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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Sep 16. 2022

현명한 계약서 / 도로가 문제

노인이 우기면 법도 불필요

# 현명한 계약서


계약서는 내용 못지않게 계약 당사자도 중요하다. 도시 촌놈들이 상대해야 할 계약 상대방이 시골 노인임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시골에서는 노인이 우기면 법도 무시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실정법 위에 정서법이라는 게 중요하게 작동한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노인우대법이다. 우리네 삶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좋게 보면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존중하는 것이지만, 달리 말하면 나이가 깡패인 셈이다.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노인들이 오히려 약자다. 나이 들면 국가와 사회 자식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노인을 존중하는 것은 그분들이 살아온 삶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체득한 경험과 지혜를 높이 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무기가 되어 옳고 그름이 무시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결과를 강제한다면 곤란하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서열을 중요하게 여긴다. 고등학교까지는 졸업 연도를 따지고 대학은 학번을 따진다. 군대 직장 어디서나 기수가 중요한 의사결정 수단이 된다. 심한 경우 할 말이 없으면 "너 몇 살이야?"라고 삿대질을 한다. 결국 나이가 깡패인 것이다. 시골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시골에서는 계약 당사자가 노인일 확률이 높다. 계약 내용도 중요하지만 노인이라는 대상에 유념해 계약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먼저 강조할 것은 절대로 노인과 단둘이서 계약서를 작성하지 말라는 것이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노인우대법에 따라 불리하게 진행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노인은 약자로 둔갑한다. 잘못하면 노인을 사기 친 나쁜 놈이 되기 쉽다. 자식이든 마을 이장이든 한 명 이상을 참관인으로 서명받아야만 한다.


시골 땅은 실질적 소유권이 자식에게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시골 땅은 법적 소유자는 부모더라도 권리행사는 자식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도 지금은 당신 소유더라도 언젠가는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라 생각한다.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자식들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상한 일이지만 현실이다. 계약이 종결된 경우에도 자식이 반대하면 복잡한 절차가 뒤따른다. 계약서 작성 이전에 자식 동의를 구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계약 당사물에 대한 확신이 서면 우선 계약금을 걸어야 한다. 쉬이 흔들리는 여인네 마음 못지않게 노인 마음도 쉽게 흔들린다. 경쟁이 붙을 경우 돈으로 질러대는 도시 촌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돈 앞에 장사 없다. 본계약 이전이라도 계약금을 걸어두면 우선권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증거를 남겨야 됨은 물론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계약은 서면으로 작성하여야 한다. 증거가 남지 않는 구두계약은 계약이 아니다. 서면계약에 더해 필요하다면 녹취도 가능하다. 법적 분쟁 소지가 있는 경우라면 공증도 필요하다.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은 법적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보험을 드는 이치와 비슷하다.


시골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계약이 발생한다. 법과 상식에 너무 기대지 말고 시골에서는 노인우대법이 항상 우선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 도로가 문제


여행자에게 도로는 고행이요 희망이지만, 도시를 탈출해 시골에 둥지를 틀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알파요 오메가다.


'길'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앤서니 퀸이 주연한 영화 길(la strada)이 생각난다. 그밖에도 산티아고 순례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농로, 한적한 시골길도 연상이 된다. 이렇듯 길은 인간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인간에게 길은 희망이요, 고통이요, 선택지이자 순례의 길이고 누군가에겐 삶 전체다. 저승 가는 길만 아니라면 가지 못할 길은 없어 보인다.


농부에게 길은 농토로 향하는 고단한 희망의 길이요, 하루 수고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안식의 길이다. 도로는 원주민에게도 여러 의미로 다가오지만 삶을 좌우할 만큼 결정적인 변수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귀농 귀촌인들에게 도로는 그리 낭만적인 단어가 아니다. 집터로 향하는 길에 도로가 있어야 온전한 삶터를 꾸릴 수 있고, 논밭으로 향하는 길목에도 도로가 있어야 기계농이 가능하다. 


먼저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는 도로의 요건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첫째, 로로 폭이 4m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지목이 도로이고 국가 소유여야 한다. 넷째, 도로가 토지에 2m 이상 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적도와 현황상 도로가 모두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해야 건축이 가능하지만, 도시인들은 경관에 심취되어 도로 여건을 따져보지도 않고 서둘러 계약을 해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 이후는 자칫 악몽을 꾸는 것과 같은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흔히들 집을 한 번 지어본 사람은 다시는 집을 짓지 않겠다고 말한다. 건축 행위 자체도 그럴진대 도로 요건마저 미비하다면 말해 무엇하랴. 현황 도로가 있어도 지적도상 도로와 다른 경우도 허다하고 심지어 지적도상 도로가 없는 경우도 있다. 원주민에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이주민들에게는 정착 여부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사전에 꼼꼼히 챙겨야만 한다. 


애초에 외지인에게 좋은 농토가 돌아올 확률은 아주 낮다. 문전옥답을 외지인에게 내줄리가 만무하다. 집 가까이 있는 기름진 땅을 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외지인에게 돌아올 농토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접근성이 떨어지는 땅뿐이다. 설령 농로가 있더라도 곡예운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양보해도 적어도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는 있어야 한다.


도시를 탈출해 시골에 정착하는 경우 가장 먼저 구입하려는 토지와 연결된 도로를 세심하게 살펴야만 한다. 이주민에게 길은 알파요 오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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