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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16. 2020

예술은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하죠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아녜스 바르다/JR, 2017)은 88세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33세의 사진가 ‘JR’의 협업으로 탄생한 거리 예술의 여정을 담은 로드 다큐멘터리다. 세대 차를 뛰어넘어 의기투합한 두 예술가의 작업 과정이 때론 유쾌하게 때론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감각적인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오프닝 타이틀


두 사람은 특별 제작한 포토 트럭을 타고 프랑스 시골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를 커다랗게 출력해 건물 외벽에 전시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모델이고 마을의 담벼락이 갤러리가 되는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순간들을 카메라는 담아낸다. 그들의 작품을 본 행인의 한 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걸 말해 준다.


예술은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하죠.    




영화 초반에 바르다는 JR과의 대화에서 우연히 만난 멋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사진을 찍는 작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술엔 우연이 최고의 조력자라고 덧붙인다. 어떤 얼굴들을 만날지 어떤 벽을 만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들의 작업에서 ‘우연’은 작품에 독특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우연이 빚은 예술은 강력한 힘이 있다여기 인상적이었던 작품 세 개를 소개해본다.     


광산촌의 광부들과 최후의 저항자 '자닌'의 얼굴


모두가 떠난 광산촌에서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자닌’. 바르다와 JR은 옛 광부들의 사진을 출력해 버려진 집들에 붙이고 자닌의 집에는 그녀의 사진을 전시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고단하지만 의지에 찬 얼굴들이 인상적이다. 마을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와 최후의 저항자 자닌에게 보내는 존경을 담았다. 


항만 노동자들의 아내


항만 노동자들을 만난 바르다는 시각을 돌려 그들의 아내를 주목한다. 항만이 제대로 운영되는데 노동자들의 아내도 역할을 했으며 마땅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작품에 담는다바르다와 JR은 그녀들의 사진을 크게 출력해서 마치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항만의 컨테이너 박스에 붙인다. 그리곤 가슴 위치에 그녀들을 앉히고 항만을 내려다보며 자부심을 느껴보는 순간을 선물한다.


노르망디 해변의 기 부르댕 사진, "사진이 사라지는 건 익숙하지만 바다는 너무 빨랐다."


바르다와 JR은 이번엔 바르다가 젊은 시절에 사진 작업을 했던 바닷가 마을에 도착한다. 바르다는 이곳 해변에 당시 자신의 모델이자 요절한 예술가 기 부르댕의 사진을 전시하고 싶어 한다. 바다가 썰물일 때 여러 사람이 투입되어 몇 시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은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밀물에 씻겨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바르다는 마땅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 담담하다. 그를 이제 가슴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한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예술가의 방식이다    

 

바다는 항상 옳다. 바람과 모래도. 
사진은 사라졌고 우리도 사라질 것이다.




마을 주민들, 공장 노동자들을 촬영한 작품


그 밖에도 두 사람은 염소 농장의 주인, 염산 공장의 노동자, 카페의 직원, 최소 생계 유지비를 받는 노인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얼굴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이지만 피사체로서 누군가의 얼굴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생의 터전, 기억과 죽음까지 담아내려는 의지가 이 영화엔 담겨 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도 영화 속 사람들과 작품, 예술가가 특별하고 아름답게 기억된다.



JR: “죽음이 두려우세요?”

바르다: “아니, 많이 생각해보는데, 두렵진 않은 거 같아. 마지막 순간이 될 텐데 난 기다려지기까지 해.”

JR: “정말요? 왜죠?”

바르다: “다 끝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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