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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Sep 16. 2022

차라리 우리끼리 / 시간 숙성

달콤한 유혹

# 차라리 우리끼리


가끔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끼리 어울려 살자는 유혹을 받지만 위험한 생각이다. 


도시 탈출자들이 원주민을 외계인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민을 바라보는 토착민 시각도 비슷하다. 서로 외계인 취급한단 소리는 서로를 인정하는 게 좋겠다는 소리도 되지만, 다른 종과는 더불어 살아가기 어려우니 차라리 같은 종끼리 사는 게 편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도 싶다.


독하게 맘먹고 원주민을 무시한 채 이주민끼리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결론은 불가능에 가깝다. 독립된 공간에서 원주민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귀촌인들이라면 모를까 귀농인은 절대 불가능하다. 귀농인은 농사를 목적으로 이주했기에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 농토가 경계를 공유하듯 농부들도 가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한다. 


귀농인이 원주민과 담을 쌓고 살아가면 솔직히 본인들만 손해다. 갑갑한 건 귀농인이지 원주민은 아쉬울 게 없다. 시골이 고향이어서 어릴 적 약간의 경험이 있다 치더라도 농부로서는 새내기다. 그러할진대 도시 출신 촌놈들은 말해 무엇하랴. 모든 게 낯설고 어설프다. 농사 천재인 원주민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농사라는 게 규모가 작더라도 농기계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시농도 아닌데 손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코딱지만 한 농사를 지으면서 필요한 농기계를 모두 갖출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처음에는 이웃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족끼리도 오랜만에 만나면 처음에는 왠지 어색하다. 처음 얼굴을 대하는 원주민과는 오죽하겠는가. 원주민과 만남이 숙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만남에서 오는 어색함과 불편과 약간의 서러움을 이유로 '원주민과 담을 쌓고 차라리 우리끼리 살까'하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주민과 원주민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생활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시간 숙성


글쓰기가 그렇듯 사람 간 만남도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필자는 글을 마무리하기 전 반드시 숙성기간을 거치는 습관이 있다. 1차 글쓰기가 끝나면 일정 기간 묵혀두고 글을 숙성시킨다. 대부분 글쓰기가 밤에 이루어지니 초고 그대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글을 다듬는다. 


어릴 적 감정에 충실해 써 내려간 글들이 다음날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던 경험이 필자에게만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 글쓰기도 비슷하다. 숙성기간을 거치면 오류가 눈에 들고 고치고 덜어내는 작업을 통해 그나마 이 정도 글이 탄생한다. 


인간 만남도 비슷하다. 이주민과 원주민은 서로를 외계인이라 생각할 정도로 이질감이 큰 존재들이다. 마치 생각대로 써 내려간 거친 글과 마찬가지로 숙성되지 않은 관계는 세련되지 못하다. 서로에게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아울러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해져 비로소 관계가 무르익는다. 


이 원리는 이주민 간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했던 도시인들끼리는 왠지 모를 동질감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건 바람이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도시에서 옆집과도 담을 쌓고 도시 속 섬사람처럼 살지 않았던가. 서로에 대해 생소하기는 원주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서는 곤란하다. 도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진 동질감에 더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래 저래 인간들 만남은 시간이 숙성되어야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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