5:1 패티, 히코리베이컨, 적양파, 양상추, 아이올리소스 아아! 도대체 왜 안 외워질까? 나는 외워지지 않는 햄버거 조리법을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한시 반이 넘었는데 최근에 받은 번역 알바 조금만 보려다가 머리가 어지러워 그만뒀다.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더라? 일단 직장 일: 다음 주 워크샵준비, 학년도 마무리 성과보고, 학사경고자 심층면담 준비. 그리고 대학원(박사과정 2학기차) 일: 석사학위논문 투고를 곧 해야하고, 기타 간사 잡일들. 그리고 내 일상: 먹고, 씻고, 자고…


교직원이자 국립대 박사과정생인 나는 대체 왜 맥도날드를 놓아주지 못할까? 대학원 장학금 이슈로 맥도날드를 잠깐 그만둬야 했었던 그 시기에 나는 매니저 앞에서 조금 울었던적도 있다. 그 어떤 슬픈영화를 봐도 썩 눈물이 쉽게 나지 않는 나인데. 그 이후에 동네에서 술만 먹으면 매장에 찾아가 햄버거 하나만 만들어보면 안되냐고 허튼 주정도 많이 부렸지. 다른 지점에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있었을 때, 너무 설레서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었다고. 도대체 왜 이러는건데? 제발 평범한 박사과정생처럼 수업 듣고, 논문도 쓰고, 차나 한잔 홀짝이면서 책 보고 키보드나 두들기라고! 담배 피고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다가 들어와 (손 씻고) 빵에 소스나 스윽 슥 바르지 말고! 내가 나를 제3자로 앞에 둘 수 있다면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뺨이라도 한 대 올리고 싶은데. 너 지금 서른이야. 제발 정신 좀 차리고 학위과정, 직장생활, 소논문, 건강관리 등을 좀 하라고. 이상은 내 머리가 하는 말.


그런데, 사실 나는…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해 보면… 오늘 투부스(Drive-Thru에서 제품을 제공해 주는 역할로 보통 카운터에서 가장 경력이 높은 사람이 하게 되는 포지션)에서만 있다가 어셈(햄버거에 마지막으로 고기를 올리고 포장하는 역할로 보통 그릴에서 가장 경력이 높은 사람이 하게 되는 포지션)을 두시간 반을 했는데, 참 너무 행복하더라구. 오늘 Drive-Thru로 세트 세 개나 사가는 중년의 남성 손님이 <아이구, 이거 먹고 살찌겠네!>라고 말했을 때, <아이구, 그래도 맛있잖아요>하고 농담으로 받아치는 그런 순간들. 따뜻하게 튀긴 크리스피 오리엔탈을 포장하는 뜨거운 순간들이 나에게 깊은 행복을 준다. (크리스피 오리엔탈은 주문이 자주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패티를 보관할 수가 없다. 나는 조리시간이 좀 소요되더라도 무조건 주문이 들어온 즉시 튀긴다.) 그 손님은 세트를 왜 세 개나 사갔을까? 누구와 함께 먹을까? 고등학생 즈음 되는 자녀가 있을까? 아빠가 언제오나, 기다리고 있을까? 집이 그렇게 멀지가 않다면, 내가 포장한 랩지를 벗기고 한 입 먹었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날 거야. 조금 데일 수도 있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기름진 치킨이 주는 행복… 내가 그걸 만든거야. 솔직히 돈을 어느정도 주니 좋지만 나는 돈을 안 주더래도 일을 할 용의가 있다. 12년 9월 21일, 나의 첫 출근일부터 19년 1월 15일 오늘까지… 그 어떤 날도 일이 싫지 않았어. 카운터에서 진상손님에게 몹쓸 꼴을 당해도 죄송하다고 아뢰는 게 꽤 흥미진진한 미션 같기도 했어. 그릴에서 불고기 오십개를 동시에 만들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배달하러 가서 아줌마가 왔다는 아기의 비명을 듣는게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구…


스물 넷에 단돈 오십만 원 들고 독립한 나, 서른에 드디어 전셋집을 구했다. 그리고 이율이 1.2%로 거의 이자 무료에 가까운 중소기업취업청년 대출을 받아 보려고 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교는 중소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가능하단다. 그런데, 1주일에 3시간씩 일하는 맥도날드가 대기업이네? 내가 맥도날드에 소속되어 있는 것 때문에 이 상품의 대상이 안 될 수도 있겠다고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연봉 200만원 대기업에 재직 중이라는 것 때문에 이율 혜택을 누리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이게 선례가 단 하나도 없어서 은행에서도 굉장히 당황스럽다고 하시더라. 은행에서는 기관에 문의하여 두었는데, 선례가 없어 기관에서도 바로 답변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 그만둘게요! (하지만 나중에 다시 입사할게요)> 외쳤으나 일단 은행원은 워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뭐, 결국엔 그만둬야만 하는 결론이 났지만.


은행 서류를 앞에 쌓아두고 생각이 많아진다. 퇴사처리를 또 밟는데 마음이 복잡하다. 현실주의자이자 비종교인인 내가 어떤 영적인 감을 느낀거다. 내가 그간 현업과 대학원 생활을 이어오면서 맥도날드를 그만둬야 하는 위기의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더라? 그리고 그걸 어떤 편법들로 넘어왔었더라? 그리고 지금, 서른의 나이… 나는 또 어떤 편법을 사용해야 하지? 왠지 이번엔 조금 망설여져. 뭐라 형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왠지 <진짜>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신호가 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계시일지도 몰라. 어떤 비물질적 존재가 나에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현업과 공부에 집중하라고 얘기해 주는 것 같다. 그래,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으니, 이젠 최저시급의 McJob을 놓아줄 때인 것 같아. 평생을 살아가며 언젠가 McJob을 놓아야 한다면 그것이 어쩌면… 지금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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