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귀천

[맥도날드 일기] 작성: 16/05/08 수정: 25/06/19

by 문영


* 2012년(만 21세)부터 2018년(만 28세)까지 경험했던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일기 시리즈

* 아래 글의 최초작성일은 16/05/08, 만 25세 때이고 라이더 에피소드이다.


주문특이사항에 <빨리 주세용>이라고 적혀 있다. 주문서를 인쇄하던 내가 이거 좀 봐요. 귀여워, 배고픈가 봐~라고 중얼거리니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본업이 배달원인 A씨는 대체 뭐가 귀엽냐, 빨리 오다가 사고라도 내란 소린가 투덜대서 대답할 말이 없어졌다. 결국 배달은 지가 갔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급여는 차이가 많이 나더라. 대학원 석사과정 중 경험한 바인데 약간의 경력이 있던 석사과정생 모 씨는 야부리나 털고 시간당 10만 원씩 받고는 했다. 나도 컴퓨터에 숫자 좀 두들기고 시간당 2, 3만 원을 받은 적도 있고. 초등학생들하고 놀아주고 시간당 4만 원을 받은 적도 있고. 그런 내가 오늘은 생명을 담보한 채 매연을 먹으며 시간당 7천 원을 벌었다. 이 간극은 정말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내가 일하는 지점의 라이더 B군은 어제 <3일 일하면 20만 원 개꿀>이란 말을 했었지. 이게 꿀이라고? 23시부터 익일 7시까지, 졸려도 졸음운전을 해야 하고 힘들어도 매장 청소를 혼자 온몸으로 해내야 하는 야간업무를 하면서 인생의 3일이나 밤을 새운 대가로 20만 원 받는 게 정말 만족스럽고 괜찮은 거야? 반면 강의력은 썩 별 볼 일 없고 pt도 구리고 글솜씨도 없어 교수님한테 맨날 혼나기나 하는 모 씨는 <5만 원은 프로그램 한 시간 뛰면 되는 돈인데>라고 쉽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성인이 된 지 몇 년 안 돼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이런 게 너무 신기하다. 낮에는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논문을 쓰거나(월 60만 원) 강의를 하고(건당 20만 원), 밤에는 시간당 7천 원 받으면서 다른 전업 배달원의 손님 욕이나 들어줘야 하고... 내가 느끼는 이 간극이 사회의 전부가 아닐 텐데 훨씬 돈을 많이 버는 사람, 훨씬 돈을 못 버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텐데, 너무 신기하네. 이 사회구조도 신기하지만 개개인의 생각들이 그렇게나 차이가 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대우는 차이가 많이 나더라. 나는 오늘 M PC방 이름만 보고서(M PC방은 우리 배달구역 안에 3개나 있다) C동으로 가야 하는 것을 D동으로 잘못 갔다. 그런데 D동의 M PC방 좌석에 앉아 있던, 그러니까 주문하지 않고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던 그 남자는, 내가 인사를 하니까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고 왼손을 휘휘 내저었다. 마치 파리 쫓듯이... 큰 벌레도 아닌 날파리떼나 먼지 털듯이. <주문 안 했어요> 한 마디라도 하면 좋았을 텐데 그 남자는 그러지 않았고 주소지가 틀린 것을 몰랐던 나는 D동의 M PC방 24번 자리 한 발자국 뒤에 카드단말기를 꺼내든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고 그 순간만큼은 정말 내가 벌레가 된 것 같더라... (진상들에게 욕 들은 적도 꽤 되는데 제일 비참했던 기억이라면 나는 이 날을 꼽는다) 그런데 이번학년도 논문계획서 발표 자리에서, 교수님들 자리에 깨끗이 씻은 과일을 세팅해 두지 않았다고 과정생 60년대생부터 90년대생까지 약 서른 명이 덜덜 떨고 뛰어다니고 그러지 않았었나? 누군가는 교수님의 존재가 너무 위대해서 교수님 자리 옆에 있는 커피포트에 물을 채워 끓이는 것도 어렵다고 하지 않았었나?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그래도 맥도널드 라이더는 그렇고 교수님은 그렇네.


나는 배달일을 하면서 최대한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해 두는 편이다. 공용 가방을 소독수를 뿌려 닦는다던지, 헬멧을 제자리에 둔다던지. 오늘은 일 끝나고 햄버거 하나 매장에서 먹을 생각으로 우선 유니폼부터 훌렁 벗었다. 유니폼 입은 채로 매장에서 먹으면 혼나기 때문. (많이 덥지 않은 계절엔 보통 내 옷 위에 바로 유니폼을 입기 때문에 그냥 훌렁 벗으면 됨) 그리고 유니폼을 잘 개어서 내 헬멧 옆에 잠깐 뒀다. 그런데 이 글 도입부에 등장했던 배달원 A 씨가 <문영씨, 옷 거기 올리지 마세요> 이 지랄이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네? 조금만 있다가 바로 가지고 올라갈 거예요> 변명같이 중얼거렸는데 그 대답이 <문영씨, 옷 거기 올리지 마세요>다.


나는 그 찰나에 온갖 생각을 한다. 왜 똑같은 말을 또 해? 아니 햄버거 하나만 먹고 바로 갖고 간다잖아? 옷을 다시 입을 수도 없고 손에 들고 햄버거 먹기도 웃겨서 헬멧 안에 그냥 쑤셔 넣고 다시 자리에 와서 먹고 있으려니까 뒤에서 전업 배달원 A와 B가 쌍욕 하는 내용들이 들려온다. 아, 맥도날드에서 배운 전업 라이더들(보통은 남성)의 욕의 메커니즘은 이렇다. <그 새끼는 뭣도 아닌 게 나한테 지랄한다>류가 거의 전부다. 나는 매일 궁금하고 매번 궁금해. 니가 누군데? 니가 어떤 사람인데? A의 머릿속과 A의 세상에선 그게 진리이자 절대 정답일 것 아닌가? 그 새끼는 진짜 뭣도 안 되고, 내가 지가 버리고 간 음료컵을 몇 개나 치워준 줄도 모르고 아무 곳에나 옷 던져 놓고 말대꾸나 하는 개념 없는 어린 여자로. 이 이야기를 누군가 공감을 해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와 A의 세상이... 이렇게나 괴리가 크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정말 너무나 울고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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