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종자의 책 육아 저항 및 불복기

회색인간의 육아기록

by 문영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였으며, 자식을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실한 한국 여성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담배를 꽤 오래간 피웠고, 300cc 쿼터급 스쿠터를 탔으며, 아이폰을 쓰기 싫은 반골종자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는 내가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반골기질 때문에 다음과 같은 육아 관련 키워드에 반감이 들었는데, 그것은 영어노출, 책육아다. 우선 첫 번째 영어노출을 짧게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우리나라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괜히 헷갈리는 것 아닌가 싶어서 심지어 '일부러' 영어노출을 없애기까지 했다. 물론 사과는 apple, 책은 book 이런 수준으로 부양육자가 얘기해 준 것을 혼자 기억하고 중얼거릴 때는 기특한 마음도 들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사과는 사과지 뭔 애플을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 차라리 부사와 아오리 이런 걸 알아야는 거 아닌가? 괜히 마음 어딘가 개운치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영어 포스터는 떼어 찢어버렸고... 교육과정에 맞춰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하면 안 되는 건가? 마치 어린이에게 10년 뒤 볼 수 있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틀어준 것과 같이 마음 한편이 거슬리기도 했다는 거다. 영어 노출을 안 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막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이상한 놈이라고 볼 수 있음...


그리고 두 번째는 책육아. 오늘 길게 쓰고 싶은 주제. 나는 어렸을 때 책을 너무 좋아해서 밥 먹을 때, 목욕할 때도 책을 봤다. 혼자 도서관도 많이 다녔고 읽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읽어야 해서 큰 도서관의 사서에게 부탁해 고서를 신청해서 세로 읽기 책을 빌린 적도 있다. 석, 박사(수료), 직장생활 및 외주 하면서야, 읽고 싶은 글보다는 읽어야 할 글들에 묻혀 지내다 보니 요즈음은 시큰둥해졌지만... 내가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보는 것들은 대부분 영상이 아닌 글자들일 정도로 기본적으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책은 한 자리에서 다 읽지만 영화는 한 자리에서 거의 못 본다. 이런 나는 내가 자라온대로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책 몇 세트를 사주었고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야물야물 그림책 (2) 스웨덴 인성동화 (3) 탈것 친구들, 부릉부릉 씽씽 (4) 프뢰벨 다중지능 에듀 1, 2, 3 (5) 열려라 지식문 + 알라딘 중고서점 및 굿윌스토어 등 매장에서 단권 10여 권... 나는 각 책들의 구입 시기와 구매 가격들을 다 기억한다. 이것만 봐도 아주 정보 및 활자중독 미친놈이라고 볼 수 있음...


책 육아가 좋다 어떤 육아가 나쁘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반골기질이 만연한 나는 그 분위기가 싫었다. 영상노출을 최대한 제한하며 고상한 책으로 육아하며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그 뿌듯함을 느끼는 여성들의 분위기라고 할까? 책장에 아이가 보지도 않을 새 전집을 채워놓고, 그걸 본인들도 관심도 없으면서 억지로 시간 정해놓고 꾸역꾸역 읽어주는 그 세태라고 할까? 그게 좀 싫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괜히 어린이 서점 같은 데 가서 전집을 사기 싫어지고 만다... 사실 지금 '과학특공대'를 너무 사고 싶어. 요즈음 유아들은 이런 책을 읽는구나. 진짜 너무 소름 돋게 재밌다. 이게 내 아이의 머릿속에 어떻게 입력될까? 이걸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레고 두근거려 당장 차 시동 걸어 어린이 서점으로 질주해 책을 수십만 원, 백만 원, 이백만 원어치 사들이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책 육아'를 하는 것 같은 엄마가 되기 싫어서 새 전집을 사고 싶지 않은 이상한 또라이라고 볼 수 있음...


최근 에피소드. 나 최근 아이랑 중고 서점을 갔다가 '반쪽이'라는 오래된 전래동화책을 발견했다. 내가 아이보다 두 살 정도 나이가 더 있었을 때 진짜 즐겨 보던 전래동화책인데 약 30년 만에 발견하고서 너무 반가워서 아이에게 소리치기까지 했다. 이거 봐 봐! 이거! 얘가 팔이랑 다리랑 눈이랑 귀 이런 게 다 하나씩밖에 없거든? 그래서 이렇게 걸어 다니거든? 30대 여성답지 않게 방방 뛰어서 심지어 옆에 있던 초등학생 어린이까지 내 옆으로 다가와서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빤히 바라보더라는, 나는 그 책을 열심히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음... 이런 내 유전자가 그래도 있는 모양인지 (거실에 티비가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더 크지만) 아이는 나랑 있을 땐 책을 읽어 달라고 하는 빈도가 상당히 잦다. 그리고 나는 보통 거실에서는 휴대폰(의 글자)을 보고 있거나 책을 보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책을 들이밀 때 나도 책 좀 보자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럼 아이는 <엄마, 어른 책 안 봐도 된다고! 안 봐도 괜찮다고! 어린이 책 보라고! 책 읽어달라고!> 온갖 짜증을 부리며 내 책을 뺏어서 다시 책장에 꽂아둔다. 나는 아니 왜! 나도 책 조금만 좀 보자! 하고 투닥거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내가 지기 마련이라 책을 읽어주게 된다.


아니, 그래서 과학 특공대 살까 말까? 나는 그냥 책을 좋아할 뿐이지 전집을 고심해 들여서 호들갑스럽게 읽어주는 책 육아 하는 엄마로 명명되긴 싫단 말이야. 흑흑흑 그런데 책 리뷰를 보면 너무 재밌을 거 같다고... 그리고 사실 (5) 교원 열려라 지식문 나 너무 많이 읽어서 다른 책 읽어주고 싶다고... 갈등하는 시간은 흘러만 가고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오늘도 봤던 책 또 읽고... 그런데 또 내가 이 지랄을 하는 게 왠지 쿨내병 걸린 괴짜 같아서 별로기도 하고... 안 그러냐? 지금 이 글이 이렇게 읽히지 않는가? 나는 소위 책 육아한다는 너네들과는 수준이 달라~ 나는 원래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수준 높은 인간이거든~? 그래서 우리 집 애는 자연스럽게 책 읽고 말도 잘하거든~? 이 글에 이런 잘난 척이 은근하게 녹아있는 쿨내병 걸린 찐따 같지 않냐고? 지금? 나야, 제발 그냥 평온하게 책 육아한다고 받아들여. 그리고 새 전집도 가끔 사고 재밌게 읽고 그냥 그러면 안 되냐고...


아래는 지피티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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