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의 생각들] 작성: 2016/12/07 수정: 2025/06/18
여느 프로그램에 RGB 값을 입력하면 색상이 인출되는데, 예를 들어 (0, 0, 255) 값으로 blue가 구현된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색상은 정수로 환산 가능하며, 색상코드를 통해 기기와 장소의 차이를 넘어 일정한 파장대를 만든다. 보통 (0, 0, 255)의 값은 하나의 유일한 blue로 간주되고 그 값은 정량화된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그 (0, 0, 255)의 결과가 사람 눈 앞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숫자는 절대적 의미가 없어진다. 디지털 세계에서야 (0, 0, 255)는 같은 색상이겠으나 사람들의 뇌나 눈알의 상태에 따라 그 값이 <절대적으로> 같다고는 할 수가 없다는 것. 뭐 내 사례를 들어보자면… 나는 망막박리로 수술한 적이 있어서 왼쪽 눈의 색의 포화도가 오른쪽 눈에 비해 미세하게 줄었고 채도가 더 낮다. 그래서 화면에 떠 있는 (0, 0, 255)를 보고 있자면, 좌안과 우안이 인식한 채도가 섞여 보이게 되고… 최종적으로 나만의 blue로 인식된다. 내가 이런 색상을 보고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내 뇌를 꺼내서 화면에 인출해 놓은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눈을 가지고 있을테니까. 그리고 다른 요소들, 조명, 눈의 피로도, 화면의 선명도 등… 아무튼 다양한 요소로 (0, 0, 255)는 모두에게 (아주 미세하더라도) 다른 값으로 인식될 것. 절대적인 사실 하나는, 절대적 blue가 없다는 것. 하물며 단일한 색조차 하나로 고정할 수 없다면…
나는 A라는 사람을 본다. 그러나 내가 본 A는 A라는 인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없어. 그저 내가 인식한 결과다. 나는 A랑 대화를 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며 A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고 느낀다. A가 직접 보여주지 않은 부분들까지 잘 안다고 감히 유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나의 해석 아래 이루어진 것이지. 그렇게 인지된 A는 <나만 아는 A>이다. A는 나에게 어떤 존재이지만, B에게는 또 다른 존재다. 그 각각의 A는 본질적으로 같다고는 할 수 없고, 사실 서로 연결될 수가 없어. 내가 A가 어떤 인간인지 아무리 떠든들, 내가 지각하는 A를 그대로 B에게 Ctrl C V를 할 수는 없으니까. 심지어 A조차 스스로를 통일된 실체로서 정의할수가 없다. 시간에 따라, 경험에 따라 A는 변할 것이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도 성장해가니까. 내가 관계하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저 내가 지각하고 생성해낸 상이라는 것이 어떻게 들리는지? 그리고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아끼는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한들 내가 인식한 상을 그들에게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음, 무섭다는 건 너무 직설적인 단어인 것 같고… 나는 이 사실이 외롭고 고독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껴왔던 것 같아. 초등학생 때 자주 하던 뻘생각인데 <지금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생각했다는 사실이 아무도 모른 채 없어지겠다>는 이유로 헛소리를 종종 하기도 했었음. 하지만 당연하게도 초딩의 뻘소리들이었기 때문에 크게 귀기울여 준 사람들은 없었고 심지어 나조차 지금은 그 뻘소리들의 단 한 조각도 기억이 나질 않음. 나는 어렸을때부터 내 존재를 세상에 호소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듯. 그리고 고등학생 즈음의 어느 날, 유난히 내 감각이 명징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손의 감촉, 눈동자의 위치, 두근거리는 가슴… 그리고 생각의 흐름. 내 존재를 나 외에 누구도 완전하게 알아 줄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당시의 나에게는 꽤 큰 공포였다. 누구도 내 감각에 접근할 수 없고, 나는 이 상태를 남에게 절대 전달할 수 없으며, 결국 내 의식은 폐쇄된 공간이라는 사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초딩도 고딩도 아닌 30대 중반의 어른이며 유치했던 두려움은 사라진지 오래, 나는 이제 A라는 사람을 볼 때 그 상(image)이 나만의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 어떤 누구도 A를 나처럼 알고 있지 않아. A는 내가 만들어낸 상으로서 존재하고, 그러기에 아주 유일하고 소중하다. A와 관계하는 사람의 수만큼 A의 상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은 A가 분열된다는 뜻이 아냐. 유일하고 소중한 상이 그렇게나 많이 만들어졌고 A의 존재는 다채로워졌다는 뜻. A로 말했지만 나 또한 그렇지. 나와 관계하는 사람의 수만큼 나는 존재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아는지 들여다볼 방법은 없지만 유일하고 소중한 단 하나의 나는 그 만큼이나 많이 존재한다.
절대 blue는 없으며 절대 A도 없다. 절대적인 나도 없어. 하지만 내가 본 blue는 어쨌거나 존재하고, 내가 만들어낸 A의 상은 내 안에 분명하고, 내가 느낀 나의 감각이 내 안에 선명하다. 이것은 누구와도 동기화할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것들. 이건 내가 살아있고 존재한다는 증거. 이상 내가 평생을 들여 만들어온 나만의 멍멍이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