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깊이 추모합니다

[문영의 생각들] 작성일: 2024/12/27

by 문영


20여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난 한 방송을 보고 엉엉 울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내용인즉슨 어린 아기가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는데, 노쇠한 할아버지가 집에서 돌연사하는 바람에 아기가 집에 갇힌 채 아사했다는 사건을 다룬 방송이었다. 당시의 방송은 오늘날보다 더 자극적이고 검열이 되어 있지 않았고… 옅은 모자이크만 한 아이의 시체가 문 앞에 쓰러져 있는 모습, 할아버지가 전날 안주로 먹던 멸치가 바닥에 흩뿌려진 모습 따위가 TV에 나오던 것을 성인이 된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전문용어로는 ptsd를 앓은 셈인데, 그 날 이후 나는 거짓 없이 1년에 적어도 2, 30번은 그 사건을 생각해왔다. 그리고 지금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가끔 운전 중에, 밥 먹던 중에, 자기 전에, 술을 마시다가, 일을 하다가... 문득 그 아이를 떠올린다.


이 아이로 시작되어서 점점 커져간 나의 예민함, 민감함. 살아오면서 접한 크고 작은 재난과 사건 사고들도 종종 나의 전경으로 떠올라 마음을 괴롭게 한다. 오늘도 일어난 수많은 사망 사건사고, 누군가의 자살, 방임과 학대, 유기... 나는 나를 잘 알아서 일부러 이런 컨텐츠를 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어쩌다 마주하게 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 오늘은 꽤 나쁘지 않았다. 직장일도 그럭저럭 해냈고, 황당한 상황도 있었는데 어쩌라고 하고 잘 넘어갔다. 문의도 그럭저럭 응대했고 외주 건도 마감기한은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아, 대가리 잘 굴리는 생산력 오지는 인간으로서, 내 삶을 내 자유의지로 잘 영위하고 있다는 만족이 상당하다. 건강하고 머리 좋은 아이를 잘 키워내고 있는 기쁨이 충만하다. 적금을 꾸준히 들고 내 역량으로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산을 모아 나가는 등이 온 몸이 떨리게 행복하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 세상이 불합리하게 돌아간다는... 고통받는 어리고 나약한 생명이 많음에 마음이 찢어질듯이 괴롭기도 하다.


고통 속에 스러져간 나약한 이들을 떠올리면 나는 견딜수가 없었다. 소위 연민, 안타까움이라는 단어로 내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실은 교회를 다닌 기간이 꽤 된다. 중학생 때부터 작은 교회 큰 교회 세, 네군데를 다녀봤고 전도의 말씀은 <정말> 귀 기울여 들었다. 성경구절을 읽고 공부한 적도 있다. 꾸준히는 아니었지만 친척들을 따라 절에 나가 108배를 열심히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신을 믿을 수 없었고... 이유는 모르겠다. 이 괴로움을 절대자와 나누려자니 직접적으로 마주해야 했기 때문에 두려워서 그랬으려나? 이도 저도 못 했던 나는 이 감정 폭풍의 반작용으로서, 로봇이 되기를 꿈꾸고 노력한다. 이 감정을 온전히 느끼다가는 내 머리와 몸뚱아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너무 끔찍하여 10년간 운영해 온 블로그에도 쓰지 못했던 내 ptsd. 아기야…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니. 고통 속에 숨져간 많은 생명들을 마음 깊이 추모합니다. 그 순간의 아픔과 괴로움을 깊이 위로합니다. 나는 그럭저럭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가끔 생각할지언정, 이건 당신들의 고통을 감히 가늠할 수 없어 외면하는 변명입니다. 저는 신과 사후세계을 믿지는 못했지만, 당신들의 세계에서는 사후세계가 존재하여 평화 속에서 영원히 안식하길 깊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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