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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May 03. 2023

5월 봄의 절정에서 팡팡이와의 시절 인연은 마쳤지만,

함께 한 14년의 시간은 오랜시간 내내 소장하고 싶습니다.  



"울 사랑하는 팡팡이와 함께 한 14년, 그 행복했던 기억의 소환"


포근한 5월 봄볕, 익숙한 한강 내음,

여느 때보다도 더 눈부셨을 내 그 시절








추억을 기억합니다. 묘하게 아릿한 비감의 서정을 일으키는 그 추억을 기억합니다.


이 감정은 뭐랄까... 굉장히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깊숙이 슬픔이 아로새겨진 그런 모진 그리움 혹은 안타까운 죄책감. 팡팡이를 생각하면 항상 이런 마음이 든다.


"팡팡이, 김팡팡, 바람의 여신, 염둥 팡팡, 순둥 팡팡, 팡팡 공주, 팡팡 천사, 팡데렐라, 식빵 팡팡, 물음표 팡팡, 엄마 껌딱지..." 모조리 팡팡이를 부르던 이름들이었다. 돌아보면 꽤 오랜 시간 함께였었기에 앞으로도 영영 내 곁에 있을 존재로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걸, 지극히 당연히 여기고 지낸 무지의 나날들일 뿐이었다. 무지 속에서 나는 충분히 의심 없이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키워본 애완견이었고 결혼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내가 '엄마'라는 이름이 되었다. 함께하는 삶도 스스로 부여한 내 호칭도 생각보다 어색하진 않았다. 사료와 간식, 가끔의 산책 그리고 내 눈에 예쁜 미용만 종종 해주었을 뿐 별다른 병치레 한번 없었던, 말티즈의 피가 분명 함께 흘렀을 무던하고 순둥순둥한 시추였다 우리 팡팡이는.



가장 애정하는 팡팡이의 인생샷과 내 삶, 벚꽃 인상 유난히 강하게 남겨진 날의 사진... 황홀히 지는 벚꽃비 속에서 설핏 서글픔이 깃든 감미로운 봄날이었다. 울 팡팡이는 여자니까 언제나 리본으로 포인트주기!



그러던 팡팡이가 많이 아팠고, 그 작은 존재가 다행히도 그 큰 고통을 이겨 낸 듯이 보였기에 팡팡이의 통증도 내 두려움도 그리고 부끄럽지만 병원비의 압박감도 끝이 났다고 안도를 했다. 어쩌면 다 나았다고 그저 믿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다시금 평온했던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진실을 외면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팡팡이 대신 선택한 당시의 어떤 '소중한 것'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얼버무려 믿어 버린 것이다.


그 뒤 8개월의 시간 동안은 정말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 사이 나는 살던 동네에 1993년식 오래된 빌라를 리모델링한 후 이사를 했고 우연히 만난 나르시시스트와 (내 나름의) 자기 파괴적인 연애를 시작했으며 얼마 전 다시 재기한 사업도 서서히 안정감을 찾아갔다. 세심한 건강 관리가 필요했던 팡팡이는 두 마리 슈나우저가 여섯 살 꼬마와 함께 산책하고 같이 나뉭굴며 잠을 자는 마음 따뜻한 친구의 집에 맡겨진 채, 친구들과 있으니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겠냐는 핑계와 함께 내게서 반쯤은 내팽겨졌다. 버거운 고백을 한다. 당시 난 여린 듯 감성적이었지만, 팡팡이를 여전히 사랑했지만, 비겁하고 속물적이었다. 그리고 진실은 눈을 감아 버린 현실 속에서 조용하지만 무섭게 증식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팡팡이를 빗겨주고 평소 자주 하던 도트문양 리본도 핑크색 스카프도 매어주었다. 차가워진 몸위의 한 올 한 올이던 털이 조금씩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팡팡이의 보드라운 털을 조금 잘라 보관했다.



4년 전 오늘, 팡팡이를 보냈다. 이젠 건강해졌다고 믿어버린 후였기에 멍할 뿐인 갑작스런 이별이었다. 병원에 다시 입원한지 이틀이 채 되기도 전에 혼연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외로이 홀로 떠나는 마지막 모습조차 '엄마'라는 나는 지켜주지 못했고 그 정 많은 친구가 팡팡이가 방금 떠나간 두 눈을 감겨주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팡팡이는 떠나가고 없었다. 그렇게 하얀 면포에 한 번, 분홍빛 담요에 한 번 더 싸여진 팡팡이를 안고 아마도 팡팡이가 내내 오고 싶어 했을 새로운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 밤 팡팡이의 몸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밤새 침대에 나란히 누워 느지막이 나마 안아주었다. 쭈 이모, 그리고 1년 동안 팡팡이를 어여삐 돌봐주었던 나의 베프, 그리고 그 1년 동안 팡팡이의 베프가 되어준 꼬마 지안이와 함께 팡팡이를 추억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한강 잠원 공원과 가로수길을 다시금 공유하며 그 남겨진 몸마저와도 마지막 작별을 준비했다. 엄마, 쭈이모, 베프 지안이가 써준 편지와 함께 팡팡이가 진짜 날개를 달고 천사가 되던 고약한 농담 같은 봄날이었다.    


  

부대낌 많던 삶 속, 가끔씩 평화로우며 서정적이기까지 한 내 삶의 풍경을 만들어준 고마운 울 팡팡이. 꼬질이 김팡팡, 엄마 그리고 쭈 이모가 한강에서 일광욕하던 날, 유난히 빨간색이 잘 어울렸던 팡팡이는 멀리 친구들에게 달려가고 싶어 아련히 눈빛 공격 중.  


 

4년 전 오늘도 봄햇살이 이렇게 따스하고 다정했었는데, 울 팡팡이가 좋아하던 한강에 가서 마지막으로 햇볕을 쪼여주던 날, 팡팡이가 쭈 이모랑 경쟁하며 먹던 새우깡을 사서 살포시 영원히 잠든 팡팡이 옆에 놓아주던 그 구름 한 점 없던 찬연한 봄날.


"울 착한 팡팡이는 하늘 가는 날도 이렇게 예쁜 날에 가는구나. 역시 울 팡팡이는 효녀야."


이렇게 나지막이 되뇌이던 그날이 벌써 4년 전이야...

팡팡이의 숨결에 내 숨결을 보태고 싶었다. 식어가는 아가의 체온에 내 체온을 보태고 싶었다. 아마도 내 생 가장 실질적으로 느껴보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나의 유년을 키워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도 이렇게 현실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생명이 떠난다는 것은 아주 냉정했다. 그 함께했던 무형의 시간들을 일정한 물리적인 기간 동안 앞으로 조금 더 기억한다는 것 말고는 유형으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과거, 가로수길 집과 현재, 아차산 집에서의 변함없는 팡팡의 모습. 어디가 되든 다음번 우리 집에도 변함없이 같이 가자! 행복했던 시간들을 앞으로도 한참 동안 기억할게.   



4년 전 5월 3일,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남겨진 팡팡이를 데리고 다시 가로수길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로수길을 떠나 함께 이곳 아차산 자락에 당도했다. 자연이 한결 더 가까이에 있어서일까. 이곳엔 유난히 더 반려견과 함께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중엔 울 팡팡이를 닮은 순둥순둥 살짜~악 백치미를 뽐내는 듯한 시추도 참 많다. 자연스레 눈길 한번, 손길 한번 더 건네며 언제나처럼 팡팡이를 그리워한다.


음... 그런 때의 그리움이 배시시 웃게 되는 함께했던 일상 속 행복한 흔적들이라면 오늘은 그 감도가 다르다. 오랜만에 이별하던 시간 속 사진을 보고 있자니 종종 걷잡을 수 없이 폭풍이인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쯤은 팡팡이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보드라운 털의 촉감, 그릉 그르렁하던 코 골던 소리, 꼬질꼬질하던 그 내음까지 시각으로만 남겨진 사진이 내겐 오감으로 전해져 이내 곧 과거의 시공간으로 박제되어 버린다.       


오늘 같은 날, 파란 하늘이 대기의 색채를 한 층 더 빛나고 강렬하게 만드는 오늘 같은 화사한 5월의 초입이면 팡팡이가 유난히 그리워진다. 돌아보니 삶의 시절 시절 그립지 않은 날이 없다.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다. 이제는 결혼해 어엿한 3살짜리 아들을 동생 쭈, 여전히 비자발적 싱글이지만 나다운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찾아 인생의 시즌2를 시작한 나, 그리고 하늘에서 해맑게 뛰어다니며 먹을 것에 집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팡팡이. 우리 셋이 함께 살며 공명했던 14년의 시간은 비록 가진 없고 이룬 없는 막막한 시계 속에서 기약 없이 방황했지만 인생 여느 시절보다도 반짝... 반짝였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기시작한다. 지금 오래전 시간의 냄새를 품은 빛바랜 봄바람이 불어온다. 팡팡이의 촉감과 함께. 아직 채 뿌려주지 못한 팡팡이의 남은 재를 이 봄날의 절정이 사그라지기 전에 보내주어야겠다고 마침내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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