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의 생각들] 작성일: 25/06/13
내가 2009년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친할머니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게 되었다. 엄마가 집을 몇 주간 떠나 있었던 것이 2010년이고, 내가 원가족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오게 된 것이 2014년 즈음이니...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알바만 할 뿐 그다지 다를 바 없던 어리고 미숙했던 나는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너무 잘 누리다가도 집안 생각만 하면 우울했는데 그 우울이 어떤 결인지도, 어떤 기제와 연유인지도 모른 채 그냥 울적하기만 했고 반작용으로 더욱 미숙한 행동, 생각 등을 했었던 것 같다. 술이나 담배,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던지.
지도교수님 상담이 잡혀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가던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상태를 몰랐다. 깔끔한 느낌의 연구실에 마주 앉아 학교 생활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 앞에서 거의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요즈음 가정 분위기를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결국 할머니를 죽이고 싶다며 울었다. 어쩔 수 없는 어리고 미숙한 여자아이... 지도교수님은 인지심리 전공이셨고 30대 초반에 국립대 조교수로 임용되신 엘리트. 심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심리가 그 전문대에서 인식하는 따뜻한 상담심리 노인심리 같은 것이 아니고 어찌 보면 조금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사회과학자. 교수님은 매우 당황하시다가 이런 말을 하셨다. 네가 이렇게 힘든 상황일 줄 몰랐다는 것이다. 다른 동기들은 나와 상담을 하면서 '문영이처럼 학교생활을 하고 싶은데 친구들과 적응이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세 명이나 내 이름을 말했고, 문영이와 친해지고 싶은데, 문영이처럼 재미있게 대학생활을 하고 싶은데... 그랬어서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낼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하셨다.
16년 전의 이야기라 중간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말미의 한 문장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셨어. 할머니가 평생 살아계시는 건 아니잖니. 어렸던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오늘의 괴로움에 매이고 묶여 눈을 꼭 감고 있던 나는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다. 나도 나이가 들어 교수님과 같은 연령(당시 30대 초반이셨음)이 될 수 있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상담이 마무리된 적이 있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일하고, 연애하고, 동아리 활동하고, 집안에서는 여전히 난리 치고, 짐을 싸들고 탈출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직장에 취업하고, 석, 박사(수료) 과정을 이수하고, 돈을 벌고 또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서를 두 번 바꾸어 가며 새로운 업무들을 하고, 외주를 받고 또 어찌어찌 끝내고... 일상도 계속 굴러갔다. 내가 그간 이사를 몇 번 다녔던가? 원가족과 같이 살던 집을 제외하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9번째다. (이 도시의 총 여섯 개의 구에서 살아본 적이 있음) 면허를 따고, 오토바이를 6, 7대를 바꾸고, 차를 타고... 그리고 나는 지금 교수님의 나이 언저리가 되었다.
여느 날과 같이 일을 하던 나는 어떤 링크를 하나 받는다. 그 교수님께서 학교 건의 게시판에 작성하신 글이었다. 요컨대 학교 도서관 초청 저자특강 강사로 특정 인물이 부적절하단 점을 조목조목 적어 이 특강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글이었는데 글을 읽고 있다 보니 그 시니컬한 어투가... 왠지 모르게 16년 전의 상담 장면이 떠오른다. 할머니 때문에 힘들어요. 우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언젠가 죽을 거야. 위로해 주셨던 인지과학자의 깊은 위로와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는 것이다. 나는 내 직장의 포탈에서 '메일 쓰기'를 누르고 생각 없이 써 내려갔다. 그간의 내 근황, 친할머니가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16년 전 당신의 한 마디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개인 계정이 아니고 포탈 계정으로 작성했던 것은 메일 하단의 꼬리말에 삽입되는 내 소속과 이름, 내선번호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지도.
글을 다시 읽지도 않고, 메일을 던지듯 보내놓고 일을 하다가 보니 수신확인이 되어 있는데 시간이 두 시간여 전이다. 내가 너무 내 말만 썼나? 사실 16년 전이면 지나치게 오래전인데... 어쩌면 나 자체를 기억 못 하실 수도 있겠지. 기억을 하시더래도 어쩌라고 싶진 않을까? 생각이 이어졌는데, 이 생각들은 내가 교수님의 입장을 지나치게 생각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꽤 이타적인 인간인가 보군. 메일을 보내놓고 상대의 시간이 낭비될까 봐 걱정하다니. 그리고 뭐 교수님의 생각은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니 생각한들 의미가 없지... 그리고 한 시간 더 있다가 답장이 왔다.
기억에 남는 학생이었다는 말이 순간 약간 머쓱했는데 내가 대학 다닐 때 요즘말(도 아니고 유행지난 말)로 관종이고 나댔거든. 지금의 내가 차마 떠올리지 못할 만큼 어리고 미숙했어서 그 시절이 짧게 떠올랐다.
나름 긴 메일의 끝에는 고생했고, 대견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내 반응은? 사실 마구 눈물이 나거나 그러진 않았어. 하지만, 나를 구성하는 어떤 부분이 약간 더 탄탄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렸던 나는 타인과 동기화되기를 바라기도 했는데, 젊었던 나는 세상 속 혼자 남겨졌다는 고독에 우울 문제를 심하게 앓기도 했는데, 사실 그것도 저것도 실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적당히 연결되어 있다. 가끔씩 서로를 기억하기도 대견해하기도 하면서... 나에게도 어른들이 있다. 그리고 키워야 될 아이(들)가 있다. 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