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달원의 애환

[맥도날드 일기] 작성일: 16/11/21

by 문영

* 2012년(만 21세)부터 2018년(만 28세)까지 경험했던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일기 시리즈

* 아래 글의 최초작성일은 16/11/21, 만 25세 때이고 라이더 에피소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Gender에 따른 기능 차이나 역할 구분 등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리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양성평등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것들도 아니다. 그저 여자 배달원의 애환 같은 것을 짧게나마 남기기 위함임.


여자라서 힘이 없다

1. 오늘은 L아파트 6동에 갔다. 5동, 7동 등은 평지에 위치해서 그냥 주차하면 되는데, 6동만 유달리 경사진 곳에 있어서 비탈진 곳에 메인스탠드로 주차해야 해서 조금 버겁다. 오늘은 왜인지 단지 앞에 차도 많아서 평소에 주차하는 곳 말고 더 경사진 곳에 세워야만 했는데 주차가 너무 힘들어서 손목이 아릴 정도였다. 이상한 괴성(흐아! 하앗!)과 함께 차체를 움켜쥐고 체중을 실어 힘을 주는데 6동 입주민이었는지 어떤 남성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라. 그 남자분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조금 민망해서 내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니 온갖 검댕으로 손이 검게 변해있다. 이거 사이드만 살짝 잡고 당기면 이런 거 안 묻어도 되는 건데 오토바이 안으로 손을 넣어 온 힘을 다해 움켜쥐려니 광부가 되었구만...


2. 맥도날드 오토바이 주유구는 배달통 아래에 있는데, 주유할 때마다 배달통을 뒤로 힘껏 젖혀야 한다. 그런데 기름칠을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프레임이 뻑뻑해서 이 행위가 매우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주유를 못 한다. 나는 맥도날드 배달원이지만 맥도날드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는 건 남자 배달원이 있을 때 <남자님, 제가 계집이라 힘이 없으니 배달통 좀 젖혀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굽신대기라도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3. 며칠 전 배달 중에 급한 내리막길에서 낙엽을 밟고 미끄러진 적이 있었다. 근육은 없어도 운동신경은 조금 있는 편이어서 펄쩍 뛰어내려 탈출해서 서 있으려니까 100kg 내외의 오토바이는 콰콰콰콱 소리를 내면서 저 멀리까지 혼자 굴러간다. 나는 뭐 별 수가 있나... 걸어서 그 오토바이를 따라간다. 나는 이걸 세우기 위해 친절한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 분들은 <아이고, 아가씨가 어쩌다가> 라는 말을 하며 도움을 주셨다.


여자라서 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잦다

배달가방 들고 매장 밖으로 나가는데 내 바로 뒤에서 <누나 태워줘요> <미친놈아 돌았냐> 친구끼리 큰 소리로 떠드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 기숙사라던지 직접 전달이 불가하고 1층에서 음식을 전달해야 하는 경우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는데 노출된 내 연락처로 장난스러운 희롱이 오기도 한다. 대답해 준 적은 없지만 일단 오토바이를 타면, 특히 배달원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우습게 보이나 싶었고. 누군가는 오토바이가 자유의 상징이고 아주 낭만적이고 그렇게 생각한다지만 나는 위와 같이 좀 어려울 때도 있었고 딱히 얻은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수년간 내가(여자) 오토바이 타면서 얻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검은 때가 묻은 패딩, 매연 묻은 담요 한 덩이.

다섯 개의 갈비뼈 실금과 체지방 5kg.

도로에서 소리치고 싸우는 인성과 아 거기는 오 분이면 간다고 얘기하는 어이없는 시간관념.

마지막으로 남녀노소 주변의 이상한 시선.

남자는 <오토바이 타세요?>

여자는 <어머 독특하시다(뭐야 관종이야?)>

노인은 <별난 아가씨네>

어린이는 <엄마! 배달원 아줌마가 왔어요!>


나에게 남은 건 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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